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성당 / 인물의 흔적
장소: Église Sainte-Clotilde
일정: 성당 구경
가격: 0€
방문일자: 2026년 3월 10일
인물: Cesar Franck
장소: 2 Rue Casimir Périer, 75007 Paris / 95 Bd Saint Michel, 75005 Paris
분류: 동상 / 거주지
생트 클로틸드 성당 앞에 도착을 하면 작은 공원이 있다.
이 공원 한쪽에는 세자르 프랑크를 기리는 동상이 있다.
이 성당은 19세기에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프랑크 왕 클로비스의 아내이자 프랑스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성녀 클로틸드(Sainte Clotilde)와 성녀 발레르(Sainte Valère)에게 헌정되었다.
그래서 19세기말에 바실리카 등급으로 격상되었다.
성당이 전통적인 귀족층과 지식인들이 거주하던 7구에 있어서 당대 상류 사회의 영적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내부 장식에 윌리암 부그로 같은 당대 최고의 아카데미 화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재정적 바탕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 성당의 오르간도 카바이유-콜의 작품이다.
이 오르간에서 세자르 프랑크가 다양한 곡들을 작곡했다.
건축 후 1년 뒤인 1858년부터 1890년까지 프랑크가 오르가니스트로 있었고, 그 뒤를 프랑크의 제자들인 가브리엘 피에르네(Gabriel Pierné)와 샤를 투르느미르(Charles Tournemire)이었다.
시각 장애가 있었던 장 랑글레(Jean Langlais)가 1987년까지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했었다.
오르간은 원래 3단 건반, 30개 스탑이었으나, 투르느미르 시절 스탑이 두배로 늘어났고, 랑글레 시절에 전기 액션 시스템을 도입했다.
2005년에 자크 타데이(Jacques Taddei)가 재직하면서 4단 건반, 71개 스탑으로 증설했다.
아무 생각 없이 성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미사 중이었다.
애매하게 12시 38분 정도였다.
막 들쑤시고 다니기는 싫어서 그냥 앉아서 끝까지 기다렸다.
프랑수아-에두아르 피코(François-Edouard Picot), 장식
성녀 클로틸드(Sainte Clotilde, 470-575)는 이 바실리카의 수호성인이다. 그녀의 축일은 6월 4일이다. 부르군트 왕 칠페리크의 딸인 그녀는 프랑크 왕 클로비스와 결혼했다. 전승에 따르면 클로비스는 496년 알라만족과의 톨비아크 전투에서 자신의 이방인 신들에게 헛되이 도움을 구하다가 클로틸드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승리를 거둔 후 클로비스는 개종하기로 결심했고, 이는 프랑크 민족이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과부가 된 후 아들들이 폭력적으로 서로 다투는 것을 본 그녀는 궁정을 떠나 투르의 성 마르틴 묘소 근처에서 은거하기로 결심했다.
왼쪽: 〈가난한 이들을 돕는 성녀 클로틸드〉(Sainte Clotilde secourant les pauvres)
오른쪽: 〈클로비스의 세례〉(Le baptême de Clovis)
금색 바탕 위에 그려짐: 〈성녀 클로틸드의 결혼〉(Le mariage de sainte Clotilde), 〈클로비스의 세례〉(Le baptême de Clovis)
외젠 기욤(Eugène Guillaume) - 《성녀 클로틸드 상》(Statue de sainte Clotilde, 1857)
4명의 복음서 저자: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빛반사 때문에 4개만 찍었다. 반대편에는 두 명의 교회 박사와 두 명의 교부가 있다.
앙투안 뤼송과 아들들(Antoine Lusson et fils) 제작: 〈성모 마리아와 아들 예수〉(La Sainte Vierge et son Fils Jésus), 측면 칸의 〈네 천사〉(Quatre anges)
성인 조각상들로 장식됨.
노란색과 빨간색 줄무늬가 있는 우산 형태의 곤팔론(Gonfalon). 로마 주교와의 일치를 상징함.
작은 종인 틴티나불룸(Tintinnabulum).
본래 바실리카 정면을 위해 주문되었으나 실제로 설치되지는 않았으며 지붕 밑 공간에 방치되어 있었다. 현재 위치에 설치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옷 주름 묘사의 사실주의는 제임스 프라디에(James Pradier) 학파의 정신을 보여준다. 왼손에 든 대성당 모형은 그녀의 재위 기간 동안 교회에 베푼 은덕을 상징한다.
