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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다 Nov 07. 2019

송가인, 저력과 과제를 모두 남기다

'송가인' 정규 1집 "가인(佳人)" 리뷰



신드롬


‘송가인’의 인기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국악인 출신 트로트 가수의 성장, 사장되었다고 평가받는 ‘정통 트로트’의 부활, 그동안 가시화된 적 없는 중장년층의 팬덤 문화 형성 등 여러 현상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송가인이 정통 트로트에 강하다는 점이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와 같은 1950년대 노래가 다시 메인스트림에 올라섰는데, 이게 중장년층에게는 ‘내가 알고 즐기는 노래가 방송에서 흘러나올 기회의 쟁취’처럼 받아들여진 모양새다.


“내일은 미스트롯” 방영 당시에는 ‘홍자’와의 라이벌 구도를 굳히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송가인의 인기는 단연 독보적이고, 이례적이다. 웬만한 아이돌 그룹 콘서트장을 방불케하는 열기가 송가인의 단독 콘서트장 앞에서 펼쳐졌고, 그 콘서트 중계를 위해 방송사 사이에 경쟁이 붙었다.


그래서 송가인이 낼 음반이 궁금해졌다. 송가인의 무기라 불리는 ‘정통 트로트’나 ‘국악’이 얼마나 반영될지, 송가인은 어떤 주제의 음악들을 선택할지, 송가인이 주력을 쏟는 건 어느 쪽일지.



                           


음반 리뷰


이 음반에는 송가인 음악에서 노릴 수 있는 노림수가 꽤 많이 포착된다.


첫째는 장르적 범용성이다. <엄마아리랑>과 <이별의 영동선>에는 국악 기반의 멜로디 라인과 편곡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특히 <엄마아리랑>은 표기가 없는 1번 트랙은 신나게, ‘발라드 버전’이라 쓰인 7번 트랙은 구슬프게 편곡하여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갖는 다면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단순히 곡의 템포를 올렸다 내린 정도가 아닌, 곡마다의 분위기에 맞는 편곡과 국악적 요소 삽입, 그리고 아리랑이 갖는 범용성을 이용하여 전혀 다른 두 곡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서울의 달>은 ‘서울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위로를 전하는 곡으로, ‘조항조’나 ‘윤태규’ 등이 시도했던 포크 요소를 대입한 세미 트로트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인이어라>는 빠른 비트와 드럼 및 전자 기타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2000~2010년대 세미 트로트 장르를 표방하고 있으며, <사랑에 빠져봅시다>는 이른바 ‘하춘화’ · ‘주현미’ · ‘김연자’ 등으로 대표되는 1970~80년대 스타일의 트로트를 재해석한 형태이다. <어머님 사랑합니다>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성행했던 정통 트로트 장르를 따르고 있으며, <엄마아리랑>과 주제 면에서 궤를 같이 하고 있어서 송가인이 겨냥하는 팬덤의 정체성을 분명히하고 있다.



둘째는 ‘정통 트로트의 부활’을 내건 송가인의 차별화 전략이다. 송가인으로 인해 정통 트로트가 부활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통 트로트의 부활’을 기치로 내걸어 송가인의 지지층을 공고히하고, 2000년대 들어 부각된 ‘세미 트로트’와의 차이를 부각하여 송가인만의 독립적인 입지를 다지려 하는 것이다.


이는 옛 명곡들의 리메이크는 물론, 정통 트로트 장르로 분류될 수 있는 신곡을 삽입한 것에서 그 맥을 짚을 수 있다. 송가인은 1950년대에 발표된 <단장의 미아리고개>(이해연)와 <한 많은 대동강>(손인호), 1960년대의 <용두산 엘레지>(고봉산), 그리고 1980년대의 <영동부르스>(김연자)를 리메이크했다. 넓은 시대를 포괄하고, 이 곡들을 소화할 수 있는 기량을 입증하고자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각 시대별 대표적인 트로트 색깔을 도입한 <사랑에 빠져봅시다>와 <어머님 사랑합니다>를 수록함으로써 ‘정통 트로트’의 맥을 잇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간 트로트 음악들이 서양 음악을 다수 도입하여 여러 시도를 해왔던 흐름에 비추면 <무명배우> 또한 비슷한 흐름으로 읽힐 수 있다.



셋째는 장년층 팬덤의 입지 공고화이다. 송가인은 1986년생이지만 그의 음악은 철저히 중장년층의 취향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곡의 주제나 어휘 또한 동년배보다는 그 위쪽을 많이 따른다. 반주곡(MR) 8곡, 편곡만 다른 중복곡 2곡을 제외한 11곡 중 통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곡이 6곡으로 가장 많다. 어머니의 사랑이나 전후 상황에 관한 곡이 각 2곡, 서울살이의 서러움을 담은 곡이 1곡이다. 서울살이를 다룬 <서울의 달>에도 어머니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오므로, ‘어머니’라는 키워드를 음반 내내 가져감을 알 수 있다. 이 주제들이 어느 연령대에게 정서적인 효과를 발휘할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주목할 곡, 넘어갈 곡


