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영주·영월 여행 #2
단양을 떠나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영주. 이곳의 자랑은 단연 부석사다. 부석사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새롭게 등재되며 인류의 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676년 의상 대사가 창건한 이래 1,400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선 지금까지도 한국 불교의 명맥을 이어온 곳이다.
목조건축의 시초이기도 한 무량수전 외에도 국보 5점, 보물 6점, 도 유형문화재 2점 등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때마침 노을이 질 때였다. 건물들은 산등성이 뒤로 차츰차츰 넘어가는 붉은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민낯을 드러냈다. 부석사의 풍경은 곱게 나이 든 어르신의 얼굴처럼 자연스러운 주름살이 파여있는 듯했으니, 부석사라는 건물 자체에서 연륜이 풍겨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주와는 마구령을 경계로 맞닿아 있는 영월이 마지막 목적지였다. 조선시대 가장 비극적인 왕이라면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을 떠올리곤 한다. 단종은 왕위에서 쫓겨나 상왕이 되고,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끝끝내 실패로 돌아가며 노산군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지금의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17세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사망할 당시에도 마을 사람들은 세조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시신조차 거두지 못해 강물에 유기되었다고 하니, 그의 삶은 비극으로 점철돼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단종을 딱히 여긴 영월호장 엄흥도는 시신을 수습해 지금의 장릉에 암장했다고 한다. 단종의 능호인 장릉도 숙종 때인 1698년에 이르러서야 붙여지게 됐다.
매년 4월 말이면 장릉과 영월읍 일대에서는 단종문화제를 열어 단종 국장을 재현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행사의 규모는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할 정도로 크다. 자칫 단명한 왕을 위한 의식으로 생각해 의문을 품었건만, 발걸음을 맞춰 걷던 어머니는 “단종 국장의 방점은 왕이라는 권위가 아닌 한 인간에 대한 연민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일러주셨다. 영월읍의 사람들은 왕위를 빼앗긴 왕이 아니라,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을 기리고 있는 것. 그러니까 영월의 장릉은 연민으로 만들어진 공간인 셈이다.
장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영월 선돌도 각광받는 명소다. 방절리 서강가에 위치한 선돌은 두 갈래로 우뚝 솟아있는 70m 높이의 두 절리를 일컫는다. 흐르는 강 사이로 자리한 층암절벽의 모습이 마치 신선 같다 하여 신선암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단 한 번만 봐도 강렬하게 남는 인상 때문인지 이미 국내 여행지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 땅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으로, 동고서저의 지형 또한 닮아있다. 그 유명세를 기반으로 본래 서면이었던 선암마을 일대의 행정구역 지명이 2009년에 한반도명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