바틸드(Bathilde, 630-680)는 프랑크의 왕비로, 클로비스 2세의 아내이자 네우스트리아-부르군트 왕국의 섭정이었다. 색슨족 출신인 그녀는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 궁전 시장의 복무를 위해 노예로 팔려 왔다. 궁정에 소개된 그녀는 648년경 클로비스 2세 왕과 결혼했다. 세 아들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곧 과부가 되었으며, 성 우앵(Saint Ouen)과 성 엘루아(Saint Eloi) 같은 저명한 고문들의 보좌를 받으며 섭정을 수행했다. 신중한 용기와 종교적 신념, 하느님께 대한 의탁의 모델이었던 그녀는 왕국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성직자들의 행실을 개선하며 노예무역을 금지했다. 수도원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며 교회에 많은 은덕을 베풀었고 쥐미에주, 뤽세유, 퐁트넬, 주아르, 파르무티에 등 여러 수도원을 개혁하거나 설립했다. 음모가 있은 후 바틸드 왕비는 자신이 설립했던 셸 수도원으로 은퇴했으며 더 이상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가장 큰 겸손 속에서 그녀는 동료 수녀들과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데 헌신했다. 그녀는 680년 1월 30일에 사망했다.
프랑수아-에두아르 피코(François-Edouard Picot)가 장식
카페 왕조의 프랑스 왕으로 성 루이라 불리는 루이 9세(Louis IX, 1214-1270)에게 헌정된 경당이다. 그의 정의, 경건, 자비로 인해 왕국은 문화적, 지적, 신학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성 루이는 적들을 화해시키고 갈등을 잠재우는 데 힘썼다. 그는 튀니지 카르타고에서 십자군 전쟁 중에 사망했다.
왼쪽(아래에서 위로): 〈가시관을 가져오는 성 루이〉(Saint Louis rapporte la couronne d'épines), 〈재판하는 성 루이〉(Saint Louis rendant la justice), 알레고리: 〈정의, 진실, 절제〉(Justice, Vérité et Modération)
오른쪽(아래에서 위로): 〈흑사병 환자를 돌보는 성 루이〉(Saint Louis soigne les pestiférés), 〈성 루이의 죽음〉(La mort de saint Louis), 알레고리: 〈종교, 자선, 경건〉(Religion, Charité et Piété)
왼쪽(아래에서 위로): 〈카스티야의 블랑슈에 의한 성 루이의 교육〉(L'éducation de saint Louis par Blanche de Castille), 〈성 루이의 십자군 출정〉(Le départ en croisade de saint Louis), 〈파리로 가시관을 가져오는 성 루이〉(Saint Louis rapporte la couronne d'épines à Paris)
오른쪽(아래에서 위로): 〈흑사병 환자를 돌보는 성 루이〉(Saint Louis soigne les pestiférés), 〈성 루이의 죽음〉(La mort de saint Louis), 〈성 루이의 영광〉(La glorification de saint Louis)
프랑수아-에두아르 피코(François-Edouard Picot), 장식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에 대한 공경은 하느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고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성한 사랑의 상징이다. 이는 신성한 빛으로 빛나는 불타는 심장의 형태로 표현된다. 상처와 가시관은 예수의 죽음의 상황을 암시하며, 불은 사랑의 변형시키는 힘을 상징한다.
왼쪽(아래에서 위로): 〈제물을 위해 나무를 지고 가는 이사악〉(Isaac porte le bois pour le sacrifice), 〈십자가를 지는 것을 예표하는 이사악〉(Isaac préfigure le portement de la croix), 〈광야에서 구리 뱀을 들어 올림〉(L'élévation du serpent d'airain dans le désert), 〈감람나무 동산의 그리스도〉(Le Christ au Jardin des Oliviers)
중앙: 〈그리스도의 비탄〉(La déploration/lamentation du Christ),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Le crucifiement du Christ), 〈십자가에서 내림〉(La descente de la croix)
오른쪽: 〈진정한 십자가의 확인〉(La reconnaissance de la vraie croix)
왼쪽(아래에서 위로): 〈십자가를 지고 감〉(Le portement de la croix),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Le crucifiement du Christ), 〈두 천사 사이에서 축복하는 그리스도〉(Le Christ bénissant entre deux anges)
오른쪽(아래에서 위로): 〈예루살렘에서 진정한 십자가를 발견하는 성녀 헬레나〉(Sainte Hélène découvrant la vraie croix à Jérusalem), 〈콘스탄티누스의 환시〉(La vision de Constantin), 〈교황 실베스테르와 콘스탄티누스 사이의 성녀 헬레나〉(Sainte Hélène entre le pape Sylvestre et Constantin)
프랑수아-에두아르 피코(François-Edouard Picot), 장식
마리아의 전 생애는 깊은 신앙과 겸손,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대한 헌신의 이야기다. 세상의 구원자인 예수의 어머니가 되도록 하느님께 선택받은 그녀는 신앙, 희망, 자애의 모델이며, 우리 각자가 성결을 추구하고 하느님과 밀접하게 결합하여 살아가도록 초대한다.