<엄마아리랑>의 두 가지 버전은 국악을 접목한 트로트의 높은 범용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어머님 사랑합니다>의 간드러진 창법 또한 꽤나 인상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음반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은 <서울의 달>이다. 송가인은 전남 진도 출신으로 “송!가인이어라~”라며 인사하고, 방송과 생활에서 전라도 방언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이러한 송가인의 실제적 배경에 대입하여, 서울살이의 현실과 서러움을 노래하는 <서울의 달>의 가사는 다른 곡들보다 특히 와닿는다. 송가인이 아무리 노래를 잘 부르더라도, <단장의 미아리고개>나 <한 많은 대동강>은 송가인이 그 노래를 오롯이 소화할 수 없다는 물리적 한계가 느껴졌다. 그러나 <서울의 달>은 송가인의 현실과 진심이 담겨 있고, 송가인 특유의 구슬픈 목소리가 정통을 벗어난 트로트도 소화 가능하기에 이 곡은 기술적으로나 심미적으로 청자를 감화시키기 좋은 곡이다.


반면 <가인이어라>는 한 번 듣고 넘어갈 정도의 곡이다. 예명 ‘가인(歌人)’의 동음이의어인 ‘가인(佳人: 애정을 느끼는 사람)’을 제목으로 내세웠다는 것 외에는 이 곡의 의의와 역할이 불분명하다. 현대에 통용되는 세미 트로트와 달리 국악의 색깔을 강하게 띠고 정통 트로트로 승부를 거는 송가인의 뚜렷한 정체성과 대척점에 서 있으며, 매우 가볍다. 가사 내용마저 세미 트로트에서 흔히 지적되는 고찰 없고 통속적인 언사들로 가득차 있으니, 송가인이 이 곡을 불러야 할 이유는 ‘가인’이라는 예명 외에는 없는 셈이다.



                                        


신인은 아니지만, 이제 시작


송가인의 실력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미스트롯”에서의 활약으로 명성을 얻었고, 달력을 비롯한 각종 상품이 제작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팬덤을 갖췄다. 전국 각지로 행사를 다니며 팬들과 끊임없이 접촉하고 있으며, 늦지 않은 시기에 음반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진행하여 인기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까지 갖췄다.


그러나 송가인에게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우선 음악적인 문제이다. 송가인에게는 세미 트로트 일색의 시장에 정통 트로트를 불어 넣는 것은 물론, 침체된 트로트 시장을 활성화하여 가요계에 다양성을 제고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여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매 음반마다 리메이크 곡을 넣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과거에 유행했던 트로트 장르를 마냥 가져오기만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다. 정통 트로트든 국악이든 현대의 관점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인기는 신드롬에 가까우나, 기량을 살릴 청사진이 없다면 송가인만의 매력을 어필할 수 없고, 어떤 변수로든 인기가 식을 수 있다. 즉 현재의 요건과 상황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자기만의 음악적 지향을 확고히 잡고, 이를 음악으로 구현해야만 한다. 이번 음반에서도 나름 엿볼 수 있었으나, 아직은 이런저런 방향을 시도하는 선에서 그쳤다. 음반 내내 투영된 ‘모성애’의 서사, 곡마다 편차가 심한 퀄리티, 옛 명곡의 리메이크에 인지도와 무게감이 쏠리는 문제 등은 다음 음반에서 차츰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한 외부적인 요인 또한 정리가 필요하다. 현 소속사인 ‘포켓돌스튜디오’에 1년 6개월만 몸담기로 되어 있다. 계약 존속 여부가 불투명하고, 최악의 경우 가까운 시일 내에 다른 회사를 찾아야 할 수 있다. 지금의 포켓볼스튜디오가 ‘엠비케이 MBK’와 ‘인터파크’의 공동 출자로 설립된 회사인 만큼, 언론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온 것또한 사실이다. 지금의 스타성과 상품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지원을 담보하기 힘든 회사로 이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피처링이나 팬 카페 등의 각종 의혹을 제외하더라도, 탄탄대로를 걷는 듯한 현 상황이 유지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도처에 변수가 도사린다.



송가인의 음악 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무한정 뻗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다행히 이번 음반에서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대체적으로 잘 드러냈고, “미스트롯”의 인기를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번 음반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데에 성공했기에, 다음 음반이 더욱 중요하다. 맛보기가 아닌 확실한 방향성을 기대해본다.





송가인 (조은심)



2012 10 12  '조은심' 싱글 "산바람아 강바람아 / 사랑가"

2016 05 13  '조은심' 정규 1집 "항구 아가씨 / 성산 일출봉"

2017 04 17  '송가인' 스페셜 음반 "거기까지만"


2019 10 29 '송가인' 정규 1집 "佳人"

01 엄마아리랑    *타이틀

02 이별의 영동선    *타이틀

03 서울의 달

04 가인이어라

05 사랑에 빠져봅시다

06 어머님 사랑합니다

07 엄마아리랑 (Ballad Ver.)

08 이별의 영동선 (K-Trot Ver.)

09 무명배우

10 단장의 미아리 고개

11 영동 블루스

12 용두산 엘레지

13 한 많은 대동강

14 엄마아리랑 (반주)

15 엄마아리랑 (Ballad Ver.) (반주)

16 서울의 달 (반주)

17 가인이어라 (반주)

18 이별의 영동선 (반주)

19 이별의 영동선 (K-Trot Ver.) (반주)

20 사랑에 빠져봅시다 (반주)

21 어머님 사랑합니다 (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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