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음대생의 31일간의 여행기 (8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일하는 김에 놀러 다니기

by 돈 없는 음대생

일정 요약


8월 11일

오스트리아 고사우 호수 (Gosauseen)

교통: Monatsticket Region Salzburg+Nord + OÖ Einzelticket

숙소: St. Virgil

일정: 고사우호수 / 바트 이슐


8월 12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Salzburg)

교통: Monatsticket Region Salzburg+Nord

숙소: St. Virgil

일정: 갤러리들 / 연주



17일 차 (8월 11일)


아터제 호수 / 트라운 호수 (Attersee / Traunsee)를 못 갔네


전날 자기 직전, 문득 Gosaumühle에서 541번 버스를 타고 반대방향으로 가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2년 전 차로 잘츠캄머굿 (Salzkammergut)을 여행할 때도 고사우 호수에 대해 얼핏 들었지만, 일부러 까지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지나가다 고사우 표지판이 보여 잠시 들어갔다가, 이상한 인공 연못 같은 게 나와서 또 구글의 농간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했었다.


고사우 호수에 대해 한국어로 된 정보는 많이 없다.

보통 이럴 땐 둘 중 하나다.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거나, 정말 별로인 곳이거나.

그래도 '여긴 가지 마세요' 같은 글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없다.

게다가 샤오롱바오 친구들과 라따뚜이 친구들이 우르르 간 걸 보면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원래 오늘은 아터제 호수 (Attersee)로 갈 계획이었다.

1차 기간 동안 제대로 놀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고.

문제는 아터제 호수를 비롯한 잘츠캄머굿 대부분의 호수들이 잘츠부르크 주가 아닌 오버외스터라이히 주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버스보다는 기차가 편리한데, 티켓값이 비싸진다.

선생님이 잘츠부르크로 오기 전 아터제 호수 아래쪽에서 가족들과 며칠을 쉬다 왔다며 강력 추천했지만, 대중교통으로는 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아터제 호수트라운 호수 (Traunsee)를 가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아터제 호수는 많은 예술가들이, 특히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가 머물며 작품을 남긴 곳이라 가볼 만한 이유로는 충분하다.

그러나 클림트의 집은 박물관이 되었으나 평이 상당히 좋지 않고, 말러의 집은 아주 작은 집 하나 딸랑 있다.

글로 된 정보는 많은데 정작 볼 것은 없는, 입장료가 매우 아까운 스타일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고사우 호수 (Gosauseen)


아침 일찍 호텔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여름만 되면 멀쩡한 땅을 뒤집어 까는 건 어느 나라나 똑같나 보다.

공사로 왕복 2차선이 1차선이 되면서 차가 밀리는 사이, 버스 기사 놈이 정류장을 30미터 앞두고 서더니 신호가 바뀌자마자 그냥 통과해 버렸다.

뛰어가 쫓아도 소용없었다.

고사우 호수까지 가려면 세 시간 반, 다음 버스를 타면 다섯 시간이나 걸린다.

어떻게든 중앙역으로 이동해 겨우 제시간에 150번 버스를 탔다.


화가 나서 SVV 공식 홈페이지에 기사 놈을 바로 신고했다.

5분쯤 지나 전날 신고한 놈 후기가 메일로 왔다.

당연하게도 돌아온 답변은 “우리 직원이 그럴 리 없으며, 인격모독성 메일에는 답변하지 않겠다.”였다.

신고를 해봤자 보상 따위는 없고, 어차피 사과하는 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직원이고 잘못을 저지른 놈은 잘못이 없다고 우길 것이 뻔했다.

“싸가지 없게 검지손가락만 까딱까딱 거리다간 언젠가 사람들도 너한테 중지손가락만 까딱할 거다”라고 보내려고 했지만, 챗지피티가 말렸다.

망할 전자두뇌 자식.


바트 이슐에서 541번 버스로 갈아타기 전,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전날 못 본 브루크너 교회를 들렀다.

불은 꺼져 있었지만, 보고 싶던 건 다 보고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고사우 호수행 버스에 탑승.

이번엔 미리 ÖBB 어플로 표를 샀다.

목적지는 일단 딱 중간인 Gosaumühle 까지만.

어차피 처음 탈 때만 보여주면 되니까.

Gosaumühle에서 절반 이상이 할슈타트를 가기 위해 내린다.

그 사이에 섞여서 쭈그리고 있다가 종점인 고사우 호수에서 내렸다.

고사우 호수는 산골짜기 깊숙하게 숨어있다.

앞 골짜기, 중간 골짜기, 뒷 골짜기를 모두 지나야 호수가 나온다.

2년 전 앞 골짜기 언저리에서만 돌다 나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드디어 긴 여정 끝에 도착을 했다.

호숫가에 가니까 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볼프강 호수보다도 더 매력적이다.

호수 뒤로 다흐슈타인 산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입구에는 여러 하이킹·자전거 코스가 표시된 지도가 있었다.

호수 한 바퀴를 걷는 데는 1시간이 걸린다.


