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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14. 2019

최대한의 풍경

 출근길, 구급차가 내 옆으로 달려간다. 오늘도 아침부터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구나, 이렇게 내가 삶의 생생한 터전으로 투덜대며 달려가는 와중에도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도 구급차를 탄 적이 있다. 십여 년 전 20대 초반이었을 때였다. 나는 스무 살을 지나고도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삶을 견디고 있었다. 그때는 그게 너무 싫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너무 자유롭지 못했고, 나는 너무 얽매여 있었고, 나는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중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나는 너무 나답지 못한 일 속에 놓여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버스정류장에 서서 비가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모양만 봐도 마음이 난처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어느 일본 애니메이션의 풍경처럼 늦은 밤 멀리서 지하철이 선을 그으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독한 담배를 피우고 그럴싸해진 기분으로 또 당분간을 살았다. 지금에 와서는 삶이라는 거대한 풍경 앞에서 그런 불만을 진심으로 품을 수 있었던 내가 종종 부러워지고는 한다. 이제 나는 삶에서 마주하는 그런 불행이 그다지 큰 불행은 아니며 그러한 불행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자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날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뚝배기 불고기를 사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레 너무 어지러워서 걷기가 힘들었고 온종일 뱃속의 음식을 게워냈다. 사람이 체를 하면 이렇게 어지러운가 생각하며 하룻밤을 꼬박 보냈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고서도 여전히 빙글빙글 돌아가던 천장을 보며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걸을 수가 없어서 구급차를 불렀다. 집을 떠나 자취 중이었던 나를 친구가 찾아왔다. 여전히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그녀와 함께 구급차를 탔다. 위급한 상황도 아닌데 구급차를 불렀다는 생각에 조금 민망했고, 이틀 동안 옷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사실이 신경 쓰였다.


 병원에서 나는 뇌경색이라는 병명을 얻었다. 고작 20대 초반이었고, 그런 병명은 나에게 너무 익숙지 않아서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제대로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뒤늦게 찾아온 엄마 아빠에게 의사는 내가 평생 불구가 될지 모른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보지 못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나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수많은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 이곳저곳을 다닐 때 나는 주로 바퀴가 달린 침대에 누워있거나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화장실조차 혼자 제대로 가지 못하면서도 병의 심각성을 깨닫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모른 척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쉽게 일어난 일이었다. 잘 걷지도 못하는 내 처지에 잔뜩 짜증이 나 있었고 병문안을 온 외숙모가 싸 온 김밥을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먹었다는 사실만 기억이 난다. 죽음이란 가장 가까워져 있을 때 더 외면하게 되는 일일지 모른다.


 2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했고 곧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눈부신 삶을 경험하며 살았다. 자주 그 사건을 생각한다. 걸을 수 없어 구급차에 실려 가던 순간을, 의사가 지시한 대로 두 손가락을 마주치지 못했던 순간을,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갔던 순간을, 나는 보지 못했지만 엄마가 "평생을 불구로 살 수도 있어요."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오열하며 땅에 주저앉던 순간을, 엄마 앞에서 혼자 씩씩하게 화장실에 걸어가고 싶었지만 결국은 엄마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을, 퇴원하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 아주 조심스럽게 손잡이에 의지하며 남의 눈치를 보았던 순간을, 제가 아직 젊지만 뇌경색을 앓았어요, 하고 양해를 구하고 싶었던 순간을.


 죽을 수도 있었다는 어떤 계기가 인생을 바꾼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삶을 극복해야 할 때, 죽음이나 불행에 견주어 삶에 최선을 다하기를 강요당할 때 삶은 가장 우스워진다. 20대 초반에 뇌경색을 앓았다는 삶의 무용담과 상관없이 여전히 나는 주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 비겁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아주 많은 사람이 온 세상이 분주한 아침부터 구급차에 실려 갈 것이고 그중 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나는 죽기 전에 내가 저지른 아주 많은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목적이 아닌 흘러감에 대부분을 맡기는 삶을 살고 싶다. 아프고 혹독한 세상 속에서 아름다운 것은 단 하나,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며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일 테니까.


 지난여름 충청도의 진초록 논밭을 차를 타고 가로질러 달린 적이 있다. 하늘이 무척 파랬고, 양옆은 온통 진한 녹색이었으며, 나는 그 한가운데를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마음껏 달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바로 인생의 절정을 지나고 있구나, 지금이 바로 내가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풍경이다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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