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기록하다
처음 주간보호센터를 개소했을 때의 일이다.
지금껏 이미 자리를 잡은 장애인 종합사회복지관과 같은 시설에서 근무하다 처음으로 센터를 개소하게 되었다. 중증 발달장애인 이용인을 한분 두 분 모집하고,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는 것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센터 이용에 필요한 기자재를 구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센터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질문이다. 이때 센터 개소 후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일까? 새로 모집한 이용인의 다양한 개성? 아니다. 바로 가난함이다. 이용인과 뭔가를 하고 싶은데 그 무언가를 할 무언가가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종합복지관 같은 곳에서만 근무해봤기에 임대료의 개념을 몰랐다. 하지만 센터를 개소하고 매월 임대료를 약 120만 원씩 지불하며 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매달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첫 시작이라 당시 센터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시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예산의 부족으로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그렇다. 중증 발달장애 현장에 사회복지사로서 가지고 있던 철학과 방향성을 실천하는 것에는 무조건 캐시가 필요하다. 그중 가장 해야만 하고 하고 싶었던 하나는 바로 '나들이'다. 대부분의 중증 발달장애인은 나들이와 캠프에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중증 발달장애인이 학교 다닐 때도 나들이나 외부 체험학습은 진행이 되지만,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분들은 중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런 활동에서 소외될 경우가 많다. 중증 발달장애인기 가진 특유의 개성 때문에 학교는 갖은 안전문제 등을 염려해, 외부활동을 할 때 부모 등 보호자 한분이 동반할 것을 요청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활동에 같이 참여하기보다 차라리 집에서 케어하는 것을 선택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아픔을 잘 알고 있기에 나들이를 가는 것을 중요한 일정이라 여겼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복지 기관이면 '당연히' 있는 차량. 그 당연한 차량이 우리는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제 막 발걸음을 뗀 기관에 차량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게 우리는 따스한 봄에 벚꽃을 구경 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이라는 용감한 선택들을 했다.
우리 센터는 지하철역과 인접해 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사실 지하철은 우리들이 이용하기 매우 좋은 이동수단이다. 먼저 중증 발달장애인은 동반 1인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매우 쾌적하기까지 하다. 또한 우리나라 지하철의 수준은 비장애인 이용하기에 세계 최고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동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에게 있어, 지하철을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 센터의 든든한 발이 될 터였다.
동료들과 나는 첫나들이를 성공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먼저 이용인들에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하철을 타고 어디로 가는지 활동을 소개하였다.
나들이 당일!. 우리는 약간의 긴장과 설레는 기분을 누리며 지하철로 향했다. 사전에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표를 발급받은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을 타러 긴 복도를 이동했다. 그 순간, 등치가 좋은 남성 이용인이 잡은 내 손을 거세게 뿌리치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한 나는 손을 재차 잡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나의 눈과 웃음기 가득한 이용인의 눈이 서로 교차하며 긴 복도 끝으로 이용인은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용인을 다시 잡기 위해 뛰었고 우리의 술래잡기는 지하철 복도에서 계속되었다. 술래잡기에 합류한 동료와 함께 우리는 소몰이를 하듯 복도 구석으로 유인해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온몸에 땀이 주르륵주르륵.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다. 술래잡기를 한 공간이 긴 복도라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에 열차가 들어오는 승강장이었다면,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몸과 마음을 다시금 추스르고 우린 열차로 향했다.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앉을자리는 없었다. 자리에 앉고 싶어진 이용인은 한 왔다 갔다를 반복하더니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때리는 손을 잡고 이용인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진정시켰다. 순간 기적처럼 자리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머리를 때리던 이용인을 자리에 앉은 후 진정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다. 이 공간만 텅 비어있었다. 아마 놀랐을 거다. 우리를 피해 옆으로 이동한 사람들을 이해한다.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때리는 사람을 처음 봤으니 얼마나 놀랬을까.
이렇게 우리의 첫 지하철 나들이는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끝이 났다. 이후 우리는 2022년 7월 현재까지 지하철을 타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