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Pasqualatihaus
위치: 오스트리아 빈
가격: 0€ (첫째주 일요일)
방문일자: 2023년 2월 5일
1804년 7월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그의 제자이자 친구인 페르디난트 리스에게 "성벽 근처에 숙소를 몹시 갖고 싶다"라고 썼다. 리스는 당시 이미 성공한 작곡가였던 그를 위해 '파스칼라티 하우스' 4층에 아파트를 찾아주었다.
이 아파트는 성벽 도시를 둘러싼 넓은 녹지대의 일부인 요제프슈타트 글라시의 멋진 전망을 갖추고 있었다. 베토벤은 1804년부터 1808년까지, 그리고 다시 1810년부터 1814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이 집은 요제프 베네딕트 프라이헤르 폰 파스칼라티가 건립했으며, 1791년에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다. 당시 빈의 관습에 따라 집 이름은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파스칼라티의 아들 요한은 베토벤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베토벤이 빈 외곽의 여름 휴양지나 테아터 안 데어 빈에 있는 두 번째 아파트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를 위해 이 아파트를 비워두었다.
이 집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는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이다.
원래 <레오노레(Leonore)>라는 제목이었던 이 작품은 1805년 11월 20일 테아터 안 더 빈에서 초연되었다.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1814년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새로운 제작으로 무대에 올려졌을 때 <피델리오(Fidelio)>라는 최종 형태를 갖추었다.
베토벤은 파스칼라티 하우스에서 <교향곡 5, 7, 8번>, <내림나장조 피아노 삼중주>, 그리고 피아노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도 작업했다.
빈/페스트 1808년 발행된 피아노 편곡판 초판 표지 팩시밀리
영향력 있는 궁정 서기 요제프 폰 콜린(1771–1811)의 비극 <코리올란>은 1802년부터 빈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오늘날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드라마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이 비극의 영웅적인 내용은 자신의 드라마틱한 작곡 재능을 입증하고자 했던 베토벤의 성향과 잘 맞았다.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은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란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 아니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하인리히 요제프 폰 콜린의 작품을 바탕으로 작곡했는데, 안타깝게도 연극은 금방 사라졌다.
내용은 고대 로마의 장군 코리올라누스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두 작품은 주인공의 최후에서 차이를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에서는 로마 공격을 포기한 주인공이 적국(볼스키)에 돌아갔다가 배신자로 몰려 살해당하지만, 콜린의 <코리올란>에서는 주인공이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에 마음을 돌린 후, 로마와 볼스키 사이에서 겪는 내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810년 6월 15일 빈
10개의 번호로 구성된 <에그몬트> 음악은 괴테와 베토벤의 예술적 관계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그중 서곡은 오늘날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베토벤은 이전에 이미 괴테의 시 몇 편을 작곡한 바 있다.
상단:
오늘 1810년 6월 15일 금요일
두 왕립 극장에서 다음 곡들이 상연된다
왼쪽: 부르크 극장
주요 공연: 에그몬트
괴테 작, 5막 비극
배역 및 출연진:
...
서곡, 간주곡, 노래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 선생이 새로 작곡했다
하단 공지:
암브로지 양, 브레프만 씨, 데사니 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오른쪽 구역: 케른트너토르 극장
알프스의 은둔자
고집 센 시골 소녀
최하단:
시작 시간은 7시다
에그몬트 부수음악의 구성:
서곡 (Overture)
가곡 (2곡):
'북이 울리면(Die Trommel gerühret)'
'기쁨과 슬픔(Freudvoll und leidvoll)'
간주곡 (4곡): 각 막이 끝날 때 연주되는 막간 음악
클레르헨의 죽음
멜로드라마: 옥중에 갇힌 에그몬트의 독백 뒤에 흐르는 기악곡
승리의 교향곡 (Siegessymphonie): 에그몬트가 처형대로 향할 때 연주되는 마지막 곡
미하엘 광장에 위치한 구 빈 부르크 극장은 당시 관객들에게 연극 공연뿐만 아니라 1810년까지 오페라 공연과 일시적인 콘서트도 제공했다.
부르크 극장, 즉 구 시립극장(Altes Burgtheater)은 1888년에 철거되었다.
호프부르크 왕궁을 확장하기 위해 시립극장을 허물고 미하엘러 관(Michaelertrakt)을 지었다.
시립극장은 링슈트라세(Ringstraße)의 신 시립극장(Neues Burgtheater)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안드레아스 라주모프스키 백작(1815년부터 친왕)은 1803년부터 1807년 사이에 에르드베르크와 란트슈트라세 교외 지역의 경계에 이 궁전을 짓게 했으며, 이곳에 그의 귀중한 예술 보물들도 보관했다.
1814년 12월 31일, 알렉산드르 1세가 빈 회의의 귀빈들을 위해 개최하려던 무도회가 시작되기 직전 궁전에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건물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재건될 수 있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현재는 개인 소유여서 공개되지 않는다.
베토벤은 교향곡 5번과 마찬가지로 교향곡 6번 또한 라주모프스키 백작과 롭코비츠 친왕에게 헌정했다.
교향곡 5번(별칭: 운명 교향곡)은 베토벤을 수년 동안 몰두하게 했다. 그는 이미 1803년 가을에 파리 여행을 계획하며 이 새로운 교향곡을 가져가 그곳에서 연주할 생각으로 첫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여행 계획이 무산되자 교향곡 작업도 일단 뒤로 미루었다. 5번 교향곡의 주요 작업은 1807년 봄부터 1808년 초 사이에 교향곡 6번 등 다른 작품들과 병행하여 이루어졌다.
