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2020 / 크레이그 조벨)
블룸 하우스 프로덕션.
언제부터인가 블룸 하우스(이하 BH)는 영화 애호가에게 있어 참신함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레이블이다. BH는 주로 호러와 스릴러 장르의 작품이 주 무기이며, 호러 장르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 레이블의 강점과 동일시되어 관객들은 BH를 열광하고 BH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작용했다.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BH는 호러 장르 가지고 있는 강점적 특성과 궤를 같이 하는데 호러 장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이러하다. 호러 장르는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강점이 있어, 신인 감독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등용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저예산은 회사들의 투자를 보다 쉽게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저예산이라 영화의 외피가 휘황찬란하지 못한 대신, 특이한 설정이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오히려 저예산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영화를 번뜩이도록 만든다. 극복된 한계는 영화의 성공을 가르는 기준이며 막대한 수익을 얻는 '로또'와 같다. 이러한 번뜩임이 BH의 주 재료이자 무기이다. BH는 이러한 재료를 통해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해서 작품마다 최소 20배에서 60배의 수익을 거둬들인다. 이렇게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영화가 앞서 언급했듯이 이전에 관람하지 못했던 독창적이거나, 놀라운 아이디어로 점철된 작품을 다수 출품했기 때문이다. 특히 BH의 대표작품인 <겟 아웃>*은 450만 달러로 제작해서 2억 5천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어들였으며, 아카데미 각본상을 비롯하여 각종 상을 말 그대로 쓸어 담았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넘어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것이다. 이러한 작품성은 특히 미국이 가지고 있는 사회의 여러 면면을 조망하기도 하는데, <겟 아웃>은 인종차별의 문제를, <더 퍼지>는 총기 소지에 대한 문제를 사회에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BH가 제작하는 모든 영화가 성공적이지는 않으나, 이러한 BH만의 방향성은 호러 장르가 가지고 있는 독창성을 그대로 레이블에 덧입힘으로써 관객들에게 ‘신선함’이라는 호러 명가로써 평가와 기대를 받기에 충분했다.
BH의 영화 <헌트>. 당연하게도 영화 <헌트>도 BH만의 독창성이 살아 숨 쉬는 영화다. 영화는 오프닝 후 영화 초반부가 상당히 진행되기까지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대표적인 호러 드라마인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엠마 로버츠를 초반에 등장시킴으로써, 엠마 로버츠를 영화적 맥거핀**으로 활용해버린다. 주인공인지 알았던 엠마 로버츠가 죽는 것은 마치 전설적인 호러 영화 <스크림>에서 드류 베리모어를 활용한 것과 비슷하다.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엠마 로버츠를 영화에서 아웃시킨 후 주인공을 바로 보여주지 않고 한 번 더 조연을 활용하여 관객들을 속인다. 이렇게 넋을 놓고 영화 초반을 보다 보면 이 영화가 역시 BH의 작품이라 인정하게 만든다.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처럼 영화는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엠마 로버츠의 사회적 이미지까지 영화에서 차용해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블룸 하우스의 대표작으로 <겟 아웃>을 소개한 이유는 성공한 작품 중 가장 최근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전 작품들 중 호러 장르는 아니지만, <위 플래쉬>의 흥행과 수상 또한 놀랍고도 대단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극적 장치를 뜻한다. 즉 관객들을 속게 만드는 영화적 장치를 말한다.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들판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이내 들판 한가운데 놓여 있는 나무 박스를 발견한다. 박스 안에는 돼지 한 마리와 각종 무기들이 들어있고, 무기를 손에 들기도 전에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숨 막히는 인간사냥이 시작된다’라는 포스터의 글귀처럼 인간들이 사냥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이 왜 사냥당하는지 초반에 알려주지 않지만, 다른 포스터에 쓰인 돼지로 인해 그 이유를 영화를 보며 나름 유추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영화 내에서는 초반 상자에 등장한 돼지가 이후에도 종종 등장해 영화에서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즉 영화는 돼지라는 메타포*를 사용해 관객들에게 사냥의 이유와 그 주제에 대해 미리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먼저 영화 속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와 같이 돼지는 사람들을 사냥하는 무리들을 뜻한다. 그들은 상위 0.1%의 기득권층이나 평등 혹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후변화는 진짜라느니,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연설하거나, 흑인을 흑인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정정하는 등 실천적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대중들에게 오해를 받고 자신들이 이끌어갈 고귀한 가치가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영웅 스노볼***이라며 자신들을 지칭한다. 무지한 대중들을 평등한 세상으로 이끄는 리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인다. 또한 그들의 리더인 아테나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물들어 있는 지적 인종주의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나라는 내 조국이지만 못 배우고 무식한 인간들의 조국이기도 하니까. 너희 실패자들은 우리 세금으로 먹고살다가 촌구석에서 죽든가 주차장에서 자살하지. 자기 인생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깨닫게 되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지향을 비웃은 사람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해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영화는 이렇게 요단강만큼이나 큰 가치의 간극을 조롱한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가치관이 그들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들을 바라보는 다수의 대중들도 지적이며, 높은 사회적 위치로 인해 그들을 사회적 리더라고 여길 수도 있다. 우리도 청년 멘토니 뭐니 하며 공경했던 그들을 검증해보니, 실망이 컸던 일이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멘토와 리더를 찾는다는 것이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은유 혹은 비유
