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협업의 역사 아는 척 하기 (7편)

우연이라는 이름의 연대: 뉴욕 5인방의 침묵

by 돈 없는 음대생

블랙 마운틴 칼리지: 전후의 허무와 새로운 시작


1950년대 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블랙 마운틴 칼리지(Black Mountain College)는 예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허무주의와 당시 미국 화단을 지배하던 추상표현주의의 과잉된 자아 표출에 반기를 든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 중심에는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가 있었다. 그는 예술을 예술가의 주관적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규정하는 낭만주의적 전통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케이지는 1950년대 이후 동양 사상, 특히 선(禪) 불교에 관심을 보였으며, 이러한 관심은 우연성, 비의도성, 비개입의 개념을 자신의 작업 방법에 반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유에 동참한 이들이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그리고 사이 톰블리(Cy Twombly)였다. 이들 '뉴욕 5인방'은 작가의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그 빈자리에 '우연'과 '침묵', 그리고 '일상'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들여왔다.


라우션버그: 침묵을 시각화하다


1951년, 로버트 라우션버그《화이트 페인팅》(White Paintings)을 발표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채 오직 하얀 페인트로만 칠해진 일련의 캔버스는 당시 관객들에게 낯설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존 케이지는 이 텅 빈 캔버스에서 현대 음악의 가능성을 보았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2290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EfGHDRgrA8pPElpTfyVWXoDyDag%3D 로버트 라우션버그 - 화이트 페인팅. 출처: moma.org

케이지는 관찰했다. 하얀 캔버스는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 안의 조명 변화, 관객이 지나가며 남기는 그림자,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입자들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있었다. 캔버스는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세상의 모든 우연을 담아내는 수신기가 된 것이었다. 이에 영감을 받은 케이지는 이듬해인 1952년, 《4분 33초》(4'33")를 내놓았다.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단 한 음도 연주하지 않는 이 곡은 그 시간 동안 발생하는 관객의 웅성거림, 기침 소리, 환풍기 소리 등을 음악의 본질로 격상시켰다.


케이지 - 4'33"


미술이 음악의 형식을 결정하고, 음악이 미술의 철학을 증명했다. 두 예술가는 ‘비움’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통해, 예술이란 작가가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는 행위임을 보여주었다.


커닝햄: 무용을 음악의 노예에서 해방시키다


이 연대에서 머스 커닝햄의 역할은 신체의 물리적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무용은 언제나 음악의 리듬에 종속된 존재였다. 그러나 커닝햄은 존 케이지와 함께 '음악과 무용은 한 공간에서 동시에 존재할 뿐, 서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방식을 제안했다.

우리의 협업에서 머스 커닝햄의 안무는 내 음악에 의해 보조되지 않는다. 음악과 무용은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공존한다.

(In our collaborations Merce Cunningham’s choreographies are not supported by my musical accompaniments. Music and dance are independent but coexistent.)

존 케이지 『자서전 진술』(John Cage - An Autobiographical Statement)


머스 커닝햄은 케이지와 함께 무용과 음악을 서로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형식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작업을 따로 제작하고, 공연 당일 무대에서 처음 함께 보여주기도 했다. 음악가는 음악가의 길을 가고, 무용수는 무용수의 길을 가다가 무대라는 시공간에서 우연히 교차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무용수들은 음악의 리듬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신체적 움직임과 시간 구조를 기준으로 안무와 공연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 '비결정적 협업'은 무용수들에게 전례 없는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하는 긴장감을 요구했다. 커닝햄은 안무의 순서를 동전 던지기주역(I-Ching)의 괘를 통해 결정하는 등, 인간의 습관적 선택이 가질 수 없는 우연의 생동감을 무대 위에 구현했다.


케이지 - Variations V (음악: 케이지, 무용: 커닝햄)


존스와 톰블리: 기호와 낙서의 결합


1950년대 중반, 5인방의 결속은 재스퍼 존스와 사이 톰블리의 합류로 더욱 견고해졌다. 재스퍼 존스는 미국 국기, 과녁, 숫자와 같이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기호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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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는 '마음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소재로 택함으로써, 관객이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려 애쓰는 대신 사물 그 자체의 존재감을 느끼게 했다. 이는 존 케이지가 일상의 소음을 그대로 들려준 것과 시각적으로 동일한 맥락이었다. 존스의 정교한 기호들은 라우션버그의 무대 장치와 어우러지며 현대 예술의 객관성을 강화했다.


미국 국기 디자인을 사용하면서… 그다음에는 표적 같은 비슷한 것들로 넘어갔다 — 마음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것이 나에게 다른 층위에서 작업할 여지를 주었다.

(Using the design of the American flag… so I want on to similar things like the targets — things the mind already knows. That gave me room to work on other levels.)

재스퍼 존스 『타임지』, 1959년 5월 4일 (Jasper Johns, Time, May 4, 1959)


반면 사이 톰블리는 문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와 같은 분출하는 선들을 탐구했다. 사이 톰블리는 동시대 작가들과 교류하며 제스처적 드로잉을 통해 전통적 미학 질서에 저항하는 표현을 발전시켰다. 톰블리와 라우션버그는 함께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며 고대의 유적에 남겨진 낙서와 시간의 흔적에 매료되었다. 톰블리의 휘갈겨진 필치는 케이지의 불규칙한 소리들처럼 전통적인 미학적 질서에 저항했다. 그의 선들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행해진 것'으로서, 무용가 커닝햄의 신체 움직임과 유사한 운동성을 캔버스 위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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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바인 페인팅: 도시의 잔해가 무대로


라우션버그는 자신의 회화 기법인 '콤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을 무대로 확장했다. 그는 거리에서 주운 나무판자, 타이어, 박제된 동물, 낡은 신문지 등을 무대 장치와 의상의 재료로 사용했다.


