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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셜트래블러 Jun 09. 2021

#가족이라는 울타리.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 (2021 / 마이클 리안다, 제프 로우)


‡또다시 가족


 세상에는 많은 형태의 가족이 있다.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고, 행복한 가정이길 원할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행복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타인에게 보이길 원한다. 가족 간에 사랑이 넘치고 늘 함께 여행을 다니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운동하는 그런 나날들을 우리는 상상한다. 그러나 2021년 현재 가장 활발하게 다뤄지는 뉴스거리는 ‘아동학대’다. 가족 문제는 과거나 현재나 늘 있었으며, 기술이 상상 이상으로 발전해가는 지금 오히려 가족 문제가 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가족 중심주의에 기대는 영화들이 많은데 그만큼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공연문화만 보더라도 모든 시설이 가족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의 많은 중산층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무너졌으며, 경제를 위시한 다양한 문제로 가족의 형태가 해체되고 있다. 특히 2000년 초반 미국 가족의 신화를 해체한 영화 <아메리칸 뷰티>로부터 시작해, 얼마 전 2021년 93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노매드랜드>까지 미국의 가족은 다양한 형태로 무너지거나 해체되고 있다. 특히 <노매드랜드>는 차량을 이용해 유목민처럼 살아내는 사람들의 삶을 그렸는데, 사실 원작 도서의 묘사는 더욱 처절하다. 원작 도서는 노매드들의 야영지를 묘사하며 국가적 재앙의 축소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정도로 중산층 가정의 몰락을 처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제작의 대가 중 하나인 소니 픽처스에서 전형적이지만 의미 있는 가족 중심의 애니메이션을 공개했다.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은 무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을 수상한 작품인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를 제작한 스튜디오에서 공개한 작품이기도 하며, 2020년 극장 개봉을 목표로 제작되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몇 차례 개봉을 연기하였다. 영화의 원제목은 커넥티드(Connected)로 가족애와 기계 소재를 동시에 상징하는 중의적 의미로 표현된 제목이었으나, 미첼 가족 대 기계 등으로 한번 바뀌었으나 2021년 1월 영화를 넷플릭스가 판권을 사들여 오리지널로 작품을 원제목으로 공개하며 극장 개봉이 취소되기도 했다. 

 뭔가 한구석이 휑한 괴짜 가족이 로봇들로부터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로 자녀들과 함께 관람하기 좋은 작품으로 눈이 즐거운 영화다. 특히 영화라는 매체에 있어 ‘가족’이라는 가치는 고루하고 전형적인 주제로 어디서 본 듯한 내용과 비슷한 구성으로 되어 있어 아쉽긴 하다. 소통이 되지 않는 아버지와 독특한 자녀들, 그리고 둘의 사이를 메워주는 엄마. 이런 가족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서로를 이해하며 가족애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는 마치 영화를 보지 않아도 본듯한 그런 영화이기는 하나, 자녀들과 함께 관람하기에 잔잔한 의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맞아 관계라는 건 단순하지 않아

   

 괴짜 케이트는 그간 영상 작업을 한 포트폴리오를 통해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어느 대학교에 합격한다. 그동안 자신의 꿈을 응원하지 않는 아빠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 아빠인 릭은 가족들의 생일 혹은 기념일에 드라이버를 선물해 줄 정도로 아날로그적 생활에 집착을 한다. 케이트는 이런 아빠를 답답해하고 디지털 세대인 자신이 부모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합격을 계기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캘리포니아 기숙사로 가게 되며 영화는 시작한다. 