고사우 호수는 앞, 뒤로 총 2개가 있어서 (Vorderer Gosausee, Hinterer Gosausee), 앞 호수를 반쯤 걷고, 뒤 호수를 본 뒤 다시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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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1_122532.jpg 한가운데 보이는 산이 다흐슈타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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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시작 지점의 오른편과 왼편의 둘레길, 그리고 앉아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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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가장자리에서 볼 수 있는 신비한 색감
20250811_124913.jpg 물이 맑아도 너무 맑다.
20250811_124511.jpg 절벽에서 자유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들 (사실은 올라타는 꼬꼬마와 옆에서 입으로 응원하는 어른이들)

앞 호수에서 30분쯤 걷자 뒤 Gosaulacke라고 불리는 호수로 가는 길이 시작됐다.

정말 또 다른 호수가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1시간 정도 묵묵히 걸어야 한다.

다흐슈타인 산조차 시야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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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보이는 작은 물웅덩이 (?)와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는 다흐슈타인 산

초반 30분은 괜찮은데, 후반 30분은 경사가 심해진다.

그래도 끝까지 오르면 평지가 나오고, 그 순간 눈앞에 뒤 호수가 드러난다.

그리고 또다시 나타나는 다흐슈타인 산.

20250811_134458.jpg 고생 끝에 맞이하는 비현실적인 첫 풍경

뒤 호수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산장 앞에는 또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목가적'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서나 나오는 글씨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어가 눈앞에 펼쳐진다.

소들과 시간을 보내다, 버스 시간에 맞춰 다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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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1_140034.jpg 신기할 정도로 가운데 다흐슈타인 산에만 해가 딱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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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1_140554.jpg 산장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서 본 Hinterer Gosausee
20250811_140239.jpg 저 멀리 산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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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팔자가 개팔자, 개팔자가 상팔자
20250811_141806.jpg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Hinterer Gosausee 풍경

올라올 때는 한 시간 걸렸는데 내려가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했다.

올라가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는 괜히 슬쩍 웃어준다.

Welcome to Hell.


앞 호수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오른편 길로 걸었다.

왼편은 절벽도 있고, 암벽등반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오른편을 바라보는 풍경이 참 좋다.

오른편은 폭포(라고 하기에는 너무 쫄쫄쫄) 같은 물줄기들이 흩어져 있다.

물소리를 증폭시켜 들려주는 쓸데없는 장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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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물소리 증폭 장치, 냉장고 물보다 더 차가운 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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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흐슈타인 산이 돌 산이여서 약간 윗부분이 눈으로 덥히는 시기 거나, 해가 질 무렵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산에 해가 반사되어서 바위 색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입구 근처로 돌아오니 다시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20250811_153001.jpg 호수 오른편에서는 사람들이 수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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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1_153735.jpg 다시 보는 비현실적인 Vorderer Gosausee 풍경

잘츠부르크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어플에서 티켓을 못 샀다.

기사 얼굴이 고약해 보여 그냥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다행히 15분 뒤에 버스가 왔다.

이번에도 Gosaumühle 까지만 표를 끊고 바트 이슐에 도착했다.

오늘은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볼프강 호수에는 들르지 않고 바로 잘츠부르크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542번 버스를 타고 Gosaumühle에서 할슈타트로 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고사우 골짜기들에서 많이 내렸다. 아마 근처에 펜션들이 많은 것 같다. 이 근방에 숙소를 잡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싸서 그렇지...).



짐 싸기


다음 날 저녁에 연주가 있고, 그 다음날 아침에 바로 떠나야 해서 미리 짐을 싸두었다.

이미 캐리어가 꽉 차서 왔는데 여기에서 짐이 더 늘었다.

호텔에 물어봤더니 다시 올 때까지 호텔에 보관할 수 있다고 했다.

캐리어가 하나뿐이라 걱정했는데, 전날 바트 이슐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주운 천 가방이 의외로 쓸모 있었다.

생각보다 깔끔해서 필요 없는 짐들을 다 빼서 천 가방에 넣었다.

내일 연주 전, 슬로베니아비엔나로 들고 갈 짐이 더 생기기 때문에 여유 공간을 생각해야 했다.



18일 차 (8월 12일)


잘츠부르크 갤러리들


연주 전 사운드체크가 오후 5시에서 5시 45분으로 밀렸다.

덕분에 남는 시간에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가기 힘든 곳들을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첫 갤러리는 Galerie Nikolaus Ruczicka.

여기도 기사 추천 갤러리였다.

특별전시는 별거 없었고, 오히려 실제 작품 판매용 공간인 위층이 좀 더 괜찮았다.

캔버스가 정신없이 쌓여 있고, 벽에는 작품 몇 점만 걸어둔 전형적인 상업공간이었지만, 손님들이 오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확실히 좀 더 수준 높은 작품이 있었다.

20250812_103116.jpg 갤러리는 분위기 있게 잘 만들었다.
20250812_103009.jpg 위로 올라오니 보이는 좀 더 괜찮은 작품
20250812_103025.jpg 여러 번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

이어서 잘츠부르크 정반대 편에 있는 Elektrohalle Rhomberg로 향했다.

