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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다 Nov 10. 2019

'러블리즈'가 쌓아 올린 5주년

'Lovelyz' 음악 리뷰


2010년대 중반 가요계에는 청순 컨셉 걸그룹이 대유행처럼 퍼졌다. 2010년대 초까지 이어진 섹시 컨셉의 범람과 과도한 선정성 논란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었다. ‘에이핑크 Apink’를 필두로 시작된 이 바람은 점차 걸그룹계의 주요 흐름이 되어갔다. 그 흐름의 중심에서, 대중에게 친숙한 본연의 ‘청순’ 이미지에 가장 잘 다가간 팀이 러블리즈였다.







정규 1집 “Girls’ Invasion” (2014.11.17.) & 리패키지 “Hi~” (2015.03.03.)


정규 1집 "Girls' Invasion"

데뷔작인 정규 1집의 색깔은 두 가지로 나뉜다. 신곡과 선공개곡으로 구성된 전반부는 ‘본질적 청순 컨셉에의 선언’이다. 전곡을 작곡팀 ‘원피스 OnePiece’가 담당했는데, 이 팀에 소속된 가수 ‘윤상’은 1990년대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 <흩어진 나날들> 등을 작곡한 프로듀서로 일찍이 이름을 남긴 바 있다. 따라서 러블리즈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강수지’ 시대의 맑은 청순함을 표방하고, 윤상 특유의 일렉트로니카로 무장된 음악을 가져왔다. 다른 걸그룹들이 1990년대 후반 ‘에스이에스’ 혹은 ‘핑클’이 추구하던 ‘힘이 동반된’ 청순 이미지를 따르고 뉴잭스윙 등의 음악을 가져온 것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점이다.


그런 고전적 청순 이미지가 처음부터 설득력이 컸던 것은 아니다. 강수지 시대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고, 러블리즈와 그 팬들에게는 돌이키기 싫은 모종의 사건으로 어수선했기에 오롯이 러블리즈만의 평가를 받을 여지가 부족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캔디 젤리 러브 Candy Jelly Love>는 ‘승부를 거는 부분’이 없어서 다소 심심하다는 평을 받은 것이 문제였다. 사랑 – 이별 – 회복으로 이어지는 음반 전반부의 흐름에는 부합하지만, 노래 자체가 평이해 팬 아닌 대중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한편 선공개곡인 <어제처럼 굿나잇>은 이 음반의 킬링 트랙이다. 서정성, 음색, 감성이라는 3가지 요소가 고루 부각되었다. <이별 챕터 원 Chapter 1>은 훗날 러블리즈 음악의 주요 뼈대가 되는 ‘서정성 + 전자음’의 원조 격이고, <비밀여행>은 다소 신비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곡으로, 리패키지 음반의 <놀이공원>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한편 이 음반의 후반부는 데뷔 전 멤버들이 공개한 솔로 혹은 듀엣 곡들로 채워져 있다. 이미 공개된 곡들이 정규 음반에 실리는 것이 마냥 긍정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울림이 진행한 걸그룹 프로젝트의 결실임을 천명하는 동시에 각 멤버의 기량과 색깔을 다시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러블리즈의 청순 이미지보다는 2010년대 초 유행하던 음악의 색채를 많이 지니고 있는데, 네 곡의 작곡진이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스윗튠 Sweetune’ 소속이거나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중 추천곡은 단어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곱씹는 ‘진 Jin’의 창법이 인상적인 <너만 없다> 정도.


정규 1집 리패키지 "Hi~"

정규 1집은 그 자체로 나쁘지 않았으나, 리패키지라는 선택은 매우 탁월했다. 기존의 <캔디 젤리 러브>와 <어제처럼 굿나잇> 사이에 신곡 <안녕 (HI~)>과 <놀이공원>을 수록했는데, 사랑 – 이별 – 회복의 흐름에 전혀 방해되지 않고 자연스레 녹아든다. 리패키지가 기존 음반과 융화되지 못하던 수많은 선례에 비해 음반의 완성도를 오히려 높였다는 점에서 리패키지를 통해 이 음반이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선택이었다.


활동곡 <안녕 (Hi~)>은 기존의 밝고 청순한 이미지에 서정적인 멜로디와 고음부를 가미하여 곡의 감정선을 다양화하고 대중적인 설득력을 높이는 데에 성공했다. 기존에 부각되지 못했던 보컬로서의 기량을 드러내는 부분이 추가됐고, 단편적 캐릭터 어필이 아닌 서사성과 서정성을 부여하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때부터 '케이 Kei'의 목소리가 조금씩 부각되기도 했다.


함께 수록된 신곡 <놀이공원>은 러블리즈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확연히 드러났다. 이별한 상대를 환상 속 놀이공원으로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의 가사, 빠르고 밝은 후렴부 멜로디와 멤버 ‘유지애’의 하이톤 랩(혹은 내레이션), 후렴부를 제외한 곡 전반에 깔린 서정적인 분위기 등 이질적일 수 있는 요소들이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곡 자체보다 유지애의 ‘밤새도록 돌아가는 관람차~’ 부분에 이목이 쏠린 것은 아쉽지만, 어쨌든 팀을 알리는 데에 일조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미니 1집 “Lovelyz8” (2015.10.01.)


