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성당
장소: Église Saint Germain-des-Prés
일정: 성당 방문
가격: 0€
방문일자: 2026년 3월 15일
파리 6구에 있는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은 6세기에 지어졌다.
당시 메로빙거 왕조의 왕 힐데베르트 1세가 성 빈첸시오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왕실 바실리카를 세웠다.
이후 576년 파리의 주교였던 성 제르맹이 이곳에 묻히면서 그의 이름을 따 생 제르맹이라고 불렀다.
생드니 대성당으로 왕실 묘지가 이동하기 전 까지는 이곳이 왕실 묘지로 사용되었다.
11세기의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이 핵심을 이루고 있지만, 여러 차례 복원과 재건으로 고딕 요소와 19세기 장식이 섞여있다.
내부의 화려한 장식은 이폴리트 플랑드랭(Hippolyte Flandrin)의 작품이다.
프랑스혁명 때는 수도원 건물이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묘비가 내부에 있다.
푸치니(Puccini)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와 마스네(Massenet)의 오페라 마농(Manon)의 바탕이 되는 '기사 데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L’histoire du chevalier des Grieux et de Manon Lescaut)를 집필한 아베 프레보(Abbé Prévost)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원래 이 입구에는 조각상이 8개 있었는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혁명 때 부서졌다.
옛 문헌이나 그림들로 당시 모습을 그나마 유추해 볼 수 있다.
현재는 기둥만 8개가 남아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파란색 천장이 맞이한다.
천장, 벽면, 궁륭, 기둥 모든 곳에 장식이 되어있다.
장 마비용(Jean Mabillon),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베르나르 드 몽포콩(Bernard de Montfaucon)의 묘비가 있다.
프랑스혁명 이전 생 제르맹 데 프레 수도원의 모습
국왕의 조각상과 심장 안치함, 재단화 등이 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왕이자 바사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인 얀 2세 카지미에시는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 프랑스로 망명했다.
루이 14세가 망명을 받아들여 이 생제르맹 데 프레 수도원의 명예 원장직을 맡겼다.
폴란드 친구들의 관습인지는 몰라도 쇼팽과는 반대로 심장은 이 수도원에 안치되고 시신은 폴란드 크라쿠프의 바벨 성당으로 옮겨졌다.
이 '성모자와 아기 예수' 조각상은 1999년 퓌르스텐베르 거리(rue de Furstenberg)의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세 개의 돌 파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조각은 본래 옛 성모 경당의 문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이나, 조각 과정에서의 사고로 인해 미완성 상태로 남겨졌다가 벽의 기초석으로 재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모님의 왕관과 얼굴 선의 미완성된 특성, 그리고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머리는 이 작품을 13세기 중반 파리 조각 예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감동적인 증거로 만든다.
성 심포리앙 경당은 555년부터 575년까지 파리 주교였던 성 제르맹(Saint-Germain)의 첫 번째 묘소가 있던 자리를 기념한다. 전설에 따르면 성 제르맹은 본인이 설립한 오툉(Autun)의 성 심포리앙 수도원 출신으로, 이 성인을 기리는 제단을 직접 세웠다고 한다. 그는 클로비스의 아들 힐데베르트 1세(Childebert I) 왕을 설득하여 성 십자가와 성 빈첸시오에게 봉헌된 바실리카와 인접 수도원을 설립하게 했는데, 이것이 훗날 생제르맹데프레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되었다. 576년 그가 사망했을 때 처음에는 원시 바실리카의 현관 아래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1971년에서 1973년 사이 '뷔외 파리 위원회'(Commission du Vieux Paris)가 실시한 발굴 조사를 통해 현재 경당의 북동쪽 모서리에 해당하는 남서쪽 모서리 유적을 확인했다. 이 성스러운 유해의 보호 아래, 다고베르트 왕이 생드니를 왕실 묘지로 삼기 전까지 메로빙거 왕조의 왕과 왕비들도 이 바실리카에 안치되었다. 756년 성 제르맹의 유해는 바실리카 내부로 옮겨졌으나, 그의 첫 묘소가 있던 자리에 대한 기억은 성 심포리앙 경당을 통해 이어졌다. 경당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1619년: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Saint-François de Sales)가 성 심포리앙을 기리는 새 제단을 봉헌했다.
1792년 9월: 약 50명의 죄수(대부분 신부)들이 수도원 감옥에서 학살당하기 전 이곳에 갇혀 있었다.
최근의 복원과 발굴을 통해 11세기의 종려나무 잎 장식 주두와 기둥을 드러냈으며, 13세기 전반의 프레스코화 파편도 발견되었다. 현재의 내부 시설과 전례 가구들은 피에르 부라글리오(Pierre Buraglio)를 중심으로 한 팀의 작업 결과물이다.
생제르맹의 무덤이 원래 있던 자리를 표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석판
교회 옆에 바로 붙어있는 펠릭스 데뤼엘 광장에는 베르나르 팔리시 동상과 세브레 문이 있다.
16세기 프랑스의 도예가 팔리시를 기리는 동상이다.
1900년 만국 박람회가 끝나고 이곳으로 옮겨진 도자기 벽화다.
세브르 도자기를 홍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광고판이었다.
『백과전서』(Encyclopédie)를 만든 사람이다.
생 제르맹 대로를 따라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의 맞은편 끝에 위치하고 있다.
그냥 이 동네 출신이어서 공교롭게도 이곳에 동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