시내를 지나가다 보면 유독 광고를 많이 하던 전시장인데, 진작 알았다면 Thaddaeus Ropac Salzburg Halle에 갔을 때 같이 들렀을 텐데... (바로 옆 붙어있는데, 그때는 몰라서 못 갔다.)

다행히도 전시는 ‘여기까지 힘들게 괜히 왔네’ 수준은 아니었다.

20250812_111912.jpg Arang Choi의 작품.
20250812_112247.jpg Max Freund의 작품

돌아오는 길에 Fürst에 들러 선물용 모차르트쿠겔을 샀다.

영롱한 자태로 매번 나의 눈길을 빼앗던 딸기맛과 라임맛 초콜릿에 결국 굴복했다.

개당 1.40유로의 귀한 녀석들이지만, 먹어보니 제 값을 했다.

20250812_134237.jpg 엄지손가락 한마디 보다도 작은 것이 주제에 Trüffel이라 베어 물면 안에 각각 딸기와 라임으로 만들어진 쨈 비슷한 무언가가 흘러나온다.

호텔로 돌아와 연주 준비를 하고 조금 일찍 나왔다.

하필 오늘부터 갑자기 30도가 넘게 더워져서, 연주복을 입고 악기를 메고 Felsenreitschule 근처에 있던 두 갤러리를 방문했다.


먼저 Galerie im Traklhaus.

Georg Trakl의 생가다 (시간 못 맞춰서 투어 못했던 그 트라클 생가가 맞다).

맨 밑층은 전시장으로 사용 중이고, 이번에는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지만, ‘이런 곳도 있구나’ 정도만 기억하면 될 수준이었다.

20250812_154550.jpg Georg Trakl이 태어난 집이자 Galerie im Traklh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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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2_154817.jpg Hannah Tilson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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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2_155024.jpg Otis Blease의 작품들. 얼핏 보면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지만 어딘가 전문가의 느낌이 난다.

반면 바로 근처의 Galerie Welz는 훨씬 괜찮았다.

여기 또한 기사에서도 언급된 곳인데, 마침 Gruppe St. Stephan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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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uppe St. Stephan에 속한 작가들인 Wolfgang Hollegha, Arnulf Rainer, Markus Prachensky의 작품들

오스트리아 곳곳에서 자주 접하던 이름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위층에는 20세기 초·중반 작품 위주의 상설전시가 마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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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Miró, Julian Taupe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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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ntin Oman, Gottfried Mairwöger의 작품
20250812_161337.jpg Friedensreich Hundertwasser, 일명 백수 의 작품. Hundert는 숫자 백, Wasser는 물을 뜻하는 독일어.

이곳도 판매 공간이라 다소 어수선하고 좁았지만, 작품들의 퀄리티가 좋았다.

시간에 쫓겨 여유롭게 천천히 감상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20250812_160254.jpg Fritz Wotruba의 조각 중에서 곡선이 있는 작품은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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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on Schiele, Pablo Picasso, Marc Chagall의 작품도 팔고 있다.

또다시 짐 싸기


연주를 마치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짐을 다시 쌌다.

정리하고 나니 남겨둘 짐이 절반이나 됐다.

천 가방도 꽉 찼다.


파리에서부터 가져온 누텔라, 각종 영양제, 남은 식량까지 딱 알맞게 처리했다.

임무를 마친 테무 냄비와 소금은 호텔에 보관해 두었다.



여행 꿀팁


1. 바트이슐 - 고사우 호수


고사우 호수로 갈 때는 541번 버스, 반대로 올 때는 542번 버스.

중간지점인 Gosaumühle에서 할슈타트로 가는 버스로 갈아탈 수 있다.


2. 잘츠부르크 갤러리 / 미술관 고르기


추천 미술관

DomQuartier Salzburg - 잘츠부르크 카드로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옛 대주교 거주지와 대성당과 성 페터 수도원이 연결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Museum Kunst der Verlorenen Generation - 약간 비싸지만 인생에 한 번은 가볼 만하다. 다른 잘츠부르크 사기 미술관들 보다는 내용이 훨씬 알차다. 분야가 퇴폐미술 (Entartete Kunst)인 만큼 여러 번 갈만한 뭔가가 나오기 힘들다.

(Museum der Moderne Mönchberg - 전시 내용에 따라 만족도가 다르겠지만, 대체로 실망스럽는 평이 많다. 잘츠부르크 티켓이 있고 시간이 남아돈다면 들어가고, 아니면 묀히베르크 엘리베이터만 타고 전망을 즐기고 내려가자. 미술관이 넓어서 대충 돌아다니며 구경해도 많이 걸어야 한다.)


추천 갤러리

Thaddaeus Ropac Salzburg (+ Halle) - 대략 3개월 주기로 계속해서 전시가 바뀌고, 대부분은 유명한 사람의 전시가 진행되는 무료 갤러리.

Galerie Welz - 본문처럼 1층의 상설전시 작품들이 괜찮다.

Galerie Reinisch - 전시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대체적으로 괜찮은 작품들이 있다. 사진 촬영 불가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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