미니 1집 "Lovelyz8"


데뷔 음반과 마찬가지로 이번 음반 또한 첫 곡은 연주곡 인트로이다. <웰컴 투 더 러블리즈 에잇 Welcome to the Lovelyz8>는 독특한 효과음들을 통해 발랄하고 통통 튀는 분위기를 형성하며 귀를 사로잡는다.


8인 체제로의 복귀를 천명한 음반으로 러블리즈가 본격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일는지도 모른다. 약 7개월만에 컴백한 러블리즈는 이른바 ‘소녀 3부작’의 완성이자 현재까지도 대표곡으로 불리는 <아츄 Ah-Choo>를 들고 나왔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다는 발상이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고, 아직 악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곡과 안무가 워낙 러블리즈와 잘 부합했고, 곡 자체도 이지 리스닝 계열이라 일반 대중에게도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었으며, 멤버들의 방송 활동을 통해 러블리즈라는 그룹이 차츰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발표 당시에는 순위가 널뛰었으나 이후 약 6개월 정도 롱런하며 대표곡으로 자리잡았다.


<아츄>에 이목이 집중되긴 했으나 이 음반은 다소 통일된 색채를 띠던 전작과 달리 다양한 시도를 했다. 선공개된 <작별하나>는 <어제처럼 굿나잇>을 잇는 완전체 단위의 발라드곡으로, 어쿠스틱한 편곡과 러블리즈 특유의 감성이 어우러져 청자의 감정선을 자극한다. <허그 미 Hug Me> 또한 이전까지의 시도와 비슷하지만, 독특한 화음 배치와 진성 고음 배치 등 이전에는 없던 문법이 추가되어 다양성을 가미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전작들과 비슷했다. 그러나 <예쁜 여자가 되는 법> · <새콤달콤> · <라푼젤>은 전작들과 많이 다르다. 이지린(허밍 어반 스테레오)이 만든 <예쁜 여자가 되는 법>은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가사와 특유의 감성을 통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비트와 메인 멜로디가 강조된 <새콤달콤>은 에이핑크의 문법과 유사하고, <라푼젤>은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들이 시도하던 독특한 분위기를 많이 따르고 있다. 이 곡들의 경우 러블리즈 멤버들보다 작곡가나 다른 그룹이 떠오른다는 점은 다소 아쉽지만, 대중에게 친숙한 요소들을 다수 받아들여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싱글 1집 “Lovelinus” (2015.12.07.)


싱글 1집 "Lovelinus"

전작 후반부의 다양한 시도가 이 음반으로 이어진 느낌이다. 특히 활동곡 <그대에게>는 러블리즈 특유의 여리고 서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청순 걸그룹들이 시도하는 힘 있고 직선적인 창법과 사운드, 직접적인 가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러블리즈의 활동곡들에서 유지되던 서정적이고 아련한 이미지나 작곡팀 원피스와의 관계에서 멀어진 곡조를 품고 있어 이질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멤버 진과 '베이비소울 Babysoul'의 고음 처리, 록 성향이 가미된 사운드, ‘팬송’으로 요약 가능한 가사 내용, 특유의 힘차고 경쾌한 분위기 등이 콘서트와 여러 무대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팬들 사이에서는 재평가되기도 했다.


<서클 Circle>은 데뷔 앨범을 만든 원피스와 김이나의 조합임에도 기존의 문법과 약간 다르다. 음색을 강조하고 여린 이미지를 부각하며 화자와 상대의 관계를 원에 비유한 서정적인 가삿말까지는 기존 곡들과 유사하나, <헤일로 Halo>(비욘세) · <피라미드 Pyramid>(채리스) 등 2010년대 초·중반 팝 음악에서 많이 시도된 사운드와 알앤비 기반의 멜로디 라인을 많이 따르고 있는 점이 다르다. 이에 따라 기존에 드물던 강한 고음 부분이 후렴부에 들어 있다.


3번 트랙 <배배 Bebe>는 빠른 템포의 비트와 전자음, 그리고 느리고 서정적인 기타 반주의 다층적 설계가 특징적인 곡이다. 또한 <놀이공원>에서 부각된 유지애의 독특한 랩(혹은 내레이션)이 곡 전체를 관통하며,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그대에게>보다 한층 강하고 힘있는 진의 고음 처리가 시원하게 꽂힌다. 그야말로 러블리즈의 특징적인(혹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이 투영된 곡이며, 흔히 생각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이미지와도 꽤 유사하다.


팬덤 이름인 ‘러블리너스’를 음반 제목으로 지정했고, 전체적인 색깔 또한 기존과 살짝 다르다는 점에서 일종의 외전 혹은 스페셜 싱글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발매 당시에는 <아츄>에 밀려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러블리즈의 다양한 색깔들 중 하나로 재평가받는다. 다만 음반 단위보다는 곡 단위로 재평가받는 경향이 강하다.




