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음대생의 31일간의 여행기 (1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일하는 김에 놀러 다니기

by 돈 없는 음대생

일정 요약


7월 26일

파리 (Paris) - 잘츠부르크 (Salzburg)

교통: 기차 Deutsche Bahn + Monatsticket Region Salzburg+Nord

숙소: A&O Hostel 이였으나 St. Virgil


7월 27일

잘츠부르크 (Salzburg)

교통: Monatsticket Region Salzburg+Nord

숙소: St. Virgil

일정: 리허설


7월 28일

잘츠부르크 (Salzburg)

교통: Monatsticket Region Salzburg+Nord

숙소: St. Virgil

일정: 디자이너 아웃렛 / 리허설



1일 차 (7월 26일)


파리에서 만하임으로


2025년 7월 26일 아침 7시 18분. 파리 동역(Paris Est)에서 만하임 중앙역 행 기차에 올랐다.

솔직히 난 TGV보다 ICE를 선호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TGV는 2층이라 짐 들고 다니기가 너무 귀찮다. 좁은 통로, 불편한 계단. ICE가 훨씬 낫다.


프랑스는 좌석 지정이 의무라서 Deutsche Bahn에서 티켓을 사면 자동으로 좌석이 배정된다. 그리고 항상 역방향, 맨 끝 객차. 하지만 싸니까 감수한다.


기차는 2시간쯤 달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고, 독일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경찰이 올라탔다. 여권 검사 때문에 열차가 지연되었고, 한 번 늦기 시작한 기차는 계속 늦어져 결국 만하임에서 갈아 탈 기차까지 놓치게 만들었다. 당연하다. 여기는 독일이다.


이럴 땐 차라리 아예 크게 늦는 게 낫다. 독일 철도는 120분 이상 지연되면 요금의 절반을 환불해 주기 때문이다. 오늘 표 값은 80유로, 2시간이면 40유로다. 잘츠부르크 도미토리 숙소 하루 값과 맞먹는 돈.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제발 2시간만 넘겨라” 하고 빌고 있었다. 어차피 9시간이나 11시간이나 피곤하고 힘든 건 마찬가지니까.



만하임에서 잘츠부르크로


만하임에서 뮌헨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탔는데, 문제는 캐리어였다. 바퀴가 갈려버려 굴러가지 않았다. 결국 들고 다녀야 했다.

가다 보니 배도 고팠다. 독일 맥도날드 앱을 켜보니 무료 크루아상 쿠폰이 떠 있었다.

캐리어에 대한 보상인가 했는데, 뮌헨역 공사 때문에 매장이 임시로 이사 갔다. 맥도날드조차 날 버렸다.


시간도 없고 해서 결국 다음 기차를 탔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좌석 예약은 당연히 사치. 예약 안 된 좌석은 없고, 보이는 빈자리부터 앉아버렸다. ‘BahnBonus’ 좌석이라는 글씨가 있었지만 뭐 어쩌라고. 누가 와서 비키라면 비켜주지 뭐.


우여곡절 끝에 오후 4시, 드디어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30분 늦은 시각.

문제는 마트였다. 오스트리아는 토요일 마트가 저녁 6시면 닫고, 일요일엔 아예 문을 닫는다. 지금 달려가지 않으면 이틀 동안 외식해야 한다. 잘츠부르크 물가는 비엔나보다도 비싸다. 맥도날드 가격도 20센트나 더 높다.



악몽의 잘츠부르크 중앙역


나랑 악연이 깊은 잘츠부르크 중앙역.

작년 여름, 스위스 바젤에서 비엔나로 돌아오는 길에 기차가 늦어져서,

6도의 날씨에 노숙을 해야 했던 곳이다. ÖBB의 사기와, 태풍…

정말 집에 돌아가기까지 엄청난 고생을 했던 곳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그 기차+버스 못 탔으면 최소 3일 동안 집에 못 들어갔다.)


기차에서 내려 티켓을 사러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갑자기 멈췄다.

덕분에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무덤 세울 뻔.

또 이렇게 악연이 생겼다.


그런데 갑자기 캐리어 바퀴가 다시 굴러갔다.

짐가방을 끌고 냅다 뛰어 티켓을 사고 다시 올라가서 기차를 탔다.

Salzburg Parsch에 내려 비바람 속 15분 동안 짐을 끌고 걸어서 호텔에 도착했다.

