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아티스트 '청하' 데뷔부터 지금까지
# 데뷔 이전부터 미니 1집까지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시청자들과 많은 서사를 공유한다. 이때 형성된 팬덤은 프로그램이 끝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단,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당시 부여된 기대치와 기대 방향을 일정 정도 충족해야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출연자들이 얻는 이득과 손해 모두 이 ‘기대치’와 관련되어 있다.
시선을 “프로듀스 101” 시리즈로 좁혀 보자. 시즌 1에서 탄생한 그룹 ‘아이오아이 I.O.I’는 ‘연습생 어벤저스’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김세정 · 유연정으로 대표되는 보컬 라인, 전소미 · 최유정 등으로 대표되는 댄서 라인, 정채연 · 주결경 · 김소혜 등으로 대표되는 비주얼 라인 등을 앞세운 아이오아이는 당연히 대중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이 안에서도 청하는 발군의 댄스 실력으로 상당한 팬덤을 형성했고, 노래 실력에 대한 평가와 재평가도 이어졌다.
현역 아이돌을 통틀어 최고 수준의 춤 실력을 가졌다는 평가만으로 청하의 성공 비결을 설명할 수는 없어 보인다. 10개월이라는 짧은 활동기가 지난 후, 아이오아이 출신 멤버들은 저마다의 회사로 돌아가 정식으로 데뷔했다. 다른 멤버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청하만큼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이는 앞서 언급한 ‘기대치’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전소미, 김세정, 최유정, 주결경, 정채연 등의 이름에 따라붙는 기대치는 높아져 있는데, 각 회사들은 이들의 재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
반면 청하가 처음 데뷔했을 때 드는 인상은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힘 있으면서도 유연한 춤선으로 시선을 빼앗고, 대담하고 능숙한 표정으로 무대를 장악하며, 음색에 맞는 시원한 음악으로 청중을 설득했다. “프듀1”의 <뱅뱅 Bang Bang> 무대에서 형성된 청하의 이미지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여름에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를 들고 데뷔한 것도 적중했다.
게다가 청하 자신에게 거는 기대는 그 이상이었는지, 미니 1집 “핸즈 온 미 Hands on Me”는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보컬 역량 또한 담아냈다. 인트로 곡 <핸즈 온 미>는 재즈 풍의 브라스 사운드 위에서 펼쳐지는 청하의 스캣으로 시작해서, 화려한 트랩 비트의 댄스 음악으로 마무리된다.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와 욕심, 그리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정체성이 확인된다. 이어지는 <와이 돈츄 노우 Why Don’t You Know>에는 무대를 휘어잡는 퍼포머로서의 청하가, <메이크 어 위시 Make a Wish>에는 보컬과 악기를 갖고 노는 듯 여유롭고 재간 넘치는 청하가, <우주먼지>에는 섬세한 감성을 조절하는 보컬로서의 청하가 담겨 있다. 데뷔 음반으로 믿기 힘든 퀄리티는 청중을 넘어 평단마저 강하게 설득했다. 대중이 원하는, 대중이 바라는 청하의 정체성에 대해 청하 본인과 엠엔에이치 엔터테인먼트가 깊게 고심한 결과가 그대로 묻어나 있다.
# 청하의 롤러코스터가 시작되다
청하는 약 7개월 만에 미니 2집 “오프셋 Offset”을 발매했다. 인트로곡 <오프셋 Offset>은 보컬 샘플과 허밍으로 구성된 따뜻한 느낌의 전반부, 날카롭고 냉소적인 비트가 주를 이루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전작의 <핸즈 온 미>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롤러 코스터 Roller Coaster>는 복고 알앤비 장르를 현대의 일렉트로니카로 재해석한 곡으로, 세밀한 멜로디와 가사가 부담 없는 상승 작용을 이끌어냈다. 이어지는 <두잇 Do It>에서는 어조가 크게 변화한다. 레게에서 일렉트로니카로의 확장을 능숙하게 감당하고 있으며, 팝 음악의 ‘디바 이미지’에 부합하는 가수들이 떠오르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배드 보이 Bad Boy>는 전작의 <메이크 어 위시>를 떠올리게 하는 스윙 기반의 트랙으로, 청하 특유의 잔망스런 모습이 녹아 있다. <너의 온도>는 피아노와 청하의 목소리만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발라드로, 청하 특유의 ‘머금는 감성’이 잘 드러난 곡이다. 앨범 내에서 유일하게 겨울의 계절감을 십분 활용한 곡으로, 강한 여운을 남기는 곡이다.