미니 2집 “A New Trilogy” (2016.04.05.)


미니 2집 "A New Trilogy"

정규 1집과 마찬가지로 이번 음반 또한 인트로 트랙과 활동곡이 강한 연계성을 가지며, 그 퀄리티가 높다. <문라이즈 Moonrise>라는 제목은 후행하는 트랙에 구현될 가사에 대한 언질을 주는 제목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어지는 <데스티니 Destiny (나의 지구)>는 화자의 상황을 ‘달 · 지구 · 태양’의 관계에 비유한 곡으로, 원피스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 +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결합된 곡이다. 발매 당시에는 <아츄>만큼 힘을 쓰지는 못했으나, 마이너 코드 기반의 곡 구성 · 과학적인 비유와 서사성을 모두 잡아 완결성을 높인 가사 · ‘청순’의 막연한 밑그림에서 벗어난 컨셉 등 <데스티니>는 곱씹을수록 완성도가 높은 곡이다. 다만 발매 당시의 계절감(4월)과 맞지 않았고, ‘십센치’ · ‘장범준’ · ‘지코’ 등 음원 강자들과 ‘여자친구’ · ‘트와이스’ · ‘프로듀스 101’ 등 상승세를 타던 걸그룹들이 나오며 큰 힘을 받기 힘들었다. 그러나 러블리즈 음악의 질적 향상과 발전을 논할 때 <데스티니>를 빼놓을 수 없다.


<데스티니>가 ‘발전’의 측면에 있다면, 수록곡들은 러블리즈의 기존 이미지와 더 가깝다. <퐁당>은 미니 1집의 <허그 미>를 만든 ‘제이윤’의 곡으로, 빠른 템포와 현악이 강조되어 발랄한 분위기를 담은 곡이다. <책갈피>는 <어제처럼 굿나잇>과 <작별하나>를 잇는 발라드로, 베이비소울의 랩이 인상적이다. 독특한 칩튠 사운드와 발랄한 분위기의 <일센치 1cm>, 밝고 설레는 분위기와 순 한국어 가사의 <마음 (*취급주의)> 등의 두 트랙을 이어 붙임으로써 러블리즈 특유의 밝고 청순한 이미지를 확장했으며, 더불어 팬들의 호응도 이끌어 냈다.


한편 마지막 트랙 <인형>은 활동곡 <데스티니>와 더불어 러블리즈의 성장과 발전을 의미한다. 왈츠 기반의 반주 위에 플루트 · 아코디언 등의 악기를 도입하여 동화적인 분위기를 구축한 것은 기존의 ‘밝은 전자음악’과 거리를 두는 시도였다. 또한 화자가 마음을 둔 대상에 대해 갖는 수동적 · 종속적 지위를 각각 ‘달’과 ‘인형’으로 표현함으로써, 특정한 상대에게 마음을 뺏긴 화자의 상태와 심리를 일종의 수미상관 형태로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말하는 듯한 멤버들의 창법과 나긋한 목소리가 이 곡의 동화적이고 아련한 분위기를 더욱 강화했다.


분명 이 음반은 새로운 시도와 기존의 색깔이 잘 조합된 음반이었다. 또한, 시기만 잘 맞추면 더 상승할 수 있는 트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음반을 낸 시기가 너무 안 좋았고, <아츄>의 이미지를 더 가져가야 할 때에 너무 급하게 방향을 틀어 버렸다. 결국 팬들이나 평론하는 사람들이 듣기에는 좋지만, 대중에게 평가받을 기회를 놓쳐 결과적으로 아쉽게 된 음반으로 남았다.





정규 2집 “R U Ready?” (2017.02.26.) & 리패키지 “지금, 우리” (2017.05.02.)


정규 2집 "R U Ready?"

솔직히 단순한(혹은 그렇게 들리는) 구성과 다소 난해한 가사 때문에 활동곡 <와우 WoW!>는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음반 표지의 뚜렷한 색감과 노랑 + 분홍의 색깔 배치는 ‘전형적인 걸그룹 이미지의 반복’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음원 사이트에서 발생한 사건은 그렇다 치더라도, 삼엄한 시국 탓인지 <와우> 자체가 대중에게 강력하게 먹혀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러블리즈 음악을 통틀어, 정규 2집을 들으면서 가장 놀랐다. 음반이 진행될수록 각 곡의 개성과 완성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를 모르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음반 안에 녹아 들었고, 철저한 팬덤 지향적 운영을 하는 울림답게 까다로워진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도의 질을 갖췄다.


