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단어 21일차
남편과 연애하기 전, 두 번째로 영화를 본 날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던 중, 주유소 앞에 빨간 옷을 입은 마네킹이 있어 그쪽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마네킹은 역시 말랐어’ 생각하던 중에 이 남자가 말했다.
다리 예쁘네
뭐라...? 듣고 나서 내 귀를 의심했다.
나름 오래 알고 지냈는데, 내가 봐온 이 사람은 마네킹을 보면서 그런 말을 할 것 같은 성향이 아닌데...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서로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건 마음의 소리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얘기하는 거다.
오늘, 달, 진짜 예쁘다
아하, 다리가 아니라 달이었구나.
내가 오해한 얘기를 하니, 이 남자도 내 발상이 황당했는지 크게 웃는다.
아니 하필 핫팬츠를 입은 마네킹이 그때 그 자리에 있을 게 뭐람.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난 오늘, 밤길을 함께 걷던 남편이 말했다.
달이 예쁘네
하늘을 보니, 구름 속에 예쁜 달이 살짝 숨어있다.
그 날의 달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고, 내 기억 속엔 빨간 옷을 입은 마네킹뿐이지만, 오늘의 달은 내 마음에 잘 간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