미니 1집으로 인해 청하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청하의 상승세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러한 예상보다도 청하의 성공은 빨리 찾아왔다. 여름의 청량감을 강조했던 전작과 달리 계절감을 지우고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뮤직비디오, 안무 등)한 활동곡 <롤러 코스터>는 2018년 내내 꾸준히 사랑받았다. 유독 음원 시장에 <사랑을 했다>와 <뿜뿜> 등의 강자가 롱런했던 시기임을 고려한다면, <롤러 코스터>는 생각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발표 1년이 지나기 전에 스트리밍 1억 회를 달성(가온차트 기준)했고, 연간 음원 차트 14위(가온차트, 멜론 기준)에 올랐다.
2018년 7월에 발매된 미니 3집 “블루밍 블루 Blooming Blue”는 전작에 비해 아쉬웠다. 활동곡 <러브 유 Love U>는 청하의 장점과 맞닿아 있는 일렉트로니카(하우스) 장르였지만, 1년 새 이쪽 시장은 과포화되었다. 무난하게 들을 정도는 되었기에 차트에서 롱런했지만, <롤러 코스터>만큼의 파급 효과가 드러나지는 않았다. 음반 구성 면에서도 <러브 유>와 <체리 키시스 Cherry Kisses>의 분위기가 엇비슷해, 각 곡마다 듣는 재미를 선사하던 전작들에 비해 매력도가 조금 떨어졌다. 음반 후반부의 <드라이브 Drive>와 <프롬 나우 온 From Now On>에 이르러서는 청음 매력도를 회복했다. <드라이브>는 다소 건조하게 시작하여 점차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밴드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이고, <프롬 나우 온>은 알앤비 색채와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인 발라드 곡이다. 청하의 이미지가 걸크러시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하면, 강렬한 곡에서 킬링 포인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 이 음반으로 청하는 음원 차트에서의 경쟁력을 재확인하고, 동시에 방향 전환의 고민을 안게 됐다.
# 두 번의 방향 전환
청하는 더 강렬한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청량, 걸크러시 쪽에 가깝던 이미지에서 섹시 코드를 도입했고, 노래 안에서도 매혹적인 음색을 강조했다. <롤러 코스터>를 만든 ‘블랙아이드필승’ · ‘전군’ 조합과 다시 손잡아 내놓은 <벌써 12시>는 청하에게 첫 음악 방송 1위를 안겼다. 강렬하고 섹시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선을 지킨 덕에 대중성을 유지했고, 청하에게 기대하는 이상적인 무대가 또하나 연출되었다는 평이 뒤따랐다. 여성 솔로 아티스트가 많지 않은 현 가요계에서 독자적인 기반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활동이었으며, 저연령대 여성 팬들의 커버 영상을 통해 팬 유입을 확인했다. 발매 5개월이 넘은 6월 말 현재에도 각종 음원 차트에 남아 있다.
어느 새 미니 4집 “플로리싱 Flourishing”을 발표한 청하는 다시 한 번 초점을 바꿨다. 이전까지의 작품들이 청하 본인과 대중들이 생각하는 청하의 모습과 이미지에 집중했다면, 이번 음반은 청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 모습이다. <벌써 12시>에서 음악적인 방향 전환을 모색했다면, 이번 미니 4집에서는 음악에 담긴 청하의 생각과 태도마저 바뀐 모습을 보인다. 더 자세히는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어떠한 종류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다. 1번 트랙 <치카 Chica>는 팝 음악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라틴 음악이 강렬하게 확장되는 트랙으로, 미니 2집의 <두잇>과 비슷한 이미지이지만 장르 확장을 통해 색다른 청각적 이미지를 추구했다. 2번 트랙 <우리가 즐거워>는 <프롬 나우 온>을 만든 ‘백예린’ · ‘구름’ 조합의 곡으로, 사랑에 빠진 기분을 미디엄 템포로 담아낸 밝은 트랙이다. <치카>에서 형성된 긴장감을 <우리가 즐거워>에서 풀어낸 뒤, <콜 잇 러브 Call It Love>에서 감상에 젖는다. <콜 잇 러브>는 이별의 상황마저도 사랑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발라드 곡으로,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하나씩 풀어놓는 청하의 감정선이 인상적인 곡이다.