인트로 트랙 <얼 유 레디 R U Ready?>에 이어지는 활동곡 <와우>는 굉장히 실험적인 곡이다. 일단 곡의 구조가 꽤 특이하다. 각 절이 극단적으로 짧고, 장조와 단조를 오가며, ‘깜빡깜빡~’ 부분과 ‘쟤 이뻐?’ 부분이 비중을 크게 차지한다. 게다가 원피스의 사운드가 의외로 마냥 대중적이지만은 않은데다, 직관적 해석이 힘든 가사와 칩튠 사운드 또한 호불호를 크게 가를 요소가 된다. ‘사랑은 이차원’이라는 발상 자체는 대중적이지만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은 아니라서, 이를 기껍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펑키한 분위기에 힘입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화자에게서 생기를 느낄 수도 있고, 게임 음악 같은 사운드와 ‘사랑은 이차원’이라는 발상에서 현실과 유리된 인상을 받을 수도 있기에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당연했다. 차트 실종 사건 또한 문제가 됐지만, 이 곡 자체도 완성도와는 별개로 크게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실험적인 편에 속한다.


오히려 대중성은 후행 트랙인 <카메오 Cameo>에서 더 잘 드러난다. <데스티니>에 이어 <카메오>에서도 ‘주연 – 조연 – 까메오’의 삼각 비유가 등장하는데, 슬픈 가사와 밝은 분위기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 가사의 이해가 쉽고, 곡 자체의 퀄리티가 좋으며, 대중적으로 수용 가능한 분위기를 띠고, 무엇보다 러블리즈의 기존 이미지와 잘 부합한다는 점에서 대중성 자체는 이 곡이 더 높다. 훗날 출연한 “컴백전쟁: 퀸덤”에서 이 곡을 뮤지컬 버전으로 선보였을 때 ‘가장 러블리즈답고 잘어울리는 무대’라는 평을 들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모션 Emotion> 또한 독특한 트랙이다. 이전 트랙의 ‘슬픈 가사 + 밝은 멜로디’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트로피컬 · 트랩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곡을 다채롭게 구성했다. 간간이 등장하는 베이비소울의 랩 파트 또한 곡과 잘 어울린다.


여덟 멤버를 셋으로 묶은 뒤, 각각의 유닛곡을 넣었다는 것 또한 좋은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덕분에 8인 체제에서는 알기 힘든 멤버들의 개성이 비중 있게 조명되고, 일부 멤버에게 쏠린 비중 또한 평탄화할 수 있었다. 메인 보컬인 베이비소울 · 케이 · 진이 참여한 <새벽별>은 이전까지의 발라드 계보를 잇는 곡이다. 현악이 강조된 분위기는 발매 당시의 계절감과 일치하며, 서정적인 가사가 멤버들의 음색과 잘 맞아 들어갔다. '이미주' · '류수정' · '정예인'이 참여한 <더 The>는 기타 사운드가 강조된 팝 장르로, 특유의 발랄한 이미지가 해당 멤버들과 잘 부합해 개성을 살렸다. 유지애 · 서지수가 참여한 <나의 연인>은 리듬감과 음색이 강조된 보사노바 곡으로, ‘코지마 마유미 小島麻由美’의 <私の恋人 (와타시노코이히토: 나의 연인)>을 번안했다. 단순한 구조가 반복되며 차츰 악기를 쌓는 점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두 멤버의 음색이 나긋한 분위기를 한층 살렸다.


한편, 겨울에 나온 음반 답게 <새벽별> · <첫눈> · <나잇 앤 데이> · <나의 연인> 등 감성을 자극하는 곡들도 다수 실려 있다. <첫눈>은 오래 전 스탠더드 팝이 연상되는 겨울 분위기의 곡으로, 첫눈이 내리는 날 첫사랑이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 와주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제시된 곡들 중 겨울의 계절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차용한 곡이며, 가사 또한 첫눈이 내릴 즈음(11월)에 데뷔한 러블리즈가 팬들에게 보내는 내용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한편 <나잇 앤 데이 Night and Day>는 상실을 겪은 화자가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상황을 담았다. 거친 질감의 건반 · 기타 · 비트를 사용하고, 진성을 배제한 고음과 화음을 배치해 다소 처연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음울한 분위기를 담았다.


<똑똑>은 독특한 분위기의 업템포 곡인데, 작곡자는 다르지만 전작 중 <배배>와 어느 정도 유사하다. 짝사랑하는 상대 앞에서 망설이는 심리를 담고 있으며, 독특한 전개와 발랄한 매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한편 <숨바꼭질>은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전개가 인상적인 곡으로, 마음에 담은 상대를 아직은 멀리서만 지켜보는 풋풋한 감성을 숨바꼭질에 비유했다. 곡의 전반에 현악 소리가 깔려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관악기 · 건반 · 팀파니(룰 연상시키는 타악) 소리가 포인트처럼 작용해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보컬을 강조하고 악기를 최대한 뒤로 뺀 하이라이트 후에는 일렉기타가 등장하여 뮤지컬의 끝이자 대장정의 마무리와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정규 2집 리패키지 "지금, 우리"

이후 러블리즈는 3개월이 안 되어 리패키지를 들고 돌아왔다. 활동곡 <지금, 우리>는 <데스티니> - <와우>로 이어지던 ‘사랑 3부작’의 마지막 곡으로, 몽환적인 도입부와 속도감 있고 청량한 후렴부가 가사 속 설렘을 확장한다. 짝사랑하는 내용의 <와우>가 불안정한 심리를 반영한 듯 구조와 분위기가 급변하던 것과는 달리, 사랑이 이루어진 내용의 <지금, 우리>는 설렘과 행복감으로 가득 찬 심리를 일관된 기조와 분위기로 풀이했다. 덕분에 팬덤이 아닌 대중에게도 설득력을 가졌으며, 데뷔 첫 음악 방송 1위를 안겨 주기에 이른다.


