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일하는 김에 놀러 다니기
일정 요약
8월 20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Wien)
교통:
숙소: A&O Hostel Wien Hauptbahnhof
일정: 시내 / 미술관 / 박물관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악기를 학교에 맡기러 갔다.
오늘도 역시 커피 한 잔을 호로록하고,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채로 나왔는데,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MAK으로 향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Stadtpark에 들러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Johann Strauss Sohn) 200주년 기념으로 보수공사가 끝난 동상도 보고, 다른 동상들도 하나씩 봐주고 MAK으로 올라갔다.
MAK - 응용미술관은 늘 작은 특별전시들이 여러 개씩 돌아가면서 열린다.
이번에는 다섯 개였다.
10시 정각에 들어갔는데, 보관함에 누가 2유로 동전을 넣어두고 그냥 갔다. 아싸.
0층은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시였고, 지하에는 기모노 전시와 슈트라우스 200주년을 기념해 20세기 초의 무도회 포스터 전시, 그리고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관련 전시가 있었다.
2차 대전 때 클림트의 작품들이 임멘도르프 성 (Schloss Immendorff)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이 나서 다 타버렸다고 한다.
성벽까지 다 철거돼서 남은 게 없다.
마지막으로 1층 옆건물에 물 관련 전시가 있었는데, 공간만 컸지 별로였다.
MAK을 나오고 이번에는 Albertina로 갔다.
Albertina는 본관, Modern, Klosterneuburg 이렇게 세 군데가 있다. Klosterneuburg은 원래 Essl 가문의 미술관인 Essl Museum이었는데, 아들 세대에서 관리가 힘들다며 Albertina에 넘겼고 2024년에 재개장했다.
예전에 Essl과 연주 준비 때문에 Essl 찬스로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아직도 안에는 Essl 개인 사무실이 있다.
Albertina 본관에서는 네 개의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입구 바로 앞 전시는 항상 짧고 작은데, 이번엔 현대 사진전이었다.
위층에는 여행을 주제로 한 회화 전시가 있었는데, 잘츠캄머굿에서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본 도시와 호수들이 그림으로 걸려 있어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 위층에는 Hagenverbund라는 단체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20세기 초 비엔나에서 보수적인 협회에 반발해 나온 예술가 단체인데, 분리파 (Secession)와도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분리파의 초석이 되기도 한 특이한 단체다.
지하에는 전구 램프를 이용한 설치 전시가 있었는데, 이쪽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하의 특별전시 퀄리티는 항상 좋았다.
Albertina를 나서면서 남들 다 찍는 비엔나 국립 오페라 건물 사진을 한 장 찍고 내려왔다.
근처엔 토끼 조형물이 많은데, Albertina에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의 토끼 그림이 있어서 그렇다.
오페라 건물 앞에는 알반 베르크 기념비도 있는데, 자세히 보면 제2 빈 악파 세명 (아놀드 쇤베르크 Arnold Schönberg, 안톤 베버른 Anton Webern, 알반 베르크 Alban Berg)의 이름과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
비엔나까지 왔는데, 아무리 지겹게 봤어도 성 슈테판 대성당은 겉이라도 봐줘야겠다 싶어서 잠깐 들렀다.
그러고 나서 바로 지하철을 타고 미술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인터넷에는 특별전시가 여러 개라고 쓰여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제일 큰 공간은 공사 중이었고 나머지는 방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는 수준이라 좀 김이 샜다.
Bundesmuseencard로 두 번째 방문할 때 값어치를 제일 하는 곳인데 아쉬웠다.
맞은편 자연사 박물관에도 들어갔다.
특별전시는 빙하기랑 코뿔소였는데, 둘 다 정말 별 볼 일 없었다.
코뿔소 전시에는 또 뒤러의 코뿔소 그림이 있다.
마지막으로 Belvedere를 보기로 했는데, 비엔나 베프랑 만나야 해서 시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Belvedere 21부터 갔다.
여긴 현대미술관이라 상설전시는 없고, 특별전시가 계속 바뀐다.
