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2020년 팬데믹의 서막 - 1

by 그저남기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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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다. 대구에 첫 번째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아침부터 뉴스를 채우고 있지만, 화면 속 숫자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평일보다 느슨한 공기, 아무 일 없이 흘러갈 것만 같은 오후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린다.

“보건소 전 직원 구청으로 응소 바람”

토요일 오후와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다. 짧고, 이유는 없다. 나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긴다. 보건소로 향하는 길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말의 도로 위로 라디오 음악이 흐른다. 신호는 매끄럽게 이어지고, 차들도 여유롭다. 이 길 위에서 긴장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나만 이미 평일의 시간 속으로 들어와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하던 풍경이 낯설다.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누군가는 전화를 붙잡은 채 자리를 뜨지 못하고, 누군가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복도에는 설명되지 않은 긴장이 흐른다. 그때 낮게 오가는 한마디가 들린다.

“확진자가… 우리 구에 나왔대.”

확진자가 몇 명인지, 어디를 다녀갔는지는 아직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역학조사를 하던 중, 그 환자의 동선에 이곳이 포함되었다는 사실만 공유된다. 그 말 한마디만으로 사무실은 금세 웅성거린다. 잠시 뒤,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한다.

“보건소 전체 폐쇄”

확진자가 이곳을 다녀갔다면, 접촉자는 보건소 안에 있다. 몇 사람이 차례로 불려 나간다. 잠시 후, 내 자리의 전화도 울린다. 지정된 격리 공간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다. 이동한 공간에서 CCTV 화면을 확인한다. 이틀 전, 확진자로 추정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내가 화면 속에 있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위험도는 낮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말은 안도라기보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뜻처럼 들린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퇴근 명령이 내려진다. 평소라면 반가웠을 그 말 앞에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집에 가도 되는 걸까? 아기가 있는데, 내가 들어가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 질문들을 품은 채, 만 가지 생각을 하며 발걸음은 어느새 집 앞이다. 마스크를 쓴 채 문을 연다. 아이와 남편이 나를 바라본다. 끝내 마스크를 벗지 못한다. 그날 저녁은 그렇게 서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흘러간다. 밤 열두 시, 또 하나의 문자가 도착한다.

“격리 해제”

이미 접촉일로부터 이틀이 지났고, 특별한 증상도 없으며, 검사 결과도 음성이라는 이유다. 반나절 남짓한 격리는 그렇게 끝난다. 그날 밤, 나는 마침내 마스크를 벗고 아이를 안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는 조용히 마무리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하루는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보건소의 하루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문자는 더 자주 울렸고, 지시는 더 짧아졌으며, 설명은 점점 사라졌다. ‘확진자’라는 단어는 뉴스에서 내려와 우리의 업무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그날 내가 받았던 첫 번째 문자는,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문자를 받게 될지에 대한 예고였다. 그날의 반나절 격리는, 이후 이어질 수많은 경계의 연습에 불과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출근과 퇴근 사이에 잠시 멈출 줄 알았던 이 시간이, 얼마나 오래 우리를 붙잡아 두게 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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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흘렀다.
이제는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그날의 문자도 기록 속에 남았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 아무 설명 없이 울리던 알림음만큼은 아직 또렷하다.

어떤 시작은 요란하지 않다.

그저 일상의 틈으로 스며들어, 우리가 살던 방식 전체를 바꿔 놓는다.

돌이켜보면 그날은 특별한 하루가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하루의 첫 문장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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