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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Nov 06. 2019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아주 오래 차를 탔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풍경을 따라 변하는 산의 풍경을 보았다. 강원도의 산은 뾰족하고 높다. 그런 산이 사방에 둘러싸여 있다. 나는 '이 곳은 해발 500m입니다.', '이 곳은 해발 800m입니다.'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며 산을 넘나들었고 산 아래에 있는 산과 산 위에 있는 산을 보았다. 구름이 빼곡한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구름의 틈새로 빛이 새어 나오던 하늘 아래에서도, 갑작스레 투명한 햇빛과 함께 푸른빛을 띠던 하늘 아래에서도 산은 11월 초의 예쁜 단풍색을 띠고 있었다. 차를 타고 달리다 아주 높은 곳에서 갑작스레 내리막을 향하던 길을 만났다. 그곳에서 마주한 아주 넓고 깊은 단풍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조금 났다. 매해 오는 계절을 뚜렷이 보여주는 반복되는 풍경이 아픈 것은 또 오기에 또 갈 것을 미리 알기 때문이겠지.     


 매해 겨울 1월 즈음이면 나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5년 전부터 그것은 나의 습관 아닌 습관이 되었는데, 주로 매해 봄 5월에 겨울에 떠날 비행기표를 끊는다. 비행기표를 끊으며 한 번, 그리고 여행을 준비하며 또 한 번, 여행지에서 여행하며 다시 한번 삶을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을 얻는다.


 동생과 스페인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나에게는 두 번째 스페인 여행이었고, 동생에게는 첫 번째 스페인 여행이었다. 첫 스페인 여행 때 가장 감명 깊었던 곳은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론다였다. 딱 하룻밤 묵었던 론다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두 번째 여행 때에는 보통 당일치기로 지나치는 론다에서 이틀 밤을 묵었다. 아주 작은 도시지만 높은 절벽과 다리가 어우러진 풍경이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 론다의 저렴한 에어비엔비에서 귀여운 커피머신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 아름다운 도시를 동생에게 보여줄 생각에 나는 잔뜩 들떠 있었다.


 겨울의 산과 들판이 정면으로 펼쳐지는 작은 공원을 이른 아침에 찾았던 기억이 난다. 주말이 끝난 월요일 아침,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어떤 사람이 벤치에 앉아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있었다. 연주에 맞추어 수 마리의 새들이 파다닥 땅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론다의 풍경을 마주하며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동생에게 "무슨 생각해?"라고 장난스레 물었고 동생은 대답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새들이 허공을 날며 삐익삐익하는 소리를 냈다. 건물 하나 없이 텅 빈 풍경 안에서 새소리가 기이하고 아름답게 울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동생의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슬펐는지, 미안했는지, 어찌할 바를 몰랐는지. 하지만 그 이후로 그 말을 자주 생각한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볼 때 눈물이 나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을. 아마 그때 나는 동생에게 많이 미안했던 것 같다. 이후에 동생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을 때 동생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생은 내가 평생 모를 마음을 지니고 살아왔을지 모른다.

  

 이사한 집에서는 달이 보인다. 어제는 새벽에 무척 예쁘고 선명한 달을 보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꿈이었나 싶기도 하다. 삶은 대체로 그런 일들로 구성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있었던 일인 게 분명한데 꿈이었던 것 같기도 한 그런 결국은 불분명한 일들로. 그럼에도 또 올해는 가고 다음 해가 찾아온다. 명확한 것은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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