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地思之(1)

2020 팬데믹의 서막 - 2

by 그저남기는자

“OOO 보건소 맞죠? 여기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입니다. 어제 보건소 앰뷸런스가 왔다 가는 걸 봤는데, 우리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습니까? 몇 동 몇 호 주민입니까?”

콜센터에 근무중인 직원(ChatGpt 생성)

“확진자나 접촉자의 개인 신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그게 왜 개인 신상입니까? 그 한 사람 때문에 우리 아파트 전체가 이렇게 무서워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감춥니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가장 많은 전화 내용이었다. 몇몇 아파트 관리자들은-그들도 싫다고 했지만-주민들의 등쌀에 밀려 보건소에 찾아와 해당 아파트의 확진자 명단을 요구하는 일이 많았다. 말단 직원들이 나가서 요청하신 명단은 개인정보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리면 더 높은 사람 나오라고 소리 지르고, 몇몇은 ‘본인’이 ‘나 이런 사람이다’라고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다. 확진자가 넘쳐나는 시기에 확진자 관리만도 벅찼는데, 확진자들의 신원을 궁금해하는 이들로 보건소 앞은 늘 인산인해였다. 오랜 설득으로 결국은 돌아서지만, 수많은 아파트 주민은 어떻게 설득하냐며,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았다.


어느 토요일 아침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한 아파트 라인에서 확진자가 실려 나가는 장면이 목격되자, 그 아파트 관리사무소뿐 아니라 주민들까지 개별적으로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왔다. 이미 “알려드릴 수 없다”라고 공지했지만, 관리사무소를 믿지 못하겠다며 보건소 직원들에게 직접 실명을 요구하는 전화가 이어졌다.

모든 직원이 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있을 때, 나도 수십 건의 동일한 문의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 한 어르신의 전화가 연결됐다. 말투는 신사적이었지만 내용은 비슷했다.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되겠습니까? 몇 호인지 가르쳐 주시면, 조심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지친 나의 목소리에 최대한 공손하게 물어주셨다. 확진자의 신원을 알려줄 수 없다는 획일적인 대답을 하려던 순간 갑자기 한 확진자 가족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팬데믹 첫해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학교 측에서 과거 확진 학생·교직원에게 다시 PCR 검사를 받으라는 지침이 내려진 직후였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확진 이력이 있는 학생의 아버지였다. 그는 “이미 한 번의 확진으로 아이가 큰 상처를 받았다”라며 목소리를 떨었다. 아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으면, 다른 주민들이 타지 않거나 갑자기 내려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어디서 감염됐는지도 모르는 병인데,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이 이어졌고, 결국 아이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현재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어느 종교도 아니고, 해외에 나간 적도 없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아버지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고, 전화를 끊은 뒤에도 그의 목소리가 한동안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땠을까. 그 생각을 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던 기억이 있다. 결국 지침상 검사는 진행됐지만, 다행히 아이는 음성 판정을 받고 2학기에 정상 등교했다고 들었다. 그 사건이 떠오르자, 나는 어르신의 질문에 조금 다르게 답하게 되었다.


“아버님, 전체 아파트 주민을 생각하시는 마음 잘 알겠으나 확진자 본인들도 참으로 힘든 시간 속에 있습니다. 어르신이 만약에 확진이 되었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어르신의 주소를 알고 싶어 안달이 나면 좋을까요? 그리고 어르신이 동네의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 시간이 흘러도 낙인으로 남아있어도 괜찮을까요?”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부디, 어르신이라도 모른 척해주신다면, 분명 확진자분도 어르신께 감사할 겁니다.”

위 확진자의 사례를 간단히 말씀드리니 어르신도 수긍하신 듯했다. 그리고는 본인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면 될지 물으셨다. 개인 방역에 철저히 하시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마시라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방 수칙들을 말씀드렸다. “수고 많다”라는 말로 다시 나를 위로해 주시면서 통화는 끝이 났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는 확진자가 생기면, 지자체마다 확진자 번호를 부여하고 확진자들의 동선을 공개했다. 자신들의 동선으로 인해 사업체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일정기간 업장을 폐쇄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확진자들은 되도록 동선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다. 반대로 조심하고자 한다며 더 알고 싶어 하는 일반 시민들은 네티즌 수사대를 자청하며 공개되지 않은 동선까지도 추측하여 따로 알려주는 사이트들까지 난립했다. 팬데믹 초기 확진자가 된다는 것은 병에 걸려 아픈 것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 시기였다.

그날의 전화, 그리고 그 아버지의 울음은 오래 남았다.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돌아온다.

“나도 걸릴 수 있다”

짧고 단순하지만, 팬데믹 초기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가장 잃기 쉬웠던 생각이었다. 그 뒤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은 업무를 대하는 내 기준이 되었다.


확진자 번호도, 동선 공개도 어느새 모두 과거가 됐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목소리와 울음은 아직 소리가 선명하다.

누군가를 지키는 일은, 결국 서로에게 작은 배려를 건네는 일이라는 걸

그 시절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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