 가족들은 케이트를 떠나보내기 전날 마지막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지만 식사시간에 컴퓨터에만 몰두하는 케이트가 릭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말다툼이 시작되고 케이트의 노트북은 부서지고 만다. 드디어 대학교 기숙사로 떠나는 날. 아빠인 릭은 소원해진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가족 모두 케이트를 대학교로 데려다 주기 위해 자동차 여행을 서프라이즈로 계획한다. 아빠인 릭의 입장에서는 서프라이즈이지만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 케이트에게는 여전히 소통이 되지 않는 가족이다. 결국 케이트는 비행기를 타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약속한 상태이나, 아버지의 노력에 어쩔 수 없이 동행을 결심한다. 영화는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아빠를 전형적인 모습으로 표현하다 보니 사실성이 없는 꼰대로 그려진다. 딸과의 관계를 되돌리고 싶다면서 의견조차 묻지 않고 비행기 표를 취소시키는 그런 아빠로 묘사한다. 음식점에서의 에피소드는 케이티가 리뷰를 통해 음식에 대한 정보를 얻고 먹지 말라고 조언했음에도, 디지털에 대한 모든 것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 아빠는 음식을 먹어도 된다며 자신의 의견을 가족들에게 강요한다. 결국 상한 음식으로 가족 모두가 탈이 나기도 한다. 케이티의 기억 속에 저장된 아빠의 모습 역시 늘 비슷하다. 한 번은 주머니쥐를 데려와 광견병에 걸리게 하고, 등산로가 없다는데 계속 올라가 변을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기본적인 소통이 결여된 독단적인 사람에게 과거 케이티를 위해 꿈을 포기했다는 서사를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가족이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든다. 이렇게 부여된 서사의 활용은 성인 관람객이 보기에는 진부하고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소통은 매우 중요한데, 사회적 지위 등으로 쓰고 있던 가면을 벗는 가족 사이에서 소통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소통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을 배려있게 전달하고, 타인의 의견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사회적 언어다. 사회에서 소통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큰데, 소통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겨 있다. 즉 한 사람의 가치관이 언어로서 발현되는 순간으로 인격이 그대로 말에 녹아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뭐든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언어를 가진 사람이 따듯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인격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인격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맞다. 관계란 단순하지 않다. 평생을 가까이서 겪는 가족이라면 더욱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으리라. 그렇기에 단지 자신을 위해 꿈을 포기했다는 아빠의 과거 서사 하나로 인해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다는 것은 마치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갑작스러운 기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플롯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은 비슷하다. 좀 더 아빠인 릭의 감정을 조망하고 한 두 컷 애쓰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쉽게도 영화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톡톡 튀는 톤이 매우 세련돼 보이는 것과 대비된 뻔뻔한 클리셰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작은 차에 옹기종기 타고 여행 가듯 기숙사로 떠난 미첼 가족. 같은 시간, 새로운 인공지능을 소개하는 콘퍼런스에서 일상생활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인공지능 기술 'Pal'이 기술 개발자에게 버림을 받자 반란을 일으킨다. 인공지능에게 감정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 사실이지만, 어린아이들과 함께 관람하는 영화라 이해하도록 하자. 여하튼 인공지능 Pal은 로봇들을 조종해 인간들을 잡아들이고 여행 중 미첼 가족은 로봇들에게 잡히지 않고 간신히 도망을 친다. 로봇들의 지구 점령으로 결국 미첼 가족만 남은 상황에서 이들은 인류의 희망이 된다. 이후 미첼 가족은 로봇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다양한 모험을 펼치는데, 마치 로봇들의 침략은 가족에게 가해지는 외부 혹은 사회로부터의 공격처럼 비유된다. 사회의 어떠한 공격과 아픔에도 서로를 지켜주는 최후의 안전망은 바로 가족이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즉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를 지지해주고 함께 서로의 경주를 완주해주는 존재다. 가족들에게 가해지는 고난과 시련은 각자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성장한 그들은 서로의 케케묵은 감정들을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결국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가족이지만 로봇들에게서 인류를 구원하고,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로봇의 지구 침공이라는 재난 이후 그들은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조금씩 한 발을 내딛는다. 독불장군이었던 아빠 릭은 유튜브를 가입하고 딸의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사랑의 힘 어쩌고 하는 멍청한 소리는 하지도 마. 혼자인 게 낫단 걸 깨달았어. 발목 잡는 누군가도 없지. 관계를 맺는 건 너무 복잡해.’


