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地思之(2) - 명단 속 내 이름

2020 팬데믹의 서막 - 3

by 그저남기는자

팬데믹 초반,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했다. 시(市)에서는 해당 종교 신도들의 명단을 확보했고, 마지막 예배일을 기준으로 검사 대상자를 분류했다. 각 구·군 보건소는 명단을 나눠 들고 전화를 돌리고, 집을 찾아가 검체를 채취했다. 우리 구는 대구에서도 주거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다. 검사 대상도 많았고, 사람들의 반응은 더 거칠었다. 나 역시 명단을 받아 전화를 걸었다.

“저는 거기 다니지 않습니다.”

“아픈 것도 아닌데 왜 검사를 받아야 합니까?”

“한 번밖에 안 나갔는데, 생사람을 잡네요.”

전화를 끊고 나면 불쾌함과 억울함, 분노가 귀에 남았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는 의심해야 했고, 그들은 이유 없이 의심받고 있었다. 그 틈에서 목소리는 쉽게 날카로워졌다.

설득 끝에 검사에 동의했다가도, 하루쯤 지나 마음이 바뀌어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저녁에 와 달라거나, 집이 노출된다며 엉뚱한 장소를 지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업무 시간과 동선은 계속 어그러졌지만, 그 사정들을 전부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명단 속 이름을 보고 놀라는 모습(ChatGpt)

그러던 어느 날, 내 휴대전화에 익숙한 번호가 떴다. 우리 구청 번호였다.

“이 OO 님, 신△△ 교인이시죠?”

순간 말이 막혔다. 이름은 맞지만, 그 종교와는 아무 관련도 없었다. 상대방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단에 내 이름이 있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도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며칠에 걸쳐 같은 전화가 반복되자, 더 이상 넘길 수 없었다. 의심받는다는 것은, 아무 잘못이 없어도 몸부터 움츠러들게 했다. 해명해도 믿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주는 피로가 겹쳤다. 의심은 조용히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내가 그동안 무심코 불렀던 명단 속 ‘타인’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명단에 오른 이유를 수소문했지만 정확한 경로는 알 수 없었고, 초기 확진자의 접촉자 명단과 종교단체 명단이 섞였을 가능성 정도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중앙부처에 보고된 자료라 수정도 어렵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 무렵 기침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가, 특정 종교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말과 함께 반강제로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여기저기서 걸려 오는 전화는 나를 계속해서 낙인찍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결국 담당자가 공문을 작성했고, 코로나19 정보 시스템에서 내 이름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얼마 뒤 명단에서 이름이 빠졌고, 더 이상 전화도 오지 않았다.


모든 일은 해프닝처럼 끝났다. 하지만 팬데믹 초기, 특정 종교를 둘러싼 오해는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보건소 안에서는 한동안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조심스레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민원인의 목소리를 예전처럼 듣지 못하게 되었다. 억울하다는 말 앞에서, 명단 속에 있던 내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의심해야 하는 자리에서도, 의심받는 쪽의 숨을 한 번쯤 헤아리게 되었다. 그 경험은 지금까지도 내 업무의 속도를 늦추고, 말을 고르게 만드는 기준으로 남아 있다.




명단에서 빠져나온 이름은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겠지만,
그날의 감각은 오래 남아
앞으로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방식에, 말을 고르는 속도에,
작은 균열처럼 자리할 것이다.


나는 조금 느려졌다.
확인해야 하는 자리에서도, 판단해야 하는 순간에도
의심보다 먼저 숨을 고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 변화 하나만으로도, 그 이름이 명단에 올랐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역지사지 #코로나 #보건소 #팬데믹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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