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 년 전쯤이었을까요?
급식을 먹고 친한 선생님이랑 운동장 한 바퀴를 돌고 있는데 그분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생각해 보니 이 사람이랑 결혼하지 않았다면 내 아들과 딸을 못 만났겠더라고~ 이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 신랑이 많이 소중해졌고 고마웠어."
사실 말은 안 했지만 신랑을 좋아하는 이유가 자녀 때문이라는 말이 잘 공감이 안 됐었어요. 그렇게 신랑 자체는 좋아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속으로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제가 그 선생님의 나이가 되니 저도 비슷한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여보, 나의 찐친 두 명을 함께 만들어 줘서 고마워."
이 말의 포인트는 그만큼 두 딸이 있어 많이 행복하다는 것이고, 이제야 십 년 전 그 선생님의 진심을 알겠습니다.
전 좋게 말하면 평화주의자, 그냥 말하면 다툼을 싫어하고 회피하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신랑과도, 학교에서 선생님들과도, 교회 셀식구들과도 다투지 않고 잘 지내요. 그런데 특히 둘째와는 의견이 서로 다를 때가 자주 있습니다. 다툼이 시작되려 하면 저는 안방으로 피신하지요. 그러나 둘째는 굴하지 않고 따라와서 왜 엄마는 자꾸 대화를 회피하는지, 그럼 난 누구랑 언제 대화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지적합니다. 그 말이 맞기에 힘들지만 다시 토론을 시작하고, 결국 생각보다 다정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맺게 돼요. 이런 찐친이 어디 있을까요?
저의 좋은 점뿐만 아니라 저의 고쳐야 될 점, 지나치거나 과한 점, 비논리적인 부분을 다 알고 있고, 지적하면서도 여전히 가장 많이 저를 필요로 하고 사랑해 주는 딸들.
저의 찐친.
아들만 있는 선생님들이 자기는 친구가 될 딸이 둘이나 있어서 좋겠다 할 때 도대체 어느 시절에 그럴까 싶었는데 이제 곧 성인이 될 큰딸, 중학생이 될 둘째 딸은 이제 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둘째와 위키드를 보고 왔어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보고 있는 둘째 옆에서 많이 행복했습니다.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신랑과 성향이 잘 안 맞아 영화 보러 가기 쉽지 않아 혼자 로맨스영화 보러 가고 그랬는데, 당분간은 우리 딸이랑 보면 되겠네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쿠팡사태를 겪고 보안의 중요성을 절감한 후 웬만한 사이트에서 다 탈퇴하고 재가입했거든요. 네이버도 탈퇴하고 새로운 아이디, 비번 만들어서 제 가입했는데 그만 이 과정에 연동되어 있던 저의 블로그가 함께 없어졌습니다. 2019년 개설하여 만 6년의 기록이 담긴 블로그가요.
그런데 사실 저는 미니멀리스트여서 그래, 이참에 추억들과도 작별하고 산뜻하게 새로 시작하자라는 마음이었는데 이 이야기를 하니 둘째는 안타까워 눈물을 보이고, 첫째는 너무 놀라더라고요. 저도 못 느끼는 안타까움을 느껴주는 딸들이에요. 어느 누가 이렇게 저의 일상을 알고, 상실에 저보다 더 많이 안타까워해줄까요?
저의 풍부한 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드디어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고민을 나누고 위로하며 조언해 줄 사람이 이제 집에 있습니다.
섬세하고, 생각이 깊고,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해서 키우기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사춘기의 폭풍이 몰아치면 또 쉽지 않겠지만 저의 민낯을 다 보고도, 참 자주 다투고서도 끈끈하게 맺어져 있고 사랑하는 두 딸, 저의 찐친이 있어 많이 감사한 아침입니다.
이 마음 고이 간직하고 함께 나누고 싶어 글로 표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