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친절(35,180원)

by 소망이

올해로 만 21년 차 영어 교사입니다.

1정 연수 때인지 언제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용은 정확히 생각이 납니다.


“앞으로 교사는 더 이상 teacher이기만 하면 안 됩니다. facilitator(협력자)이어야 합니다. “


그때에 저는 강의를 주로 하는 교사였기에 이 연수 내용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교사인데 가르치기보다는 협력하고, 보조해 주라니~ 도대체 어떻게 수업을 하라는 거지?‘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렇게 전통적인 수업을 하던 저에게 올해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학생들의 주도성, 협업능력을 믿어 보기로 한 거죠.


사실 더 이상 영어 지문을 독해할 때 여기저기서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을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기 초 모둠을 짰고, 4명의 모둠원들에게 이끔이, 기록이, 진행자, 발표자의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단원마다 학습지를 만들어 학생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휘 뜻을 찾고, 어려운 문장의 구조를 분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어요. 그 후에는 모둠별로 대표가 나와 마이크를 잡고 발표를 하게 했지요.


발표 한 번에 1,000점씩 주고,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점수를 합산하여 간식을 준다고 했더니 고등학교 교실에서 보기 드문, 발표하고 싶어 여기저기서 손을 재빠르게 드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어요. 심지어 발표 기회를 얻기 위해 저와 가위바위보를 해야 했답니다.


문단마다 발표하는 친구의 목소리와 스타일이 다르니 학생들이 졸지 않더라고요. 사실 졸던 학생도 모둠활동 하다가 잠이 깨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얘 오늘 계속 잤어요. 이렇게 활기차게 수업하는 거 오늘 처음 봐요.” 이런 제보도 자주 들어왔어요.


처음 해 보는 수업방식이어서 많이 낯설었지만, 학생들을 믿고 시작했는데 성과가 좋았고, 무엇보다 서로 틀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함께 배워나가는 학습 공동체라는 느낌이 참 감동이었어요. 그리고 교사가 주욱 안 틀리고 청산유수처럼 지문 분석하고 독해해 버리면 어디를 정확히 어려워하거나 모르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학생들이 하니 어느 부분이 어려운지 파악하기가 쉬워서 보충 설명을 더 잘해 줄 수 있었어요.


당연히 약속한 간식 선물을 해야겠지요? 이렇게 저에게 새로운 수업의 기쁨을 선물해 준 학생들이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한 명 한 명 카페 음료 쿠폰이라도 선물해주고 싶었지만, 저의 용돈 내에서 아껴서 간식을 사줘야 하는 거라 마음보다 실제 선물은 많이 소박했습니다.

1차 지필고사 전에 한번 사줬고, 이번 주가 2차 지필고사 전 주여서 다시 한 번 사줬는데요.


제가 다섯 반 수업을 하는데 각 반마다 1등 모둠에게는 카프리썬 음료수를, 그리고 모든 학생들에게는 개별포장된 미니 쿠키를 줬어요. 다 합치면. 35,180원 정도의 소박한 간식에도 지필고사 공부에 지친 학생들은 즐거워하며 맛있게 먹더라고요.

아~ 그리고 열심히 노력한 것이 아쉽지 않도록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열심히 기록해 주었습니다.


제 바람은 점점 경제적으로도, 마음으로도 여유로운 교사가 되어 기분 좋게 간식을 제대로 쏘며 늙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