왼쪽(아래에서 위로): 〈주님 탄생 예고〉, 〈엘리사벳 방문〉, 〈예수 탄생〉, 〈성전 봉헌〉, 〈이집트 피신〉, 〈율법 학자들 사이의 예수〉
오른쪽(아래에서 위로): 〈십자가에서 내림〉, 〈십자가 처형〉, 〈갈바리아 언덕을 오름〉, 〈성령 강림〉, 〈마리아의 무덤 앞에 선 사도들〉, 〈성모 승천〉
중앙: 〈성모 대관〉(Le couronnement de la Vierge)
본래 중앙 니치에는 앙리 드 트리케티의 성모상이 있었으나 2005년 성가대석 왼쪽으로 옮겨졌다.
왼쪽(아래에서 위로): 〈성모 탄생〉, 〈성모의 교육〉, 〈주님 탄생 예고〉, 〈엘리사벳 방문〉, 〈성모의 결혼〉, 〈성전 봉헌〉
오른쪽(아래에서 위로): 〈동방 박사의 경배〉, 〈이집트 피신〉, 〈율법 학자들 사이의 예수〉,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죽음〉, 〈십자가 발치에서의 성모〉, 〈무염시태〉
프랑수아-에두아르 피코(François-Edouard Picot), 장식
'의인'(Le Juste)이라 불리는 성 요셉은 예수의 지상 아버지이자 동정 마리아의 남편이다. 다윗 왕의 후손인 그는 팔레스타인의 나자렛에 살며 목수 일을 했다. 그는 예수의 공생활이 시작되기 직전에 사망했다. 그는 가정과 '행복한 죽음'(La bonne mort)의 수호성인이다.
왼쪽(아래에서 위로): 〈족장 아브라함, 다윗, 요셉〉, 〈성 요셉의 결혼〉, 〈성 요셉의 첫 번째 꿈: 성령의 업업에 대한 계시〉
중앙: 〈목자들의 경배〉, 〈성 요셉의 두 번째 꿈: 이집트로의 피신〉
오른쪽: 〈이집트 피신〉, 〈성 요셉의 세 번째 꿈: 이집트에서의 귀환〉
왼쪽(아래에서 위로): 〈죄 없는 아기들의 학살〉(Le Massacre des Innocents), 〈순명과 신뢰 사이의 성 요셉〉(Saint Joseph entre l'Obéissance et la Confiance)
오른쪽(아래에서 위로): 〈성전의 예수〉(Jésus au Temple), 〈성 요셉의 죽음〉(La mort de saint Joseph), 〈겸손과 순결 사이의 성 요셉〉(Saint Joseph entre l'Humilité et la Chasteté)
프랑수아-에두아르 피코(François-Edouard Picot), 장식
프랑스의 수호성인인 성 레미(Saint Rémi, 437-533)는 랭스의 주교였으며, 성녀 클로틸드 왕비에 의해 왕을 가톨릭 신앙으로 인도하도록 성 바스트(Saint Vaast) 주교와 함께 선택되었다. 496년 성 레미에 의한 클로비스의 세례는 프랑스 역사와 가톨릭 역사의 근간이 되는 사건 중 하나로, 로마 제국의 폐허 위에 세워진 최초의 가톨릭 국가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연유로 성 레미는 '프랑크족의 사도'(Apôtre des Francs)로 추앙받는다.
왼쪽: 〈성 레미와 한 주교〉, 〈기름이 가득 찬 항아리의 기적〉, 〈성 레미의 설교〉
오른쪽: 〈496년 프랑크족의 첫 번째 왕 클로비스의 세례〉, 〈성 레미의 매장〉, 〈성 레미 유해의 이장〉
왼쪽: 〈교황의 사절이 성 레미에게 주교직을 제안함〉(Le légat du pape offre l'épiscopat à saint Rémi), 〈클로비스의 세례〉(Le baptême de Clovis), 〈두 천사 사이의 성녀 클로틸드〉(Sainte Clotilde entre deux anges)
오른쪽: 〈성 레미의 기적〉(Le miracle de saint Rémi), 〈성 레미의 찬미〉(L'exaltation de saint Rémi), 〈두 천사 사이의 성 레미〉(Saint Rémi entre deux anges)
본래 바실리카 정면을 위해 주문되었으나 당시 "품위 없는" 특징을 가졌다는 판단으로 설치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지붕 밑 공간에 방치되었고, 그 결과 팔다리가 훼손되었다. 현재 위치에 설치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오랫동안 예술 아카데미에서 거부당했던 이 조각가에 대한 인정을 증명한다.
성 발레르는 3세기의 동정 순교자로, 리모주 총독의 딸이다. 250년경 그녀는 로마에서 가울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해 파견된 마르시알(Martial) 주교에 의해 개종했다. 개종 후 발레르는 정결 서원을 하고 명상적인 삶에 헌신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던 새로운 총독 줄리우스 실라누스(Julius Silanus)가 임명되었다. 그녀가 거절하자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참수된 후 자신의 머리를 들고 성 마르시알의 발치까지 갔다고 전해진다.