1808년 12월 22일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에서 열린 기념비적인 '아카데미' 음악회에서 거행되었다.
1809년에 출판된 파트보에는 프란츠 요제프 롭코비츠 친왕과 안드레아스 라주모프스키 백작에 대한 헌사가 들어 있다.
아카데미(Akademie)는 18세기와 19세기 유럽, 특히 빈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연주자가 자기 책임하에 주최하는 수익 목적의 공개 음악회'를 뜻했다.
당시의 아카데미는 현재의 음악회와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은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작곡가 겸 연주자가 주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새로운 작품을 대중에게 처음 선보이고, 티켓 판매 수익을 얻기 위해 직접 기획했다. 극장을 빌리고, 연주자를 섭외하고, 홍보물을 돌리는 일을 모두 음악가 본인이 감당했다.
엄청나게 긴 공연 시간
당시 아카데미는 관객들에게 '본전을 뽑아주기 위해' 프로그램 구성을 매우 길게 잡았다.
1808년 12월 22일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열린 베토벤의 아카데미는 약 4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 한 번의 공연에서 교향곡 5번(운명), 6번(전원), 피아노 협주곡 4번, 합창 환상곡, 미사곡 일부 등이 모두 초연되었다.
다양한 장르의 혼합
오늘날처럼 '교향곡만 연주'하거나 '독주회만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교향곡 사이에 성악곡을 넣거나, 작곡가가 직접 피아노 즉흥 연주를 보여주는 등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다채롭게 구성했다.
사설 아카데미와 자선 아카데미
사설 아카데미: 음악가 개인의 수입을 위한 공연
자선 아카데미: 전쟁 고아나 빈민 구제 등 공익적인 목적으로 열렸으며, 베토벤의 <교향곡 7번>과 <웰링턴의 승리>가 초연된 음악회도 부상병들을 돕기 위한 자선 아카데미였다.
안드레아스 라주모프스키 백작(1815년부터 친왕; 1752-1836)은 유럽의 여러 수도에서 러시아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예를 들어 1792년부터(간헐적으로) 빈에 머물다 마침내 정착했다.
라주모프스키는 빈 음악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베토벤의 친구이자 후원자였으며, 1808년 이그나츠 슈판치히의 지도 아래 자신의 현악 4중주단을 창단하여 무엇보다 베토벤의 실내악을 널리 알렸다.
베토벤은 그에게 현악 4중주 op. 59를 헌정했고, 나중에는 롭코비츠 친왕과 공동으로 교향곡 5번과 6번(op. 67 및 op. 68)도 헌정했다.
주제적으로 서로 연관된 세 개의 4중주곡 op. 59(별칭: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는 베토벤의 작품 세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안드레아스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의뢰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들은 연주 기술상의 난이도와 새로운 음악적 요구 사항으로 인해 당시 대부분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이해받지 못했다.
베토벤은 외부적인 사건들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5개월 만에 그의 '8번'을 작곡했다.
테플리츠(Teplitz)에서 그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를 만났고, 린츠(Linz)에서는 그의 형제 요한 및 그의 미래의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
교향곡의 초연은 1814년 2월 27일 빈 호프부르크의 대무도회장(Großer Redoutensaal)에서 열렸으며, 다소 완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호프부르크의 대무도회장은 과거에는 황실의 무도회장이었으나, 현재에는 국제 회의 및 컨벤션 센터로 사용되어 일반 관광객에게 상시 개방되는 공간은 아니다.
베토벤 교향곡 8번 2악장에는 메트로놈 제작가 요한 네포무크 멜첼(Johann Nepomuk Mälzel)을 기리는 멜로디가 들어있다.
1812년, 베토벤이 멜첼의 메트로놈 발명을 축하하는 송별 파티에서 "타타타, 친애하는 멜첼(Ta ta ta, lieber Mälzel)"이라는 짧은 합창곡(WoO 162)을 즉석에서 만들어 불렀고, 이 선율을 교향곡 8번 2악장에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 음악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캐논은 베토벤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의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가 사후에 조작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교향곡 8번 2악장이 먼저 작곡되었고, 나중에 쉰들러가 그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가짜 일화를 만들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교향곡의 탄생에 대해 알려주는 스케치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베토벤은 '5번' 작업을 중단하고 1806년 여름과 가을에 빈과 트로파우(Troppau)에서 이 곡을 작곡했으며, 작품을 의뢰한 상부 슐레지엔의 프란츠 폰 오퍼스도르프 백작에게 헌정했다.
이 교향곡을 위한 주제 초안은 18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제 작곡 작업은 1811년 가을에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이듬해 5월에 완성된 작품은 1813년 12월 8일 구 대학(Alte Universität)에서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교향곡 7번은 모리츠 폰 프리스 백작에게 헌정했다.
빈 구 대학은 현재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 (Österreichi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와 예수회 성당 (Jesuitenkirche)으로 사용 중이다.
과학 아카데미의 대강당은 아주 화려하다.
현재에도 과학 아카데미의 대강당에서 자주 연주가 열린다.
예수회 성당 역시 큰 연주가 자주 열린다.
"나는 두군데에서 다 연주를 해봤어요!"
- 지나가던 그냥 오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