지하는 늘 별로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0층은 Fritz Wotruba의 전시였는데, 예전에 비엔나 동네 끝자락에서 봤던 특이한 교회를 지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조각을 보면 전부 사각형이라 금방 구별된다.
유일하게 본 둥근 조각은 딱 한 번, 잘츠부르크의 Galerie Welz에서였다.
1층은 전시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데, 이번엔 별로였다.
Wien Mitte 역에 있는 쇼핑몰에서 베프와 만나기로 해서 가는 길에 학교에 맡겨둔 선물도 챙겨갔다.
파리에서부터 들고 다니던 선물들을 드디어 다 건넸다.
쇼핑몰 안에 있는 불량식품 나눠주는 룰렛을 돌려봤다.
베프는 좀 특별한 불량식품을 받았는데, 나는 제일 싸구려 불량식품을 받았다.
이런 운은 항상 지지리도 없다.
쇼핑몰 안의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고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아직 오후 5시라 벨베데레 하궁으로 갔다.
하궁은 거의 전부 특별전시로 채워지는데, 이번엔 20세기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성별을 나누어 역할의 제한을 두지 않았더라면, 그 당시에도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나왔을 텐데 싶었다.
역시 세상의 발전을 막는 것은 겨우 몇몇 멍청이들이다.
옆 건물에는 클림트 전시가 있었는데, 원작과 엑스레이, 방사선 사진 같은 걸 겹쳐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복원이나 분석은 잘 모르니까 그냥 대충 보고 넘어갔다.
끝에는 구글과 협업해 복원한 빈 대학 벽화 세 점의 복원본이 걸려 있었는데, 오전에 MAK에서 본 임멘도르프 성에서 불타버린 바로 그 작품들이었다.
상궁으로 넘어갔다.
입구 옆 작은 방에는 언제나처럼 작품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고, 메인 전시는 클림트가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작품들에 관한 전시였다.
그의 성격이나 작업 성향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만약’이다.
그래도 두 군데 다 악기를 보관해 줘서 편했다.
호스텔로 돌아와서 짐을 대충 정리하고, 중앙역 맥도날드에 가서 오늘 하루만 유효한 무료 500ml 콜라 쿠폰을 사용했다.
더운 하루를 시원하게 마무리하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내 위 침대에 국적 불명 흑인 한 명이 들어와 있었다.
신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느낌상 아프리카 출신으로 가톨릭 학회 같은 데 참가하러 온 것 같았다.
문제는 목청이 크고 이어폰도 안 끼고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거나 통화를 시끄럽게 하는 거다.
웃긴 건 여자랑만 통화를 한다.
불어 비슷한 걸 쓰는 걸 보니 프랑스 식민지 출신인 듯했다.
이놈이 떠드니 굴라쉬도 같이 방에서 통화를 시작했다.
몸은 너무 피곤해서 움직일 기운도 없는데, 방 안은 난장판이다.
이놈들은 결국 밤 11시 반쯤 돼서야 겨우 조용해졌다.
올해가 유독 더 그랬던 거 같은데, 여러 박물관,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특별전시들이 서로 연결되는 공통의 주제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큰 사건이나 주제가 있는 경우, 미술관들끼리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을 한다고 한다.
벨베데레 상궁, 하궁, 응용 미술관 세 곳에서 모두 클림트가 공통 주제였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또한 응용 미술관과 연극 박물관에서 공동 주제였다.
물론 비엔나가 클림트, 모차르트, 슈트라우스로 먹고사는 도시이기는 하지만,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다른 박물관, 미술관들에서도 클림트는 자주 등장하는 단골 주제이다.
한 도시 안에서 다양한 각도와 맥락으로 같은 작가를 볼 수 있다.
반대로 미술사박물관처럼 고전 회화 중심의 기관은 클림트 비중이 크지 않으니, 여행 중 '또 클림트'에 당하지 않으려면 어디서 무슨 전시가 있는지 미리 확인해 두는 게 좋다.
다행히도 비엔나의 미술관들은 시대별로 구분이 잘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