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é de la musique 02 / 에펠탑 02

공연 / 도시 공간

by 돈 없는 음대생

장소: Cité de la musique de Paris

일정: [Ensemble Intercontemporain] Hèctor Parra - Orgia 최종 리허설 관람

가격: 0€

방문일자: 2025년 11월 21일


장소: Tour Eiffel

일정: 에펠탑 구경

가격: 0€

방문일자: 2025년 11월 13일



Cité de la musique de Paris


Ensemble Intercontemporain의 연주 전 최종 리허설을 구경하러 갔다.

연주는 2개가 있었는데 뭐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서 일이 꼬여버렸다.


첫 번째 연주는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의 Sequenza들의 연주였는데, 사실 이걸 보고 싶었다.

그런데 공개된 리허설은 두 번째 연주인 엑토르 파라의 Orgia였다.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당연히 오페라 따위는 관심이 없었고, 작곡가도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왔으니까 보고 가기로 했다.


홀에는 위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좌석을 다 뜯어냈고, 그냥 넓은 공간만 있었다.

그래도 나름 어딘가 구석에 뜯어낼 수 없는 좌석에 가서 쭈구리고 앉아있었는데, 공연 자체가 그냥 서서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공연이란다.

자기들도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면서, 반강제로 서서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게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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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치고는 상당히 짧은 80분이었다.

뭔지도 모르고 갔으니 내용도 몰랐다.


나중에 끝나고 베리오 Sequenza의 최종 리허설이 있다고 했는데, 3시간을 아무것도 없이 나가지도 못하고 갇혀서 기다리기가 싫어서 그냥 나왔다.

잠깐 학교에 들렀을 때 친구를 만나서 방금 최종 리허설을 보고 왔다고 하니까, 어땠냐고 물어본다.

나름 괜찮았고, 짧고, 베리오는 못 봐서 아쉬웠다고 했더니, 자기는 다음날 공연 티켓이 있는데 내용이 좀 걱정되어서 물어봤다고 한다.

그때는 무슨 얘기인지 몰랐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EIC & Friends' 시리즈에는 보통 연주자나 작곡가를 초청하는데, 이번에는 연출가인 칼릭스토 비에이토(Calixto Bieito)를 초대했다.

그래서 첫 번째 연주는 베리오의 Sequenza들을 다양한 연출을 통해 보여주는 짧은 공연이고, 두 번째 연주가 이 오페라다.

즉, 연출가가 중점인 연주들이었다.


이 오페라는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의 1966년 비극을 바탕으로 하며, 1960년대 이탈리아 사회의 은유로서 부부간의 지배 관계를 다룬 지독한 드라마다.


파라는 Orgia를 통해 서정적인 음악적 시를 구현하고자 했다. 파졸리니의 언어는 소리 안에서 결정화되어 작곡 과정의 본질을 이룬다. 이는 시와 음악이 나누는 대화이며, 파졸리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실의 행위만큼이나 고결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표현적 행위로 나아간다.


작품 속 남성 주인공은 자신의 비극을 고발하기 위해 여성의 옷을 입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자신의 동성애를 자각한다. 이 자살은 기성 규범을 벗어난 이들을 향한 사회적 불관용과 위선, 잔혹한 멸시를 규탄하는 하나의 고발장이다. 그는 죽음을 통해 주류 사회가 만들어낸 차별의 간극을 드러낸다.


파졸리니는 숭고한 시적 구절을 빌려 파시즘의 지속성을 경고한다. 현대 사회의 소비지상주의 문화가 어떻게 인류애의 흔적을 말살하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1975)보다 10년 앞서 쓰인 이 희곡은 사랑과 성을 타인을 파괴하는 가학적 도구로 설정한다. 침실은 불안과 후회가 뒤섞여 이성과 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폐쇄된 공간이 된다. 여주인공은 내면의 변화를 감지한 후 자신을 억죄던 소비지상주의적 획일성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두 아이를 살해하며 신화 속 메데아(Médée)의 비극을 재현한다.


Orgia를 논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파졸리니라는 인물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그는 자유지상주의적 기질을 지닌 동시에 가톨릭의 가치를 깊이 존중했으며, 강렬한 내면적 탐구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삶을 통과했다. 동성애를 이유로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제명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좌파 진영의 상징적 인물로 추앙받았고, 파시스트의 박해와 우파 진영의 옹호를 동시에 받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어쩌면 진정한 자유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어떠한 교조적 충성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과 내면의 모순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삶 말이다. 이러한 복잡성이 대중 앞에 노출될 때 세상은 그를 규정하기 위해 수많은 수식어를 덧붙인다. 그 말들은 제각기 진실의 일부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본질과는 어긋나 있다. 하지만 정작 파졸리니 자신은 그러한 외부의 시선과 평가에 개의치 않았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1966년 로마의 어느 봄날 저녁,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는 식사 도중 쓰러졌다. 진단 결과는 위궤양이었다. 한 달간 강제로 휴식하게 된 그는 병상에서 플라톤(Platon)의 『대화편』(Dialogues)을 다시 읽으며 집필에 몰두했다.