함께 실린 <아야 Aya>는 <허그 미>와 <퐁당>을 만든 제이윤의 곡으로, 러블리즈의 귀여운 이미지를 총집약해 팬들의 ‘덕심’을 제대로 자극했다. 사실상 러블리너스를 위한 팬서비스에 가까운 곡.


정규 2집은 음악적으로, 정규 2집 리패키지는 대중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 활동은 러블리즈에게 큰 의의를 지닌다. 우선 리패키지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이미지를 풍겼던 정규 1집과 달리 정규 2집은 음악적으로 발전되고 다양한 모습을 모두 담아 그 자체로 알찼다. <카메오>나 <이모션>은 물론, <새벽별> · <첫눈> · <나잇 앤 데이> · <숨바꼭질> · <나의 연인> 등 개별적인 완성도도 높고 개성도 강할 뿐만 아니라 멤버들의 발전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트랙들이 실렸다. 한편 정규 2집 리패키지는 대중에게 친숙하던 러블리즈의 매력을 발현하고, 데뷔 첫 음악 방송 1위를 기록하는 등 대중적 성과가 뚜렷했다. 정규 2집에서 부족했던 점을 정확히 메웠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미니 3집 “Fall in Lovelyz” (2017.11.14.)


미니 3집 "Fall in Lovelyz"

데뷔 3주년을 맞아 발매한 미니 3집은 여러모로 러블리즈의 색깔과 정체성을 강화하는 음반이었다. ‘겨울나라의 러블리즈’라는 콘서트를 브랜드화하거나, 대놓고 겨울을 노린 미니 3집을 발매한 것 모두 ‘겨울은 러블리즈의 계절’임을 선언한 것과 같다.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인트로 곡 <스포트라이트 Spotlight>를 지나 만개하는 <종소리>는 러블리즈가 주로 다루던 ‘사랑에 빠진 풋풋한 감정’의 겨울 버전이다. 그동안 함께하던 원피스 대신 ‘원택’ · ‘탁’ · ‘애런’의 조합을 선택했는데, 크게 낯설지 않은 선에서 러블리즈의 매력을 잘 살렸다. 기존 러블리즈의 동화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는 동시에 이전보다 템포를 올려[두근거림을 확장하고, 차임벨 소리와 달달한 음색을 통해 겨울 동화의 판타지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데스티니> · <카메오>에 이어 ‘삼각관계의 비유 + 밝은 멜로디’ 계보를 잇는 <삼각형>은 칩튠 사운드를 통한 밝은 분위기 전개와 새드 엔딩으로 발현되는 서정성 확대라는 상반된 측면에서 동시에 힘을 발휘한다. 다소 복잡한 전개의 <그냥>에서는 이전까지의 텐션은 잠시 가라 앉는데, 상대의 확실한 감정 표현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가사 내용에 비해 사운드 면에서 너무 복잡한 요소를 담으려 하다 보니 다소 애매해졌다. <폴린 Fallin’>은 이전까지의 발라드 계보를 잇기도 하지만, 알앤비 템포와 곡조를 도입하여 차별점을 두었다. 낯선 멜로디와 후렴부의 남성 코러스는 호불호를 가를 수 있다.


가라앉은 텐션은 <비밀정원>에서 굉장히 강하게 살아난다. 꽤 레트로스런 멜로디의 건반 도입부를 지나면 빠르기와 힘을 강하게 가져가는 드럼과 신스 사운드가 나타난다. 그 위에 ‘기억’을 ‘정원’에 비유한 문학적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만나 이전과는 다른 질감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서정성 + 음색’의 확실한 무기를 통해 앞선 두 트랙에서 올라갔던 호불호의 장벽을 무너뜨리며, 러블리즈의 판타지적 세계관을 다른 질감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돌파구를 마련했다.


한편 <졸린 꿈>은 ‘힘이 되어 주겠다’는 동화적인 순수성을 풀어낸 트랙으로, 가수 ‘심규선(루시아)’의 맑고 깨끗한 감성이 투영되었다. 어쿠스틱 사운드와 경쾌한 분위기, 간간이 들리는 차임벨 소리를 통해 음반의 마지막을 설렘과 행복감으로 마무리하여 ‘겨울 동화의 해피 엔딩’을 장식했다. 정규 1집과 리패키지, 미니 2집, 정규 2집과 리패키지 등 러블리즈 음반에는 유독 서정적이고 하향적인 마무리를 도입해왔는데, 이에 반해 가장 기분 좋은 곡이 마무리한다는 점이 꽤 인상적이다.


