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영주·영월 여행 #1
우연찮게도 이번 여정은 오래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떠났던 여행과 같은 길이었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섬섬옥수였던 손에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 주름이 새겨졌고, 그 손이 움켜잡았던 고사리손 또한 울퉁불퉁해졌다는 것.
머리가 큰 이후로 어머니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으니 어색하진 않을까 살짝 긴장했건만, 완전한 기우였다. 이십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찾아온 여행지에서 어머니는 소풍을 떠나온 소녀가 되어 작은 꽃 하나에도 기뻐하시곤 했다.
첫 행선지는 단양의 자랑인 도담삼봉. 단양군보다도 더 유명한 단양팔경, 그중 맏이인 도담삼봉은 정도전을 필두로 선비들의 짝사랑을 받았던 명승지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사이로 6m 높이의 장군봉이 우뚝 솟아있었고 장군봉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첩봉과 우측 처봉이 점잖게 앉아있는 모양새였다.
비가 오래도록 찾아오지 않아 수심이 낮았던 덕을 봤을까, 평소라면 남한강을 비단옷처럼 두르고 있어야 할 도담삼봉의 속살 같은 부분까지도 볼 수 있었다. 물이 닿았던 부분에만 풀이 자라지 않아 마치 삼봉이 푸른색의 갓을 쓴 듯 한 모습이었다.
어느 명소에나 전해 내려오는 일화가 있는데, 도담삼봉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이다. 본래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삼봉산이 홍수로 인해 떠내려 와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당시 정선군에서 삼봉에 대한 세금을 단양 백성들에게 요구했다. 이 부당한 과세에 정도전은 이렇게 반박했다.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
어린 정도전의 기지 덕분에 이후로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단양의 대표 명소로 자리를 잡게 됐다. 자칫 매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유년시절 도담삼봉을 자신의 벗이라 여겼던 정도전은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명명했을 정도로 이곳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도담삼봉을 감상하며 그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본 뒤에 어머니는 짧은 감상평을 던지셨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했을 세월 동안
어영부영 청춘을 다 써버렸건만
단양은 바뀐 것이 없다
많은 선비들이 도담삼봉을 사랑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흐르는 강물에 바위가 깎이고 흘러온 모래가 쌓이는 치열한 과정이 매 순간 벌어지고 있음에도 도담삼봉의 외관만큼은 꼿꼿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옛 선비들은 그 강직함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도담삼봉을 향해 애정을 표했던 것은 아닐까.
단양팔경의 둘째인 석문은 도담삼봉과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강의 상류 쪽으로 향해야 했기에 산을 오르는 수고를 감수해야만 했다. 연신 거친 숨을 내뱉으며 우거진 숲길을 10분쯤 걸었을까, 벼랑 끝에서 쏟아지는 빛이 석문에 다다랐음을 일러줬다.
석문의 태생은 까마득한 옛날 석회 동굴이 무너진 후 동굴 천장의 석주(돌기둥)가 지금의 무지개 모양으로 남은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문으로, 명승 4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단양 석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지만 때로는 빛을 담으며 자연이 빚어낸 창문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프레임 안에 남한강과 강 건너 마을의 모습을 그리며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단양이 반가웠던 건 도담삼봉과 석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석회암 지대와 약산성의 토양에서 자란 단양 육쪽마늘은 맛과 향이 독특하기로도 유명하다. 지역의 특산품인 만큼 마늘을 이용한 요리도 다양하다.
마침 일정 중 중식을 해결하는 곳은 충북 제6호 향토음식 기능 보유자의 집이었다. 온갖 종류의 마늘 음식이 한상 가득 차려지는 ‘마늘정식’으로 육회와 수육부터 만두, 옥수수 샐러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채로운 음식들을 한 번에 맛볼 수 있으니 어떤 메뉴를 선택해야 할까 고심할 필요도 없다.
다행히 집밥 사랑이 유난하신 어머니의 입맛에도 마늘정식이 적중했다. 식사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대화의 주제는 이십여 년을 거슬렀다. "출산 직후에 아기의 얼굴을 보곤 간호사가 예쁘다라고 연신 감탄을 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런 모습인지..." 물음인지 책망인지 모를 이야기까지도 유쾌하게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