그렇게 여섯 편의 연극 작품이 탄생했다. 《오르기아》(Orgia), 《양식의 야수》(Bestia da stile), 《필라데》(Pilade), 《아파불라치오네》(Affabulazione), 《돼지우리》(Porcile), 그리고 《칼데론》(Calderón)이다. 산문에 가까운 문체와 독백 중심의 구성을 취한 이 작품들은 서로 상이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몇 가지 핵심적인 가치를 공유한다. 육체적·도덕적 고통을 관통하는 고도의 시적 언어, 그리고 고대 비극과의 강력한 유대감이 그것이다. 특히 파졸리니가 세 번이나 수정한 《오르기아》(Orgia)는 이 연작의 시작점이자 그의 예술적 지향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파졸리니의 연극적 사유에는 존재의 신성함을 묻는 질문이 깊이 자리한다. 그는 자신의 선언서에서 연극의 신성함이란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형태의 부활을 통해 실현되는 '화해의 제의'라고 정의했다. 거리와 집, 공공장소 등 우리 눈앞에서 매일 펼쳐지는 일상의 구경거리가 곧 연극이다.


파졸리니는 이러한 것들을 도구 삼아 현대 사회를 해부한다. 특히 소비 사회라는 가면 뒤에 숨은 파시즘이 인간성의 흔적을 어떻게 지워나가는지 은유적으로 분석했다. 플라톤(Platon)의 철학을 비롯해 에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에로스와 문명』(Eros and Civilization),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의 『자살론』(Le Suicide) 등에서 얻은 지적 영감은 《오르기아》(Orgia)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1968년 가을 토리노에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파졸리니가 생전에 직접 연출한 유일한 희곡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파라는 이미 2017년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현대 앙상블을 위한 《오르기아–조소 섞인 가벼운 숨결》(Orgia–irrisorio alito d’aria)을 통해 과거의 걸작을 재해석하는 파졸리니 식의 문법을 선보였으며, 2020년에는 현악 사중주 《내 두개골 벽에 부딪히는 천사들의 작은 협주곡》(Un concertino di angeli contro le pareti del mio cranio)을 발표했다. 2015년 연출가 비에이토와 시작한 협업은 이 텍스트를 오페라로 각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파졸리니가 주창한 '말의 연극'(théâtre de la parole)은 서로 상충하는 가창 방식들이 공존하며 목소리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최적의 토대였다.


작업에 앞서 파라는 파졸리니의 상속인 그라치엘라 키아르코시(Graziella Chiarcossi)로부터 중요한 지침을 받았다. 단어 하나, 쉼표 하나도 바꾸지 말되 오페라 전개에 필요한 삭제만은 허용한다는 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비에이토는 원작의 구조를 엄격히 준수하면서도 극의 핵심만을 추출하여 정수화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동시에 파라는 언어가 신체의 생리적 구조를 관통하여 본연의 표현력을 회복하도록 하는 데 몰두했다. 고대 비극과 신화를 통해 현대 사회에 질문을 던졌던 파졸리니의 열정을 이어받아, 파라는 로마 빌라 메디치 체류 기간 중 수많은 헬레니즘 토르소를 핏빛 잉크로 그리는 작업에 전념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신화적 원형을 소환한다. 여자는 메데아(Médée)로, 남자는 사투르누스(Saturne)로 무대 위에 투영된다.


파라는 기악 편성 내에 아키루트(archiluth)를 포함시키고, 페리(Jacopo Peri)의 《에우리디체》(Euridice)와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의 《오르페오》(L'Orfeo)의 핵심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오페라의 기원으로 회귀한다.


짧고 강렬한 색채를 지닌 서막은 이미 죽은 남자의 목소리로 전개된다. 이것이 회상인지, 꿈인지, 혹은 반의식 상태의 방황인지는 알 수 없다. 극의 목적은 사건의 실마리를 되짚는 데 있으며, 남자는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자각한 후 여장을 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파졸리니는 서사를 완결하기 위해 전체를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전반부의 네 에피소드는 두 아들을 둔 삼십대 부부의 침실을 배경으로 한다. 고독 속에 갇혀 상징적으로 대립하는 이들은 과거의 향수에 침잠한 채 사도마조히즘적인 관계로만 연결되어 있다. 《오르기아》(Orgia)의 핵심은 파졸리니의 마지막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Salò ou les 120 Journées de Sodome, 1975)을 예견하는 가학적 제의에 있다. 이 제의는 회상과 몽상을 오가며 여전히 가면을 쓴 채 존재하는 파시즘이라는 악의 뿌리를 파헤친다.


에피소드 IV는 오페라의 절정으로, 부부가 영아 살해라는 금기를 마주하는 지점이다. 여자는 메데아(Médée)처럼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6번》에서 영감을 얻은 사라반드 선율에 맞춰 비극을 준비한다. 이어지는 에피소드 V에서 남자는 새로 등장한 젊은 여자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젊은 여자가 광기에서 탈출한 후, 마지막 에피소드 VI에서 남자는 홀로 자신을 마주하며 기쁨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운명을 완수한다.


에펠탑


특별하게 할 일이 없어 집에서 뒹굴고 있던 와중에, 에펠탑에 프랑스 국기 색으로 불이 들어올 거라는 정보를 어디서 또 봤다.

그래서 시간을 맞춰서 나갔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지만, 파리 테러 10주년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여러가지 행사가 파리 곳곳에서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건 전혀 몰랐다.

이 내용조차도 집에 오면서 광고판을 보고 알게 되었다.


프랑스 국기 색의 에펠탑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때 보고는 처음이다.

그때는 골이 들어갈 때에 맞춰 반짝거렸는데, 이번에는 그냥 평상시처럼 매시 정각에만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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