**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 스노볼 역시 돼지이다.
아테나를 비롯해 사회적 리더들의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이 해킹으로 노출된다. 메신저의 내용 중 저택에 모여 사냥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사람을 사냥한다는 루머로 확산되었고, 그들은 이로 인해 사회적 지위를 잃게 된다. 이에 격분한 이들은 루머를 확산시킨 이들을 잡아 진짜로 사람을 사냥을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동물농장>의 스노볼이라고 주장하지만 영화는 눈 뭉치라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즉, 사람을 사냥한다는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을 표현하기도 한다. 대중들은 아무 팩트 체크 없이 이를 흥밋거리로 받아들였으며, 이를 악의를 더해 온라인에 퍼 나르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을 계획한 아테나는 이렇게 무지한 대중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은 사실이지, 너희들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원하는 것만 취해서 의미를 왜곡하고 너희들의 뒤떨어진 세계관에 끼워 맞췄잖아. 사실이길 원해서 그렇다고 믿은 거지’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의 집합체인 대중은 자신들보다 약자에 대해 차별하고, 이를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마치 신념처럼 믿어버린다. 또한 그들은 믿는 것을 넘어 유튜브나 팟캐스트, 인스타를 활용하여 악의적으로 재생산한다. 이렇게 여론 몰이를 하는 자들은 과연 어떤 자들일까. 영화는 이들이 사회적 위치나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닌 흔한 대중 중 하나로 표현한다. 아테나 일당의 시각에서는 팩트 자체가 귀찮고, 자극적인 것에 자신들의 삶의 고난을 다른 이들에게 책임과 핑계를 전가하는 이들이 바로 돼지라는 것이다.
아테나 등 이들의 입장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복지 등을 지향하는 집단 대신 경쟁을 강화하고 가난을 가속화하는 집단에 열광하는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소스타인 배블런은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생산직 노동에 종사하며 몹시 가난한 하위 소득계층은 현 제도와 환경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기에, 당연히 복지를 지향하는 진보주의 성향을 갖게 될 거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기존의 삶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함으로써, 기존의 방식에 순응하는 보수주의 성향을 띄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축적된 부의 소유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는 유한계급들은 굳이 세상을 변화시킬 필요성도 못 느끼기에 보수주의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21세기를 지나는 지금, 현재 미국의 가난한 자들이 그들의 혜택을 앗아가고, 부를 축적한 이들을 위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트럼프를 선택한 것이 바로 그 결과다.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관심 갖지 못하게 그들의 일상을 늘 ‘피로’로 물들게 하는 것. 이것을 이용하고 있는 유한계급들. 그들의 가난을 다른 약자에게 화살을 돌림으로써 발생되는 수많은 혐오들. 이런 혐오들이 SNS의 발달로 더욱 우리네 가슴으로 비수가 되어 생채기를 낸다. 아마 우리는 이미 지옥과 같은 비극적인 사회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돼지'를 활용하여 많은 의미들을 담은 심오하고 지루한 영화는 아니다. 메시지를 기반으로 가볍게 관람할 잔인한 B급 슬래셔 무비를 흉내 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여기서 관객들은 '잔인함'에 주목해야 한다. 잔인하고 고어적인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하니 이를 싫어하시는 관객들은 초반 몇몇 장면은 스킵하시기를 바란다. 여하튼 영화를 관람하여 주인공인 베티 길핀(크리스탈 역)에 매력을 느꼈다면 그녀가 주연으로 나오는 드라마 <글로우: 레슬링 여인 천하>를 관람하기를 추천드린다. 이 드라마는 여성들이 미국 레슬링 쇼에 도전하는 일대기를 담은 내용으로, 베티 길핀의 시원한 액션과 꿈을 좇는 여성들의 감동적인 서사를 만끽할 수 있다. 또한 1980년대 패션과 여성들의 사회생활 단절로 인한 일상 등 다각도로 시청이 가능한 훌륭한 드라마다. <글로우: 레슬링 여인 천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2021년 현재 시즌 3까지 출품되었으나, 시즌 4는 취소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너희를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씌우다니 너희도 당해봐라’라고 시작한 아테나 일당. 그들 역시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는 우를 범하고 만다. 역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들이 모두 선은 아니지 않을까? 마음에 품고 있는 가치의 지향이 완벽하고 무결하게 삶에서 펼쳐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철학적 사유와 삶을 일치시키는 연습을 통해 우리의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확인하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