 ‘맞아, 팔. 관계란 건.. 단순하지가 않아. 트리케라톱스 대이동에 관한 기나긴 설명을 들어줘야 할 때도 있지. 하지만 평생 친구를 얻으니 그 정도는 할 만해. 가끔은 내 얼굴 모양의 괴상한 컵케이크를 먹어야 할 때도 있지. 하지만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본다면 그것도 할 만해. 아빠를 그냥 믿어줘야 할 때도 있어. 솔방울이랑 드라이버 얘기밖에 안 하는 분이라도 말이야. 매번 옳은 선택을 하시진 못해도, 늘 노력하고 계시거든. 생각보다 더 많이. 우리 가족은 뭉치려고 노력했고 결실을 봤어. 정말 그게 되더라고. 가족이란 참으로 복잡하지만 싸워서 지켜낼 만큼 소중해. 그런 관계는 가족이 유일할지도 몰라.’      


영화 스틸 컷 (출처 : 네이버 포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완벽함은 없다


 미첼 가족은 괴짜 가족이라 불린다. 본인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미첼 가족은 완벽해 보이고 싶어 하나 모자라고 부족한 가족이다. 그들은 이웃인 포지 가족이 팔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고,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부러워하고 따라 하고 싶어 한다. 그저 이웃일 뿐인데 자신들과 비교하며 집착하냐는 막내 에런의 물음에 엄마는 그들이 완벽한 가족이라고 자신의 가족과 비교하며 부러워한다. 심지어 그 집 개 조차도 우리 개보다 몸이 좋다며 비교한다. 이렇게 부러운 포지 가족을 휴게소에서 만나는데, 휴게소를 침공한 로봇들로부터 멋지게 빠져나가는 포지 가족을 보고 미첼 가족은 따라 하지만 어설프기만 하고, 웃기기만 한다. 어찌 보면 '타인과의 비교'라는 부분이 현대인들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선사하는 단어가 아닐까?. 타인과의 비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부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공헌감을 원하며, 공헌감을 얻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원한다.' *라고 아들러는 말했다. 결국 사회라는 큰 공동체에 속해있는 우리가 타인에 대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타인에 대해 내가 단순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자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나의 영향력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타인에게 공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즉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수평적 관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종종 사람들은 때로 세상의 판단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모든 것을 비교하고 마치 그 관계가 수직적인 것처럼 착각한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자만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면서 주인공들이 모인 공동체의 일원이자 전체 사회의 일부임을 깨달을 때 타인과의 비교를 비로소 멈출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좋아하고 싶어 하고, 자신이 가치 있음을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가치를 인식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을 치지만, 현대사회 문명의 발달은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도록 만든다.** 특히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써야 하는 문화 속에서 진실하게 행동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러나 영화는 미첼 가족은 완벽해 보이는 포지 가족을 부러워했지만, 결국 로봇들에게 잡혀있는 포지 가족을 비춰주며 아들러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 또한 그저 사회의 작은 점과 같음을 보여준다. 포지 가족을 완벽하다고 여겼던 미첼 가족의 편견이 와르르 깨지는 경험을 하고 자신들의 괴짜스러움이 곧 유일 무의 한 개성임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위기의 순간에 괴짜라고 치부했던 그들의 개성의 발현으로 돌파구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각자의 괴짜와 같은 개성을 인정하고, 서로 받아들여 합심할 때 그들은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누구나 강점도 있고 약점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괴짜 같은 그대의 성격은 바로 세상에서 유일 무의 한 놀라운 개성이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에게 또는 우리 가족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지자.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완벽함은 없다. 단지 특이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놀랍게도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 가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인플루엔셜, 2014.11.17. 289p

** 이 부분은 #5~6 소셜 딜레마 편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가 끝난 후


 가족이라는 단위와 가치가 무너진 것만 같은 이 시대에 다시 가족을 이야기하는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등장했다. 특히 가족끼리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자녀들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단, 너무 까칠하게 영화를 감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공지능이 마음이 상해 삐졌다는 것, 로봇이 화려하게 날아다니는 현 상황에 자동 주행차량 하나 없다는 것 등 하나씩 따지다 보면 기분 좋은 영화 관람을 해칠 수 있다. 자녀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신나는 영화의 등장에 초점을 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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