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팬데믹의 서막 - 4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 동안 보건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수기입니다.
제가 직접 겪지 못한 현장은, 그 일을 맡았던 동료들의 목소리로 채웠습니다.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버텼고, 그들의 애환을 짧은 인터뷰로 엮어 이 책 안에 담았습니다.
Q. 주무관님, 초창기에 감염팀에서 일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대구에 첫 확진자가 나오기 일주일 전이요. 시청에서 전화가 왔었는데, 확진이 의심되는 외국인을 이송했던 일이요. 팀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다들 눈치를 보다가 몇몇 주무관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전했죠. 외국인 코로나 의심 환자가 있는데, 정황상 확진자 같다면서 OO의료원에 이송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Q. 왜 주무관님이 가시게 된 건가요?
제가 제일 선임이었고, 현장 경험도 많았거든요. 무슨 사명감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제가 가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와이프에겐 등짝 스매싱을 당했지만요.
Q. 바로 나가셨나요?
물품을 챙기러 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데,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어린 딸과 아들, 아내 얼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사실 저도 인간인지라 수만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나.’ ‘아니다. 그래도 내가 가야지.’ 등등
Q. 그 당시 코로나에 대해 알고 계신 건 많지 않았죠?
네, 거의 몰랐어요. 감염 경로도, 치사율도, 얼마나 위험한 지도요.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레벨 D 방호복*과 마스크뿐이었습니다.
Q. 이송 과정은 어땠나요?
방호복에 마스크, 페이스실드(face shield), 장갑, 덧신까지 갖추고 현장으로 갔습니다. 엄청 긴장을 했던 것 같아요. 반면에 해당 외국인은 해맑은 모습이었던 기억이 나요. 차를 타고 OO의료원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와 동선을 설명했지만, 숨 쉬기도 힘들어서 대화는 거의 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곧바로 보건소로 복귀했습니다.(페이스실드: 얼굴 전체를 덮을 수 있는 플라스틱 마스크)
Q. 돌아와서는요?
방호복을 벗자마자 서로에게 소독제를 뿌렸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통을 다 쓸 때까지요. 옷이 소독제에 절어 축축할 정도였어요. 손에도 소독 겔을 발라 소독했습니다. 장갑을 낀 채 소독하고, 장갑을 벗고도 소독을 여러 번 했습니다.
Q. 그날 집에는 들어가지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갈 수 없었어요.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혹시라도 바이러스를 가져갈 수는 없었거든요.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차에 남기로 했습니다.
Q. 가족에게는 어떻게 말씀하셨어요?
아내에게 전화했죠. 확진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이송하고 와서 집에 못 간다고 짧게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밖에서 자겠다고.
Q. 그날 밤은 어땠나요?
2월이었어요. 히터를 틀고 옷을 껴입고, 집 앞 길가에서 차박을 했습니다. 비자의적인 차박이라고 해야 되나. 잠이 오지 않았어요.
- 의심환자가 확진이면 어떻게 될지
- 내가 감염되면 다시 집에 갈 수 있을지
- 아이들은 접촉자가 되지 않을지
군대 이후로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눈치 보지 않고 유튜브를 원 없이 봤었네요.
Q. 결과는 언제 나왔나요?
다음 날 아침이요. 보건소에서 음성이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Q. 그때 기분은요?
그제야 한숨을 쉬었죠. 곧바로 집에 전화했더니, 아내가 울먹이더군요. 나중에 들으니, 아이들은 밤새 아빠가 어디 갔냐고 물었다고 했습니다.
Q. 이후에는요?
잠깐 집에 들러 옷만 갈아입고 다시 출근했어요.
하루도 쉬지 못했지만, 그날만큼은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그날의 이송은
기록으로 남기엔 너무 짧았고,
기억으로는 오래 남았다.
방호복을 벗고도 쉽게 가시지 않던 불안,
차 안에서 맞은 새벽 공기, “음성입니다”라는 한 문장에 무너졌던 긴장.
팬데믹은 그렇게 한 사람의 일상과 가족의 밤을 조용히 바꾸어 놓았다.
이름 없이 반복된 선택들,
누구에게도 박수받지 않았던 결심들 위에서 방역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뒤늦게 알게 된다.
세상을 버티게 한 것은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그날 “그래도 내가 가야지”라고 말한 평범한 사람들의 발걸음이었다는 것을.
* 레벨 D방호복: 감염병에 투입된 의료진들이 입는 개인 방호복의 일종. 현재 방호복의 종류는 A, B, C, D가 있으며, A레벨은 가장 심각한 단계의 보호 복으로 피부, 눈을 통해 감염되는 경로까지 원천 차단한다. D레벨의 경우 공기 오염 가능성이 떨어지고, 예상치 못한 경로로 피부/호흡기계 감염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착용하며 대부분 부직포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몸 전체를 커버하지는 못한다. 이번 코로나19의 경우 대부분의 의료진은 레벨 D를 착용하였고, 초창기에는 이에 대한 수급도 원활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