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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행동에 대한 오해

아이의 생각읽기

by 하얀


어린이가 모여 있는 곳이라면 장난꾸러기, 매력이 넘치는 어린이가 꼭 있다. 말이 좋아 장난꾸러기에 매력쟁이지 교사로서는 온 신경을 다해 그 아이를 마주해야 한다.


이런 매력쟁이 친구들은 상상도 못 한 곳에서 일을 만든다. 이런 적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에게 양치지도를 하는 중이었다. 화장실과 교실이 이어진 구조로 양치를 하지 않는 아이들은 교사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책을 보며 차례를 기다린다.

‘와르르르 탕탕’

무슨 소리인가 하고 돌아보니 한 아이가 쓰레기통을 쏟아버렸다.

모르고 그랬을 수 있으니 알려줘야겠단 생각으로 차분하게 “00아 무슨 일이야? 이건 지저분해. 안 쏟았으면 좋겠어.” 간단하게 말하고 다시 양치지도를 하는데

‘와르르르 탕탕’

설마는 역시나… 또 그 아이가 쓰레기통을 쏟아버렸다. 이유를 말하기 어려운 나이의 아이라 길게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짧고 간단하게 “아니야. 쓰레기통은 쏟지 않아.”라고 명확하게 말해주길 반복했다.

그 아이는 이후에도 두세 번을 더 쏟았고, 모든 아이들의 양치를 끝낸 후 그 아이 옆에 붙어서 다른 것으로 흥미를 돌리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가고 교실을 정리하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화장실 휴지통(핸드타월만 버리는 휴지통이다.)과 우리 반 쓰레기통은 같은 것이어서 우리 반 쓰레기통에는 우리 반을 상징하는 그림과 함께 ‘00반 쓰레기통’하고 이름표를 붙여두었었는데,

그날은 청소를 도와주신 분의 실수인 건지 나의 잘못이었는지 휴지통이 바뀌어 있었다.

아이는 글씨는 모르지만 그림으로 우리 반 쓰레기통임을 알았고, 우리 반 것이니 우리 반으로 들여다 놓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친절하게 물어도 답을 할 수 없었던 건 아직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나이. 놀이 시간에도 블록을 들고 열심히 기타 치는 흉내를 내며 ‘모두 제자리’를 열창하던 아이에게 한 번 더 ‘모두 제자리’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넴~”하는 대답소리와 함께 ‘나비야’를 불러주는 그런 아이였기에 나의 짐작은 맞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무섭게 혼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서 엄하고 무섭게 꾸짖진 않아 다행이지만

빨리 아이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생각해 보니 이런 경우도 있었다. 초임시절이었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던 시절.

난 6세 반을 맡았고 가득한 열정으로 아이들과 4월을 지내고 있었다. 한 아이가 유독 모여 앉기를 싫어했다. 노래를 부르던 동화를 듣든 간에 말이다. 모이자고하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고 웃으며 나오자고 이야기하니 다른 아이들까지 장난으로 받아들여 책상 밑으로 들어가니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기를 며칠. 그 아이의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다고 했다. 그동안 유치원에 가는 걸 너무나도 좋아하던 아이가 이렇게 변하니 많이 속상하시다고 했다.

5살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께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옆 반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선생님들이 알려주신 ‘스킬’은 통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놀잇감을 새로 더 준비해주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그렇게 4월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다. 한 달을 마무리하며 사진을 정리하던 중 3월 초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모이기 싫어하던 아이는 너무나도 바른 모습으로 모여 앉아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의 수업역량이 부족한 탓일까.

다른 사진을 살펴보다가 그 아이가 찍힌 사진을 보고 있자니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아이를 방과후과정 반으로 보내기 전 꼭 안아주고 비밀 아닌 비밀 얘기를 속삭여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는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모여 앉는 것은 기본이고 정리정돈을 할 때도 바깥놀이를 오갈 때에도 유치원 생활이 전체적으로 무난해졌다.

요즘은 몇몇 학부모의 무례한 행동으로 꺼려지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교사의 핸드폰 번호가 공개되던 시절.

방학 중 그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문자를 몇 통 받았다. 문자 내용은 아이가 열심히 만든 레고블록 사진과 아이가 꼭 선생님께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게 되었다며 방학 중 죄송하다는 내용. 사진을 보던 그날 내게 떠오른 생각은 ‘그 아이의 감수성’이었다. 아이들마다 감수성의 깊이가 달라서 어떤 아이는 작은 변화에도 크게 일렁인다. 그러니 교실도 선생님도 바뀐, 심지어 오며 가며 봤던 선생님도 아닌 처음 보는 선생님과 한 달을 5년간 축적해 온 사회성으로 어찌어찌 버텨보던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3월 한 달을 그렇게 애써왔던 아이가 대견하고, 그 마음을 알아차려주지 못해 미안해서 아이와 가까워지는 특별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아이는 “저는 좀 감수성이 민감하니까 시간을 좀 주세요.”라고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우니까 온몸으로 표현한다. 울고 떼쓰고, 반항하고.

이런 아이의 특성은 5세 반 선생님의 전언도 참고가 되었지만 직접 눈으로 사진으로 아이를 기억해 보니 봄 꽃이 피어나길 기다리며 주변환경을 살펴볼 때도, 아이가 주도하는 놀이 속 주제들도 말해주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을 안다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말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어른들도 서로를 알기 어려운데,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몇 배는 힘들지 모른다. 잠깐만 대강 보면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고 문제행동으로 비칠 때가 있다. 쓰레기통을 엎거나 활동(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아이가 문제행동을 해서 힘들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아이가 온몸으로 보내는 신호를 다시 잡아보는 건 어떨까.

내가 했던 것처럼 사진첩을 뒤적여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는 기념사진도 좋지만 어떤 놀이에 몰입하고 있는 사진들은 아이를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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