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병은 다름 아닌 신랑의 사업자금이었다.
2013년 가을 이제 생후 5개월 정도 된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7살 첫째와 그리고 신랑과 두 번째 내 집으로 이사 갔다. 지어진지 거의 20년이 되어 낡았지만 어느 정도 리모델링이 되어 있는 상태여서 깔끔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엄청 넓었다. 빌라 3층인데 처음 설계할 때부터 주인집으로 설계해서 그런지 옥상도 우리 집 전용이었고, 집도 컸다. 처음 이사 왔을 때에는 거실에서 방까지 거리가 멀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첫째는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바로 학교로 복직했지만, 둘째는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 신랑에게 물어봤더니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오케이를 했다. 그래서 2년의 육아휴직을 썼다. 첫해는 100만 원 정도의 월급이 나왔지만, 둘째 해의 나의 수입은 0원이었다. 신랑은 내가 휴직하기 전에 한 9천만원 정도의 돈을 추가로 대출받아 사업을 튼튼히 하고 싶어 했지만 신랑의 바람과 다르게 일거리가 거의 없었고 결국 몇 달간 수입이 0원이 되자 하던 사업을 접었다. 그렇게 9천만원은 우리집의 1년 생활비와 신랑 사업비로 조용히 사라졌고 갚아야 할 빚은 3억원으로 늘어났다.
생활비, 그리고 3억 원에 대한 대출이자가 못해도 100만 원.
매달 대출이자를 내야 할 때마다 나는 다시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엔 지루성두피염이 가득 생겨 밤새 긁느라 잠을 못 잤고, 마음엔 괴로움이 한가득이었다. 거기다 어린 아가를 양육하는 데서 오는 피곤함까지 넘쳐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신랑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새로운 일에 뛰어들었다. 이름하여 "화물운송".
화물은 100퍼센트 전액 대출이 가능했다. 물론 높은 이자를 내야 했지만~. 이렇게 빚 1억이 또 더 생겼다. 그래서 우리 집 대출은 총 4억이 되었다.
처음 몇 달은 제법 수익이 났다. 신랑도 장거리를 오고 가며 피곤했을 텐데도 열심히 일을 했다. 생활비, 대출이자를 잘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때로는 제주도에서, 때로는 목포에서 혼자 차 안에서 며칠을 자고 밥을 먹는 생활을 하는데도 힘들다 하지 않고 본인한테 맞는다며 웃었다. 그런 신랑이 참 든든하고 고마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거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언젠가부터 수입보다 유류비, 세금 등 사업을 하기 위해 지출되는 돈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좋은 중고차를 싼 가격에 산 줄 알았지만 아니었고 그래서 잔고장부터 심각한 고장까지 수리해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결국 고민 끝에 일 년 만에 신랑은 화물차를 헐값에 넘기고 사업을 접고 다시 일자리를 구해 취직했다.
2016년 3월. 우리 집 대출은 총 3억 8천만 원이 되었다. 집이 2억 7천만 원인데, 오롯이 100% 빚으로 살고 있는 대궐 같은 집은 나에게 기쁨이 아니라 버거움이었고, 부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