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협업의 역사 아는 척 하기 (6편)

기계적 발레: 무용수 없는 무대의 탄생

by 돈 없는 음대생

1925년의 새로운 소음


1925년 파리에서 조지 안타일(George Antheil)이 발표한 《기계적 발레》(Ballet mécanique)는 관습적 음악회와 달랐다. 무대에는 자동 피아노(Pianola), 전기 사이렌, 비행기 프로펠러, 종이 놓였다. 이들은 인간 연주자가 만들 수 없는 속도와 강도의 소리를 냈다.

George_Antheil_noisemaker.jpg 안타일과 그의 '노이즈 메이커'
07_Hupfeld_Eigenes_Phonola_a.jpg Hupfeld사의 피아놀라

안타일은 음악이 감정을 노래하는 대신, 기계의 회전과 충돌음을 재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프로펠러의 굉음과 자동 피아노의 빠른 박자는 극장을 흔들었고, 관객은 경이와 당혹을 동시에 경험했다. 자동 피아노는 인간 손가락으로는 불가능한 정밀하고 빠른 리듬을 구현했다.


레제의 렌즈: 사물이 춤추다


조지 안타일의 《기계적 발레》와 같은 제목을 공유한 시각 작업은 화가이자 영화 제작자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의 손에서 나왔다. 레제는 입체주의 이후 인간 형상보다 기계와 산업 물체의 형태에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그가 1924년 연출한 동명 무성영화에 나타난다.

Ballet_Mécanique,_1923–24.jpg 기계적 발레 영화를 위해 제작된 다다이즘과 큐비즘이 결합된 의상

영화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무용수나 서사가 없다. 피스톤, 회전하는 원판, 주방 도구, 병, 시계 추 같은 일상 사물이 빠른 편집과 반복을 통해 화면을 채운다. 레제는 화면을 연속적인 이야기로 연결하지 않고, 파편적인 이미지들의 연쇄로 구성했다.


여성의 입술이나 눈을 확대해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레제는 인물의 감정이나 개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신체의 일부는 표현의 대상이 아니라 반복되는 형태와 움직임의 요소로 다뤄진다. 세탁부가 계단을 오르는 동작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리듬화된 움직임으로 처리된다.


레제 - 기계적 발레 (오리지널 무성영화)


레제와 안타일은 같은 제목을 공유했지만, 음악과 영화는 처음부터 완전히 맞물린 상태로 공개되지 않았다. 길이와 구조가 달랐기 때문에 초기 상영에서는 영화가 무음으로 제시되었고, 안타일의 음악은 독립적인 연주 작품으로 존재했다. 두 작업은 공통적으로 반복, 속도, 분절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었다.

레제의 영화의 나체 장면으로 인한 검열로 인해 영화와 음악의 길이가 다르다는 주장이 있다.

무용수 없는 발레의 역설


'기계적 발레'라는 제목은 역설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의미의 무용수와 안무를 배제한다. 무대 위에서 훈련된 신체가 춤을 추는 대신, 《기계적 발레》는 기계, 사물, 필름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발레'라는 개념을 재정의한다. 움직임을 조직하는 주체는 인간의 근육이 아니라 필름의 프레임과 자동 피아노의 롤이다.


안타일은 이 곡에서 연주자의 해석과 신체적 감각을 최소화하고, 소리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중심에 놓았다. 자동 피아노는 인간 연주자가 도달하기 어려운 속도와 반복을 가능하게 했다. 피아노 롤에 의해 구동되는 소리는 매번 동일하게 재현되며, 인간 연주자가 지니는 미묘한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안타일 - 기계적 발레 - 피아노 롤 1

피아노 롤은 최대 12분 까지 저장가능해서, 거의 30분이 걸리는 작품을 위해 3개의 롤로 나뉘어 녹음되었다.

레제의 영화 역시 같은 방향을 공유한다. 화면에는 인간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개별적 주체로서의 인물이 아니다. 눈, 입, 다리, 혹은 반복되는 동작은 감정이나 서사를 전달하기보다 리듬화된 움직임으로 처리된다. 신체 조각들은 세탁기 부품, 병, 숫자, 기하학적 형상과 함께 배열된다.


《기계적 발레》는 무용수가 사라진 자리에 기계적 반복과 분절된 움직임을 놓음으로써, 발레를 신체의 예술이 아니라 시간과 운동을 조직하는 체계로 전환시킨다. 여기서 '안무'란 감정이나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프레임과 롤, 속도와 반복이 만드는 구조적 배열이다.


미래주의: 속도와 소음의 찬가


이 협업의 사상적 배경에는 20세기 초 유럽을 뒤흔든 '미래주의'(Futurismo)의 영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1909년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가 발표한 『미래주의 선언』(Manifesto del Futurismo)에서 그는 고전적 조화 대신 속도와 소음, 에너지를 예술의 새로운 기준으로 내세웠다.


우리는 위험에 대한 사랑, 속도에 대한 익숙함, 폭력에서 느끼는 쾌락을 찬양하려 한다…
폭발하는 숨을 가진 뱀처럼 큰 관이 장식된 엔진룸을 가진 경주용 자동차… 기관총 사격처럼 달리는 듯한 포효하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 더 아름답다.

