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보다 Aug 14. 2019

‘오마이걸’ 음악에 주목하는 이유

내실있는 음악, 과감한 실험, 팬들과 공유한 발전과 성장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여자 아이돌을 쭉 나열해 본 적이 있다. 팀 수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사람 수로는 대략 300명 정도가 나왔다. 10명 씩 잡아도 30개 팀 정도는 된다는 뜻인데, 팀 당 10명이 넘는 대단위 걸그룹은 우주소녀(13명) · 아이즈원(12명) · 이달의 소녀(12명)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아이돌로 활동중인 사람들은, 여자만 따져도 이렇게 많다.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이 모두 신선한 것은 아니다. 현재 걸그룹의 색깔은 대략 ‘여자친구’류의 청순 계열, ‘트와이스’ · ‘레드벨벳(레드 컨셉)’류의 깜찍 계열, ‘마마무’ · ‘레드벨벳(벨벳 컨셉)’ · ‘블랙핑크’류의 걸크러시 계열 정도로 나뉜다. 컨셉이든 음악이든 대부분의 걸그룹이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100% 신선한 음악을 갖고 나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모험이기에, 그러한 시도는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미니 1집 "Oh My Girl" / 미니 2집 "Closer"


그래서, 활동기가 한참 지난 뒤에야 접한 <윈디 데이 Windy Day> 때문에 오마이걸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적극적인 불호를 받고 있지만, 중독성과 똘끼(?)를 이유로 이 곡을 지지하는 이들도 꽤 되는 듯하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 ‘오답’으로 단정지으면서 ‘정답’에 가까운 안정을 택하면 안일하다고 비난하는 일부 평론가들의 태도를 이해하기 힘든 입장에서, 이 곡은 시도만으로도 절반의 점수를 줄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그 색깔이 마음에 들면 나머지 반의 점수를 줄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 곡은, 정신 없었던 <컬러링 북 Coloring Book>이나 뜬금 없었던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에 비할 바는 당연히 아니었고,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했다.


물론 그런 입장에서 오마이걸 음악이 귀에 들어왔다기엔, 이들의 음악이 아예 새로운 수준은 아니다. 튀는 시도가 있긴 하지만 오마이걸 음악은 ‘대체로’ 신선한 편이다. <윈디 데이>를 포함한 다수의 곡에 참여한 작곡가 ‘안드레아스 오버그 Andreas Oberg’, <비밀정원>을 포함한 다수의 곡에 참여한 ‘션 알렉산더 Sean Alexander’ 정도만 봐도 동방신기 · 슈퍼주니어 · 소녀시대 · 샤이니 · 엑소 · 뉴이스트 등 다수의 가수들과 협업하며 소위 에스엠스러운 음악’의 축으로 활약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소녀시대 · 에프엑스 · 레드벨벳 등의 곡들과 오마이걸 음악을 한데 섞어 들으면, 의외로 구분하기 힘든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이들의 음악은 그 자체로 아주 신선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미니 3집 "Pink Ocean" / 미니 3집 리패키지 "Windy Day"


이들에게 주목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아주 신선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빼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는 음악이다. 데뷔곡인 <큐피드 Cupid>를 포함, <클로서 Closer> · <라이어 라이어 Liar Liar> · <비밀 정원> · <불꽃놀이> · <다섯 번째 계절>에 이르기까지 활동곡 대부분의 퀄리티가 매우 높다. <윈디 데이> · <컬러링 북> ·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등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긴 했으나,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 자체가 오마이걸의 음악적 폭을 넓히는 데에 한 몫을 차지한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리메이크 곡인 <내 얘길 들어봐>는 오마이걸 성장의 상징으로 꼽는다. 원곡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원곡을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세련되게 흡수하고 소화했기 때문이다.


수록곡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미니 1집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이끈 <핫 서머 나이츠 Hot Summer Nights>, 동화같은 분위기의 <슈가 베이비 Sugar Baby> · <메아리> · <일루전 Illusion>, 타이틀곡인 줄 알았던 <한 발짝 두 발짝>, 멤버들의 음색을 잘 살린 <인 마이 드림즈 In My Dreams> · <매직 Magic> · <소나기>, 독특한 소재와 특유의 긴장감이 돋보인 <크라임 씬 Crime Scene> · <보그 Vogue> · <체크메이트 Checkmate> 등 다양한 분위기의 매력적인 곡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단순히 트랙 수를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각 곡마다 확실한 의도와 방향이 제시되어 있으며, 그 곡들을 모아 놓은 각 음반이 매우 그럴듯하다. 2015년 4월 데뷔 이후 2019년 5월에야 정규 1집이 발매된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각 곡들을 듣고 나니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여름 싱글 "내 얘길 들어봐" / 미니 4집 "Coloring Book"