점차 다변화를 시도하는 여타의 걸그룹들과 달리 전통적 · 고전적 의미의 ‘청순’ 본위를 지켰다는 점에서, 충성도 높은 팬층을 지향하는 울림의 프로듀싱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자기 복제와 답습에 머문다면 비판받을 수 있으나, 본연의 색을 지키다가도 틈틈이 음반마다 새로운 시도를 수록하는 러블리즈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이번 음반에서도 <그냥> · <폴린> 등 호불호를 가를 수 있는 실험과 시도를 이어 갔으며, <비밀정원> 같은 대안 또한 제시했다. 큰 틀에서는 기존의 색을 고수했지만, 그 안에 개개인의 기량과 팀의 음악적 발전이 담겨 있다.





미니 4집 “治癒” (2018.04.23.)


미니 4집 "治癒(치유)"

다시 변화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스윗튠 Sweetune’과 활동곡을 작업했다. 어쿠스틱한 분위기의 인트로 곡 <治癒 치유>에 이어지는 활동곡 <그날의 너>는 스윗튠 특유의 빵빵한 사운드가 곡 전체를 감싸는 트랙으로, 각 절의 서정성을 후렴부에서 상쾌하게 털어내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겨울 이미지를 차용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봄을 테마로 차용했으며, 사랑 혹은 헤어짐의 이분법으로 정의되던 활동곡에서의 태도를 ‘담담한 수용’으로 바꿔내어 새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다만 탄탄한 후렴부와 서정적 멜로디로 크게 성공한 <아츄>와 달리, <그날의 너>는 빵빵한 사운드와 빈약한 후렴부로 유명한 스윗튠의 명성을 재증명하면서 결국 다시 <아츄>를 상기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일관성을 가져간다는 측면에서는 전작 <종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계절감 어필에 성공하여 훗날 역주행한 <종소리>와 달리 <그날의 너>는 일반 대중에게 <아츄>와의 차이를 어필하지 못했다.


그래서 후속곡인 <미묘미묘해>의 존재가 더욱 아쉽다. 펑키한 도입부를 시작으로 전자 기타 · 현악 등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이 트랙은 이전까지의 러블리즈 곡들보다 전개가 빠르고, 다채로우며, 탄탄하다. 따라서 <그날의 너>를 통해 어필하려던 청량감과 에너지는 이 곡이 더 잘 발산한다. 또한 이전과는 다른 멤버들의 귀여운 매력 또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유지애 특유의 어린 목소리와 고양이 안무가 호불호를 불러 일으킬지언정 ‘작정하고 나왔다.’는 인상을 심기에는 충분했다.


<템테이션 Temptation>은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내용을 담은 도발적인 곡이다. ‘네 생각처럼 난 순진하지만은 않아’, ‘때로는 못된 상상도 해, 다만 대놓고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등의 가사, 진성을 배제한 후렴부 등 곡 전체에 다소 발칙한 분위기가 내포되어 있다. 곡 설명에 따르면 ‘어른으로 성장하는 느낌’을 ‘섹시한 스타일’(?)로 담아냈다고 하는데, 섹시 코드로 받아들일 만한지는 청자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한편 이 곡은 유달리 베이비소울의 랩 파트가 인상적이다. 곡 중반이 아닌 마지막에 배치되었고, 그 길이가 통상적인 8마디가 아닌 16마디인데다, 이 자작 랩 파트가 곡의 정서적 하이라이트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색다른 러블리즈를 맛볼 수 있는 곡.


이후 수록된 <수채화>와 <샤이닝스타>는 러블리즈가 가져 오던 기존 색채들을 각각 계승했다. <수채화>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봄의 감성을 교합하여 확장한 발라드 곡으로, 번지고 스미는 마음을 수채화에 비유하여 순수한 감성을 표현했다. <샤이닝스타 Shining★Star>는 러블리즈 곡들 중 손에 꼽을 정도의 빠르기 위에서 멤버들의 귀여운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했다는 점에서 <배배>와 <미묘미묘해>의 조합 같은 이미지를 담았다.


활동곡 선정 문제, 곡 후렴부에서의 특정 멤버 의존 문제에 대해 분명 아쉬움이 남는 음반이다. 그러나 봄의 이미지를 차용한 결과 이전 곡들보다 강한 생기와 에너지를 품었으며, 정규 2집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귀를 잡아 끈다. ‘들을수록 새로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디 한 군에데 고이고 머무는 정도는 아니다.





디지털 싱글 “여름 한 조각” (2018.07.01.) & 스페셜 음반 “Muse on Music” (2018.09.10.)