(Noi intendiamo cantare l’amore del pericolo, l’abitudine alla velocità, il piacere della violenza…
La macchina da corsa con il suo cofano ornato di grandi tubi come serpenti dal fiato esplosivo … un’automobile ruggente, che sembra correre al fuoco di mitragliatrice, è più bella della Vittoria di Samotracia.)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 『미래주의 선언』, 1909 (Filippo Tommaso Marinetti, Manifesto del Futurismo, 1909)


안타일의 《기계적 발레》에서 들려오는 밀도 높은 음향은 이 시대적 감각과 맞닿아 있다. 그는 전통적인 선율 대신 반복, 충돌, 과잉을 통해 현대 도시의 리듬을 음악으로 끌어들였다. 소음은 더 이상 배제해야 할 요소가 아니라 산업 사회의 청각적 환경 그 자체였다.


레제 역시 비슷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전쟁과 산업화의 경험 이후, 기계가 지배하는 세계의 시각적 질서를 탐구했다. 회전하는 부품, 반복되는 동작, 금속 표면의 대비는 그의 영화에서 감정적 서사를 대신해 화면을 조직한다. 레제에게 기계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질서와 리듬을 드러내는 시각적 어휘였다.


이들에게 '기계적'이라는 말은 냉혹함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19세기 예술에 남아 있던 주관적 감정과 낭만적 관성을 밀어내고 동시대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위한 언어였다.


질감의 공명: 금속과 소리


안타일과 레제의 협업이 가능했던 것은 두 사람이 '질감'에 대해 공유한 감각 덕분이었다. 레제의 화면 속 금속 부품과 회전 프로펠러가 지닌 차갑고 날카로운 시각적 질감은, 안타일이 선택한 피아노 클러스터와 종, 타악기의 금속성 음향과 맞물렸다.


레제는 영상에서 반복적이고 단편적인 편집을 통해 거친 입자를 구현했고, 안타일은 음악 속 클러스터와 빠른 음형으로 이를 소리로 변환했다. 두 예술가는 대화를 나누기보다 각자의 매체를 극한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서로의 지점에 도달했다.


이러한 선택은 예술에서 일회성과 해석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대신 반복 가능성과 동일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자 음악과 영상 매체가 표준화된 재생 장치를 통해 동일한 결과를 생산하게 되는 흐름은 이미 이 시점에서 실험적으로 예고되고 있었다.


설계와 재생의 시대


《기계적 발레》가 1920년대 초연 당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명확하다. 자동 피아노 편성, 사이렌과 프로펠러 같은 비전통적 음향 요소는 청중에게 낯설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제시한 방향은 이후 20세기 예술의 흐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안타일이 선택한 자동 피아노는 연주자의 해석과 감정 개입을 최소화하는 수단이었다. 음악을 표현의 결과가 아니라 사전에 설계된 시간 구조의 실행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레제의 영화 역시 무용수의 상태나 현장의 우연성 대신 필름 프레임에 의해 고정된 반복을 선택했다.


이 작품은 소음을 음악적 재료로 다루는 가능성을 드러냈다. 프로펠러, 사이렌, 타악적 충돌음은 더 이상 음악 바깥의 방해 요소가 아니라 구조 안에 배치된 음향으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에드가 바레즈(Edgard Varèse)의 음향 개념이나 존 케이지(John Cage)가 제기한 소리의 범위 확장과 나란히 놓고 논의될 수 있다.


《기계적 발레》는 인간을 배제한 찬가라기보다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과 시스템이 예술의 형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시험한 작품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계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술의 주도권이 손과 몸에서 설계와 재생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이동이 이후 20세기 후반의 음악과 영상 예술을 규정하는 하나의 축이 되었다.


독립된 두 작품, 공유된 언어


레제의 영화와 안타일의 음악은 동시에 제작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독립적인 예술 작품으로 남았다. 길이와 구조가 달랐기 때문에 초기 상영에서는 영화가 무음으로 제시되었고, 안타일의 음악은 독립적인 연주 작품으로 존재했다. 그럼에도 두 작업은 반복, 속도, 분절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었고, 이후 두 매체를 나란히 놓고 해석하는 관점이 형성되었다.


레제 - 기계적 발레 (안타일의 음악과 합친 2k 디지털 리마스터 버전, 음악 버전 미상)


안타일의 원래 구상은 16대의 자동 피아노를 동시에 가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여러 대의 기계를 완벽하게 동기화할 수 없었다. 초연에서는 1~2대의 자동 피아노나 라이브 피아노로 축소되었다. 20세기 후반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러 대의 자동 피아노를 정확히 동기화한 재현이 가능해졌다.


안타일 - 기계적 발레 (1924년 피아놀라 버전 음원)


안타일 - 기계적 발레 (1924년 버전 실황 연주)

1924년에 작곡된 4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
위를 바탕으로 만든 16대의 피아놀라, 2대의 피아노, 각종 타악기로 구성된 버전
1953년에 수정된 피아놀라가 없는 버전
총 3가지가 있다.

2번째 버전의 피아놀라 파트는 총 4개로 나뉘어져 있고, 각 파트는 1-4대의 피아놀라로 연주될 수 있다. 원래의 구상은 16대의 피아놀라를 4개 그룹으로 묶어 17번째 피아놀라로 제어하는 방식이었지만, 동기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초연 당시에는 하나의 피아놀라만 사용했다.

《기계적 발레》가 예술사에 남긴 흔적은 분명하다. 반복적 구조, 극단적인 속도, 소음의 재료화는 당대로서는 낯선 접근이었다. 자동 피아노와 타악기의 결합은 후대 전자음악과 기계 기반 음악의 선례가 되었다. 인간적 터치를 거부하고 기계의 작동 원리를 선택한 이들의 실험은 예술이 기술과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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