이어지는 <플로리싱 Flourishing>은 변화의 중심에 선 곡이다. ‘순간에 집중하고 돌아보지 않아’, ‘나는 뱉어내기(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히 작업해, 나의 감정을 따르고 벽을 허물어, 나는 내 영혼에 닿을 거야’ 등의 가사에는 청하의 포부와 야망이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그동안 자신에게 맞는 색깔, 대중이 기대하는 모습,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 등에 대해 많은 시간 고민하고 연구하는 일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청하의 매력은 무대 위에서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완숙한 퍼포먼스에 있다. ‘솔로 데뷔 이후 2년이란 시간 동안의 감정을 가사에 담았다.’는 소개 문구로 보아, 자신감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았던 하나의 주문과 최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 선보이는 장르 위에서, 아티스트로서의 고민이 가장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드러났다.
<플로리싱>을 지나 도달한 활동곡 <스내핑 Snapping>은 전작 <벌써 12시>의 연장선에 선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스탠스를 취한다. <벌써 12시>는 헤어짐이 다가오는 아쉬운 심정에 집중했다면, <스내핑>은 손가락을 튕기는 행위를 통해 이별에 뒤따르는 미련을 밀어내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벌써 12시>에는 상대와 함께 하고픈 장면 묘사가, <스내핑>에는 상대가 없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려는 마음가짐이 드러나 있다. <벌써 12시>가 매혹적인 리프에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면, <스내핑>은 불안한 긴장감이 조성되는 전주로 시작하여 단호한 첫마디를 맞닥뜨린다. 다소 여유롭고 냉소적인 태도로 인해 곡을 듣는 내내 일종의 타격감마저 느껴진다.
# 청하, 궤도에 오르다
대중이 생각하는 청하의 이미지는 뮤지션보다는 퍼포머에 가깝다. 그러나 청하 자신의 기대와 욕심은 춤 하나에 머무르지만은 않았다. 이전부터 일부 팬들이 지적한 대로, 청하는 보컬 역량도 꽤 높은 수준에 있다. “프듀1”의 <뱅뱅> 무대에서도 고음역대를 소화(댄스 평가라 대놓고 립싱크였지만, 고음 부분을 담당해 녹음했다)했고, <왓어맨 Whatta Man>으로 활동하던 아이오아이 유닛에서는 아예 메인 보컬이었다. 춤 실력에 비해 조명받지 못했지만, 보컬로서 청하의 기량은 이미 수준급이었다. 그 기량의 바탕에는 청하 스스로의 욕심과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솔로 데뷔 후 이러한 기대는 음반에 그대로 드러났다. 여러 장르를 시도하며 다양한 보컬 기술을 선보였고, 섬세하고 세밀한 감성을 잘 살렸다. 힘과 감성을 고루 갖춘 보컬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차분하고 꾸준하게 입증해나갔다. 다소 어둡고 날카로워진 이번 음반이 반가운 것은 이 음반이 단순한 손익 계산의 결과물이 아니라, 방향 · 정체성 · 태도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청하의 성공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의 기대치를 파악해 이를 반영하고,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를 충족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홀로 간직하던 고민과 포부를 대중에 내놓고,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무대를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며, 이를 실력으로 입증하고, 겸손하고 사려 깊은 모습까지 보임으로써 폭넓은 대중을 설득했다. 중심 팬층이 아닌 폭넓은 대중의 지지가 반영된 스트리밍으로 청하는 궤도에 올랐다. 소속사의 규모만으로만 본다면 청하는 ‘중소의 기적’이라 불릴 만하지만, 분명히 청하를 궤도에 올려 놓은 것은 본인의 노력이었다. 남은 것은 스스로의 방향을 어떻게 설계해가느냐 정도일 것이다.
# 청하
2017 04 21 싱글 1집 <월화수목금토일>
2017 06 07 미니 1집 "Hands on Me" / 활동곡 <Why Don't You Know (피처링. 넉살)>
2018 01 17 미니 2집 "Offset" / 활동곡 <Roller Coaster>
2018 07 18 미니 3집 "Blooming Blue" / 활동곡 <Love U>
2019 01 02 싱글 2집 <벌써 12시>
2019 06 24 미니 4집 "Flourishing" / 활동곡 <Snapp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