한편 <여름 한 조각>은 모든 것이 의외였다. 전작 발매 이후 3개월도 안 된 시점에, 여름 계절 음악을, 그것도 디지털 싱글로 내놓은 것은 그동안의 행보와 달랐다. 예상보다 조악한 퀄리티의 음반 표지와 짧은 활동 기간은 팬들의 불만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다만 러블리즈 음악 중 트렌드(트로피컬 음악)를 가장 과감하게 반영했다는 점, 그동안 크게 공략하지 않았던 여름을 노렸다는 점 등은 칭찬할만한 부분이었다. 다만 이때 트와이스 · 볼빨간사춘기 등이 여름 계절 음악을 장악하고, 멜로망스 · 폴킴 등의 음원 강자들이 강세였다는 점은 결과적인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2개월도 안 되어 실물 음반이 나왔는데, 정식 음반이 아닌 걸그룹 최초의 ‘인스트루멘탈 앨범’이었다. 활동곡을 제외하면 인스트루멘탈을 잘 내놓지 않는 것이 업계의 풍조였으나, 러블리즈는 과감하게 그동안의 활동곡 중 33곡을 정식 발매했다. 팬들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고, 러블리즈 음악 특유의 완성형 사운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이중 효과를 가져왔다.


디지털 싱글 "여름 한 조각" / 인스트루멘탈 음반 "Muse on Music"





미니 5집 “Sanctuary” (2018.11.26.)


미니 5집 "Sanctuary"

2018년에 발매된 네 번째 음반이자, 11월에 발매된 세 번째 음반. 미니 3집에서 겨울의 설렘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면, 이번 음반은 오히려 가을의 아련하고 쓸쓸한 정서와 가깝다. 또한 미니 3집 · 4집의 활동곡들은 기존 ‘원피스’의 감성에서 벗어나 나름 다양한 색깔을 시도했던 것과 달리, 이번 음반에서는 원피스의 일원인 ‘스페이스카우보이’가 다시 작업함으로써 기존의 서정성을 계승 혹은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트로 곡 <네버 엔딩 Never Ending>에 이어지는 활동곡 <찾아가세요>는 기존의 러블리즈 곡들이 연상되는 아련함이 주요 정서로 등장한다. 특히 1·2절과 3절이 다르다는 점, 현악 위주로 진행된다는 점, 짝사랑의 정서를 아련하게 표현했다는 점 등은 <데스티니>와 굉장히 유사하다. 그동안 러블리즈 음악에서 구현됐던 극적인 연출을 많이 따랐으며, 이러한 매력이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곡의 퀄리티와 별개로 이전만큼 신선하지 않다는 점은 다소 약점으로 작용한다. 원피스 구성원과 작업한 이상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논리도 있지만, 똑같은 것만 반복하는 것과 자기 색깔을 지키는 것은 미묘하게 다르다. 기존 곡들과는 다른 이 곡만의 특징적 요소나 테마가 보이지 않아 이전의 문법들로 이 곡을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은 꽤 아쉽다.


서정적인 곡들을 연이어 수록한 것은 이번 음반의 주안점이 무엇인지를 증명한다. <라이크 유 Like U>는 트렌디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알앤비에 가까운 각 절의 멜로디, 기존의 팝을 따르는 서정적인 후렴부의 조합으로 오묘한 음반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었다. <리와인드 Rewind>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잠시 멈추고 뒤돌아봐도 된다는 위로를 담은 곡으로, 고민을 담은 각 절과 위로를 담은 후렴부가 교차하며 청자와의 교감을 시도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대에게>를 만들었던 ‘흑태’가 참여한 곡으로, 청자에게 힘과 희망을 주려는 면에서 유사한 기조를 띤다. <레인 Rain>은 사랑이 조금씩 스미는 모습을 비에 비유한 곡으로, 절제된 편곡과 가사를 통해 다소 조심스러우면서도 풋풋한 감성을 잘 드러냈다. 마지막 트랙인 <꽃점>은 수줍은 감성을 꽃잎에 의탁하여 표현한 곡으로, 다소 복고적인 분위기의 발라드이다.


<백일몽>은 이 음반의 백미이다. 우주소녀의 <비밀이야> · <기적 같은 아이> · <르네상스> 등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정호현’의 곡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을 꾼다는 발상과 마이너 조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템포가 빠르고 현악과 신디사이저가 특유의 몰아치는 분위기를 만들어 속도감을 더했으며, 이전 트랙들에서 쌓인 서정성을 강하게 분출하는 음반 내의 하이라이트 역할을 한다.


이 음반은 대체로 톤 다운 된 분위기, 이전의 아련한 정서의 계승 혹은 확대로 정리할 수 있다. ‘보호구역,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의 ‘생츄어리 sanctuary’를 음반 명으로 지정한 것은 러블리즈만의 감성을 보존하고 러블리즈와 청자의 정서적 안정을 꾀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전과 크게 다른 시도 혹은 실험이 아닌, 현상 유지를 음반 제목으로 선언한 뒤, 그에 맞는 곡들을 풀어낸 것이다. 신선한 실험이나 진보적 행보를 기대했던 입장(특히 평론가들)에서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 매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는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음반이다.




미니 6집 “Once Upon a Time” (2019.05.20.)