프랑수아-에두아르 피코(François-Edouard Picot), 장식
성 발레르(Sainte Valère)는 이 바실리카가 세워지기 전, 인근 부르고뉴 거리에 있던 옛 수도원과 경당의 수호성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인연으로 인해 바실리카의 공식 명칭 또한 '성 클로틸드-성 발레르 바실리카'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안내문이 없다.
경당 벽면에는 성 발레르의 생애와 순교 장면을 담은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이 경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을 주제로 하며, 모세 등의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앙리 드라보르드(Henri Delaborde) 장식, 1854
세례당은 그리스도교 삶의 첫 성사인 세례가 거행되는 공간이다. 중앙에는 팔각형 모양의 세례대가 있으며, 이 팔각형은 완성의 날인 제8일을 상징한다. '세례'(Baptême)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통과의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 성호를 긋고 물속에 잠김으로써, 새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우리는 한 아버지를 모시는 자녀가 되고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Jésus-Christ)의 형제자매가 된다.
〈성 요한 세례자에 의한 예수의 세례〉(Le baptême de Jésus par saint Jean-Baptiste)
〈성녀 아녜스의 세례〉(Le baptême de sainte Agnès)
〈성 레미에 의한 클로비스의 세례〉(Le baptême de Clovis par saint Rémi)
〈성 프랑수아 자비에에 의한 인도인들의 세례〉(Le baptême d'Indiens par saint François-Xavier)
〈겸손〉(L'Humilité), 〈순결〉(L'Innocence), 〈참회〉(La Pénitence), 〈신앙〉(La Foi)
앙리 드라보르드(Henri Delaborde) 장식, 1854
'죽은 자들의 경당'(Chapelle des Défunts)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1914-1918년과 1939-1945년의 두 차례 세계 대전 중에 사망한 교구의 죽은 이들뿐만 아니라, 1897년 5월 4일 '자선 바자회'(Bazar de la Charité)의 비극적인 화재 당시 사망한 이들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오늘날 '하느님의 자비'(Miséricorde Divine)에 헌신하는 이 경당은 화해와 고해성사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자비를 통한다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의 초대이며, 이웃을 사랑하고, 주님께서 각자에게 사랑과 용서를 베푸시기에 그분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나사로를 보고 우시는 그리스도〉(Le Christ pleurant Lazare)
〈성 요한의 사명〉(La mission de saint Jean)
〈부활절 아침 무덤으로 가는 거룩한 여인들〉(Les Saintes Femmes se rendant au tombeau le matin de Pâques)
〈그리스도의 매장〉(La mise au tombeau du Christ)
〈애도〉(Le Deuil), 〈인내〉(La Patience), 〈경건〉(La Piété), 〈희망〉(L'Espérance)
01 세례당 경당(Chapelle des Fonts Baptismaux)
02 성녀 클로틸드 경당(Chapelle Sainte Clotilde)
03 성가대석(Le Chœur)
04 성녀 클로틸드와 성녀 발레르의 생애 부조(Bas-relief de la vie de sainte Clotilde et de sainte Valère)
05 주랑 복도 경당들(Chapelles du déambulatoire)
06 성모 경당(Chapelle de la Vierge)
07 성녀 발레르 경당(Chapelle Sainte Valère)
08 설교단(La chaire à prêcher)
09 대파이프오르간(Le grand-orgue)
10 죽은 자들과 자비의 경당(Chapelle des défunts et de la Miséricorde)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딱 성당 위로만 비가 온다...
성당을 나와서 문득 생각해보니, 프랑크가 이 교회에서 깨 오래 일을 했을텐데 어디에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왠지 평생직장인데 멀리 살았을 거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찾아보니 도보 25분 정도 거리에 살고 있었다. 버스를 타던 뭐를 타던 이래저래 25분이 걸린다.
집에 가는 길에 살짝 돌아서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프랑크가 설던 집 앞에 도착을 했다.
재밌는 점은 이 건물에 유명인이 두 명이나 살았다는 점이다.
왼쪽에 보이는 것은 세자르 프랑크고 오른쪽은 루이 마랭이다.
대충 이름을 보고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넘어가서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너무나 프랑크와 동급으로 달려있어서 찾아봤더니 알게 모르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프랑스 정치가 루이 마랭(Louis Marin)은 1901년 한국 여행을 계기로 '한국친우회'를 창립하고 100만인 서명운동을 제안하는 등, 일제의 식민 지배에 맞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한국의 독립을 다방면으로 지원한 독립운동가였다.
건물의 오른쪽 구석에는 현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