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네가 고은이랑 잘 되면 많이 슬플 것 같아........... 나 너 좋아해 “
“........ 이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사실 뭔가 서로에게 느껴지는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해서 혼란스러웠어.”
“그런데, 혹시 나 너랑 사귀다 더 내 맘에 맞는 사람 나타나면 보내줘야 돼”
“그래”(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부탁에도 그래라고 대답하다니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착한 사람이네요. 여보, 미안했어.)
이렇게 하운이와 저는 삼일절을 며칠 앞두고 사귀게 됐고 같은 해 7월 초 결혼을 했습니다.
둘이 알아서 결혼날짜 다 잡은 후 양쪽 부모님께 승낙이 아니라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어요. 어머님이 될 분은 많이 서운해하셨어요. 하운이 형을 장가보낸 지 일 년 정도밖에 안 지나서 아직 막내아들 장가갈 때 도와줄 돈이 없는데 이렇게 훅 장가간다고 해서요. 그래도 전남에서 서울로 다시 경기도 안산으로 이사를 가서 고향 친구와 고생하며 살고 있던 막내아들이 장가를 간다니 마음이 놓이시는 것 같아 보였어요. 저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거든요. 물론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말라서 좀 걱정이 되셨대요.
저희 집은 상황이 더 안 좋았어요. 제가 교사를 하며 받는 월급의 상당 부분이 엄마, 아빠의 생활비로 사용되고 있었거든요. 저에게 주실 돈은 아예 없었답니다.
그래도 서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저희 둘은 겁 없이 마냥 즐겁게 결혼 준비를 했어요.
결혼식장은 제가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결혼식은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있는 결혼예배로,
결혼식 축가는 저의 첫 담임반 제자들이 했어요.
예단은 생략하고 양쪽 부모님께 200만 원씩 드렸어요. 저랑 신랑은 백화점에 가서 전 원피스 한벌, 신랑은 양복 한 벌을 맞췄어요. 결혼 후에도 옷이 편하고 맘에 들어 자주 입고 다녔어요.
결혼반지는 큐빅 박힌 커플링 서로 해서 끼고 있던 것으로 퉁쳤어요.
어머님은 서운하시다며 저에게 "금가락지를 해줄까?" 물으셨고 저는 “전 매일 하고 다닐 수 있는 실용적인 것으로 받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려서 백금 목걸이와 귀걸이, 팔찌를 받았어요. 지금도 여전히 자주 하고 다니는 저의 1호 액세서리입니다. 이것도 나중에 들으니 어머님께서 작은 형님에게 그러셨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확실히 다르네. 자기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네”
신혼여행지는 제주도로 갔고,
결혼식 후 공항까지는 신랑 친구가 빌려 준 차를 타고 갔어요.
이 돈들은 어디서 났냐고요?
남자친구의 2000만 원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고 남은 보증금과 마이너스 통장 개설한 것으로 했어요.
속전속결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남자친구랑 저랑 둘 다 부모님께 받을 도움이 없으니 동등한 상태에서 서로 마음 합쳐 최대한 간소하게 준비하고 싶어 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네요. 가전제품도, 가구도, 심지어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등도 신랑과 제가 자취할 때 쓰던 것들을 계속 사용했어요.
신랑이 친구랑 자취하던 집은 신혼집이 되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