미니 6집 "Once Upon a Time"

이 음반은 전체적으로 레트로를 지향하고 있다. 러블리즈의 음악 자체가 트렌드와 복고 사이의 어딘가에 있기에 새삼스레 복고를 표방한 것은 조금 의문스럽다. 인트로 트랙 <원스 어폰 어 타임 Once Upon a Time>에 이어지는 활동곡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는 – 개인적 취향과는 달리 -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데뷔 5년차이긴 하나 러블리즈가 ‘그 시절’을 떠올리는 발상과 크게 어울리지도 않고, 음반을 낸 시기도 <데스티니>의 실수를 반복했다. 장조와 단조를 오가는 작법, 아련함이 강조된 정서, 풋풋함이 강조된 가사 등은 이전의 문법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이 곡은 멤버들에게 호재였다. 가장 큰 의의는 고른 파트 배분 베이비소울의 전진 배치이다. 케이 특유의 또랑하고 망울진 음색은 러블리즈 음악의 중요한 요소이나, 이에 편중되는 바람에 다른 멤버들의 보컬이 잘 부각되지 않는 경향이 꽤 심했다. <그우사우>는 케이에게 몰린 하중을 덜어내고, 다른 멤버들의 파트를 대폭 늘려 고르게 존재감을 알릴 수 있었다. 특히 베이비소울의 경우 각 후렴부에 고르게 등장하고 마지막 후렴부의 고음 애드리브를 담당하는 등 이전보다 전진 배치됐는데, 다소 밝고 빠른 이번 곡과 본인의 목소리가 잘 어울렸다. 이해는 가지만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파트가 편중되었던 지난 곡들을 감안하면, 이 곡의 고음 애드리브는 일종의 한풀이와 같이 들리기도 한다.


후속곡 <클로스 투 유 Close To You> 또한 – 호불호와는 별개로 - 이전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원피스 소속 작곡가들은 참여하지 않은 대신 <백일몽>을 작곡한 ‘정호현’이 참여했음에도, 정호현 특유의 현악 배치 대신 원피스 곡에서 들리던 신디사이저가 곡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는 점은 꽤 특이하다. 이에 더해 특유의 복고스러운 분위기와 감성적인 멜로디까지, 원피스가 참여했던 기존의 음악들이 러블리즈와 함께하는 다른 작곡가들에게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각 절에서는 스토리 텔링에 집중하고, 후렴부에서는 명확히 끊어지는 포인트 가사 뒤로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르는 것은 <아츄>류의 흔적으로 보인다.


<스위트 러브 Sweet Luv>는 미니 4집의 <비밀정원>을 만든 프로듀싱 팀 ‘풀블룸’의 곡으로, 풀블룸만의 독특한 소리들이 많이 반영되고 그루브감이 강조되어 이전 곡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어지는 <시크릿 스토리 Secret Story>는 러블리즈의 발라드 계보를 잇는 곡으로, 동화같은 분위기가 외려 이별의 슬픔과 아련함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우사우>와 마찬가지로 케이의 하중을 더는 동시에 다른 멤버들의 감성 표현이 더 효과적으로 드러났으며, 음반 내의 킬링 트랙이기도 하다. 마지막 곡인 <러브 게임 Love Game>은 칩튠 사운드를 이용한 댄스곡으로, 음반 전체에 깔린 복고지향적인 기조를 한 번 더 드러냈다.


각 곡의 퀄리티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른 음반들보다 유달리 파트 배분에 신경쓴 모습은 호평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의 문법들로 이 음반을 풀이할 수 있고, 각 음반마다 예상을 뒤집은 이른바 ‘뒤통수’ 트랙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현상 유지’를 선언했던 전작과 ‘복고’를 표방한 이 음반이 연이어 나온 것 또한 평이 갈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 이쯤이면 울림은 팬층이 아닌 일반 청중은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생각될 정도이다.







총평


러블리즈는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고, 평단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원피스로 대표되는 사운드 철학, 전통적 의미의 청순을 고수하는 전략, 케이로 대표되는 애교 노동의 명성, 팬덤의 충성도가 매우 높다는 이미지 등은 외려 일반 청중과 라이트 팬의 진입 장벽을 높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러 시도를 할수록 러블리즈의 이미지가 <아츄>로 수렴하는 독특한 현상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러블리즈가 차곡차곡 쌓은 5년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이들의 음악이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어도 결코 부실하지는 않다. 오히려 양산형으로 찍어내거나 트렌드에 맞추기 급급한 일부 그룹들보다 훨씬 더 정교한 음악적 체계를 갖췄고, 대외적 이미지에 가린 다양한 접근과 시도를 통해 음악적 스펙트럼은 한층 넓어졌으며, 데뷔 시기 이후 끊임없는 노력으로 개인 기량의 발전을 증명했다.


분명 러블리즈는 과소평가 받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대외적인 이미지 혹은 편견으로 재단할 수 없는 퀄리티를 갖췄다. 러블리즈는 단순히 5년을 버티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분명 이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차곡히 쌓아 올렸다. 조금 더 합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은 아쉬우나, 이들의 진가가 다시 평가받을 때가 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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