<윈디 데이>를 비롯한 여러 시도들이 흥미로워서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이들은 어느 정도 정형화된 방향으로 들어옴으로써 빛을 보기 시작했다. <내 얘길 들어봐>에서 시작된 주목도를 이어가지 못하던 중 반등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청순 컨셉으로 한껏 무장한 <비밀정원>이었다. 대중에게는 청순 컨셉으로 친숙하고, 팬들에게는 <클로서> 때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상기시킴으로써 음원과 음악 방송 등에서 자체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그 다음 활동곡인 <불꽃놀이>는 이전 곡들에 비하면 과감한 시도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얻은 나름의 답을 향해 묵직하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이 <다섯 번째 계절>이었다. 청순 + (다소 밝은 톤의) 아련 + 몽환 컨셉이 오마이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임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이전만큼 실험적이지는 않더라도 <다섯 번째 계절>은 일종의 결실 같은 의미를 지니기에 호평해 마지않는 곡이다.


둘째는 실험적인 컨셉을 대단히 충실하게 소화하는 오마이걸 멤버들의 기량과 성실성이다. 오마이걸은 각 멤버들의 장점이 그룹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오마이걸의 곡은 대부분 ‘효정’ · ‘승희’가 곡의 중심을 떠받치고 ‘유아’ · ‘비니’ · ‘지호’가 그 피로감을 덜어주며 ‘미미’가 분위기를 환기하고 ‘아린’이 마무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새로울 것 없는 구성이지만, 이들의 평균적인 기량 자체가 꽤 높고 음색이 또렷해서 곡마다 따분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진행된다.


미니 5집 "비밀정원" / 유닛 팝업 앨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각 곡을 충실하고 밀도있게 소화하는 모습은 멤버들의 성실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멤버들의 이미지만 놓고 보면 이들은 마냥 밝고 해맑아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은, <컬러링 북>이나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같이 시도만 좋았던 곡들을 포함해, 느슨하지도 어설프지도 않게 각 곡의 컨셉에 전적으로 몰입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무얼 하더라도 확실하게 하는 야무진 자세와 프로 의식, 그리고 이를 부각시키는 각 멤버들의 실력이 오마이걸의 매력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소녀시대에게서 보였던 컨셉 소화 능력, 여자친구에게서 보였던 성실하고 착실한 이미지가 한데 모였다는 인상을 준다.


실험적인 음악과 컨셉은 그 자체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마이걸은 과감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각 실험들은 뚜렷한 색깔을 띠고 있었고, 동시에 그 실험들은 대체로 납득할만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 실험들이 쌓인 채 발매한 정규 1집은 오마이걸이 터득한 나름의 해답을 담고 있었으며, 과소평가되고 있는 오마이걸의 성장과 발전을 상징하고 있었다. 과감히 도전하고, 성실히 노력하며, 그 결실을 얻는 서사를 팬들과 끊임없이 공유한 끝에 오마이걸은 ‘살아남은’ 그룹이 아니라 ‘이루어 낸’ 그룹이 되었다. 일종의 결실이 나온 상태에서 음악적인 실험을 이어갈지는 알 수 없다. 다소 안정적인 노선을 택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경력과 색깔을 갖췄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실험이 가미된 음악을 계속 했으면 한다. “내가 불편해야 손님들의 입이 즐겁다.”라던 포방터 돈가스 사장님의 말씀처럼, 제작자나 가수는 다소 괴롭더라도, 음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질 높고 다양한 음악을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오마이걸과 회사는 자신들의 일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알아서 잘 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 지켜보면 될 일이다.


미니 6집 "Remember Me" / 정규 1집 "The Fifth Season"





+ 신곡에 대한 간단 리뷰


신곡 <번지 Bungee>와 <트로피컬 러브 Tropical Love>는 실험성보다는 무난함을 선택한 최근의 기조가 반영된 곡들이다. 그래서 시각에 따라 평이 크게 갈릴 곡이다. ‘여름 계절 음악’의 기대치라는 관점에서는 나쁘지 않다. 애초에 계절 음악은 신선도보다는 기대치에 집중된 영역이기 때문이다. 비교 대상이 <다섯 번째 계절>이나 된다면 조금 아쉽다. 전작이 워낙 각이 잡히고 밀도가 있었기 때문에 <번지>는 다소 무난하고 느슨하게 느껴진다. 사계절의 논의를 뛰어 넘은 ‘다섯 번째 계절’에 대해 노래해놓고 기존 사계절의 틀로 돌아가는 흐름이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규 1집이 그 자체로 완성도가 크고 완결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리패키지 형식을 띄었다는 것이 일종의 사족이자 셀프 숟가락 얹기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 신곡 2곡과 리믹스 2~3곡이 추가된 싱글 형태로 발매하는 편이 깔끔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정규 1집 리패키지 "Fall in Love"


이전 08화 청하, 궤도에 오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