1954년 무용 작품 《미뉴티에》(Minutiae)에서 라우션버그가 만든 무대 스크린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미술 작품이었다. 그는 무용수가 스크린 사이를 통과하거나 그 뒤에 숨을 수 있게 설계함으로써, 미술을 배경이 아닌 무용수와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라우션버그에게 무대는 도시의 잔해와 예술이 뒤섞이는 콜라주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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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미학: 5인방이 공유한 여백


이들이 공유한 중요한 정서는 침묵이었다. 존 케이지에게 침묵은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였다. 사이 톰블리는 캔버스의 넓은 여백 위에 작은 선 하나를 그음으로써 그 침묵을 시각화했고, 재스퍼 존스는 익숙한 기호를 통해 의미의 침묵을 유도했다.


머스 커닝햄의 안무에서도 침묵은 중요했다. 그는 무용수들이 격렬하게 움직이다가 갑자기 완벽한 정지 상태에 머물게 함으로써 무대 위의 긴장감을 높였다. 이 5인방에게 예술은 무언가를 덧붙여 화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깎아내고 비워내어 세상의 본질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수행과 같았다. 이러한 여백의 미학은 이후 미니멀리즘개념 예술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토양이 되었다.


우연이라는 시스템


많은 이들이 5인방의 협업을 즉흥적이라고 오해하지만, 사실 그들의 우연은 철저히 공학적으로 설계된 시스템 안에서 작동했다.


존 케이지는 악보를 쓸 때 주역의 64괘를 기반으로 한 복잡한 확률표를 사용했다. 어떤 악기가 언제, 몇 초 동안 소리를 낼지를 결정하기 위해 수천 번의 주사위를 던졌다. 커닝햄 역시 무용수들의 배치와 동선을 결정할 때 카드 게임이나 동전 던지기를 통해 인간의 직관이 개입할 틈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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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션버그의 무대 장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명이 우연히 관객을 비추거나, 무대 위의 소품이 무용수의 의도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움직이도록 고안했다. 이들에게 우연은 무책임이 아니라, 인간의 편협한 의도를 넘어서는 더 큰 질서에 접속하기 위한 정교한 기술이었다.


냉전과 정치적 중립성


1950년대 미국은 냉전의 긴장과 '매카시즘'(McCarthyism)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당시의 많은 예술가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거나 정치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5인방은 의도적으로 무색무취한 태도를 유지했다.

매카시즘: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조셉 매카시(Joseph McCarthy)의 이름에서 기인한 1950-1954년까지 극단적인 반공주의 현상.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 체제가 형성되던 시기, 공산주의자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해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거나 사회적 통제를 강화했다.

그들은 정치적 선동 대신 일상의 발견을 택했다. 깃발을 그리되 애국심을 노래하지 않았고(재스퍼 존스), 사이렌 소리를 들려주되 전쟁의 공포를 묘사하지 않았다(존 케이지). 이들의 비정치적인 태도는 역설적으로 예술을 선전 도구로부터 해방시키는 효과를 냈다. 관객에게 특정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무대 위에서 발생하는 우연한 사건들을 스스로 체험하고 느끼도록 함으로써, 예술의 결정권은 작가에서 관객으로 넘어갔다.


라이브니스의 탄생


5인방이 현대 예술에 남긴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텍스트의 종말’이다. 발레 뤼스의 작품에는 여전히 특정한 이야기나 줄거리가 존재했다. 그러나 케이지, 커닝햄, 라우션버그, 존스, 톰블리의 무대에는 줄거리가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이 극장에서만 발생하는 실재하는 사건만이 존재한다.


존 케이지의 음악은 연주될 때마다 주변 환경과 관객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므로, 매번 같은 곡이 되지 않는다. 머스 커닝햄의 무용 또한 우연과 즉흥성을 내포해 매 공연이 유일무이한 경험이 된다. 라우션버그와 톰블리의 설치 및 작품도 관객의 시점, 조명, 공간 조건에 따라 매번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박제된 작품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라이브니스'(Liveness)였다.


우연이라는 연대, 그 이후


1950~60년대, 케이지, 라우션버그, 커닝햄, 존스, 톰블리가 함께한 실험은 현대 예술의 전환점이었다. 그들은 예술을 박물관이나 무대의 제단에서 끌어내어, 우리의 일상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들의 연대는 발레 뤼스가 추구했던 장르 간의 완벽한 융합을 넘어, 장르 간의 독립적 공존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공통의 철학적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주체성을 유지하며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침묵이 음악이 되고, 비움이 그림이 되며, 낙서와 잔해가 예술의 언어가 된 이들의 실험은 20세기 미술과 음악의 중요한 도발이었다. 동시에,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의 주체가 될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예술의 의미와 가치가 작가에서 관객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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