St. Virgil 호텔
20250726_164949.jpg St. Virgil 호텔 방

31일 여행의 시작


예약해 둔 도미토리는 그냥 포기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체크인 안 하면 도시세(약 3~4유로)를 안내도 된다.

돈 없는 그지 음대생에겐 그 돈도 중요하다.


체크인 후, 곧장 마트 Lidl과 Billa로 달려갔다. 냉장고가 없는 숙소라 살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다. 그나마 호텔 전체에 공용 냉장고가 두 개 있지만, 맥주 15병 정도 넣으면 꽉 차는 크기.

그리고 어딜 가나 공용 = 먼저 먹는 놈 차지다.

방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었다.

여름, 휴가철, 관광지, 잘츠부르크.

돈 없는 그지 음대생은 식당에서 3주 동안 끼니 해결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히 조식은 무료.

결국 스파게티 면, 병에 든 소스, 참치캔 (식용유 대용), 식빵, 인스턴트커피 (비싸고 맛없는 Jacobs)만 챙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주말엔 커피 품목이 25% 세일이었다.


다행히 여행 전 Temu에서 산 13유로짜리 전기냄비 (환불받아서 0유로)를 챙겨 왔다. 파스타는 충분히 끓일 수 있었다. 첫날 저녁, 호텔 테라스에서 파스타를 해 먹었다. 이 냄비가 마지막 날까지만 버티다 망가져서 짐 줄이는 데 기여하길 간절히 바라면서 (실제로 마지막 날 코팅 벗겨져서 버리고 왔다).


아침부터 이동하느라 3시간도 못 자고 나왔더니, 밥 먹고 뻗어버렸다. 초저예산 유럽 여행 첫날은 이렇게 끝났다.

Temu 전기냄비

2일 차 (7월 27일)


첫 리허설


오전에는 늦게까지 잤다.

오후 리허설 준비를 위해 손을 풀고 숙소를 나섰는데, 도대체 누가 숙소를 이런 곳에 잡아준 걸까?

2년 전에는 중앙역 바로 앞, 에어컨 나오는 4성급 호텔이었는데…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오는데 늦고, 리허설 장소 입구를 찾느라 5분 넘게 헤맸다. 잘츠부르크 시내는 건물을 통과하는 작은 길들이 많아 구글지도만 믿고 가면 낭패다.

결국 예정 도착 시간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20분 남기고 겨우 입장했다.


환경오염이고 어쩌고 해서 페스티벌 기간에는 모든 장소에 찬물, 뜨거운 물, 탄산수가 나오는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종이컵이고 뭐고 없으니 주는 텀블러 들고 다니면서 물 마시라는 거다.

텀블러와 본인식별카드를 주고 사인을 하는데 내가 마지막 사람이라고 굳이 잘 들리게 말해준다.


도착해서 예전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인사하고 리허설도 하고

1시간 반 쉬는 시간, 다들 밥 먹으러 가는데 나는 4시간만 참았다가 호텔 가서 파스타 먹으며 쉬겠다고 마음먹었다.

지휘자가 프랑스 사람 아니랄까 봐, 역시나 1시간 반 일찍 종료. 프랑스 사람들은 맨날 먹고 쉬고 마실 생각밖에 없다던 카라얀 말이 맞더라 ('리처드 오스본 - 카라얀 평전' 어디선가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호텔로 튀어가서 저녁 먹고 쉬다가 눈떠보니 다음날이었다.

악보, 카드, 텀블러
20250728_165126.jpg 정수기 (Bottle Free Zone이지만 Bottle이 필요하다)

3일 차 (7월 28일)


망할 날씨


잘츠부르크에 도착할 때만 해도 화창하고 더운 날씨를 걱정했는데, 호텔방에는 에어컨도 없다.

이미 잘츠부르크에 도착해서부터 신나게 비를 맞고 다녔고, 일기예보를 보니 8월 11일까지 계속 비가 온단다. 8월 11일까지 놀 수 있는데...


1일 차 아침 6시, 파리에서 이미 짐을 끌고 나오면서 땀으로 샤워를 했다.

짐이 꽉 차서 마지막 순간까지 걸칠 거 뭐라도 하나 챙길까 고민했는데, 잘츠부르크 날씨는 10도. 거기다 비만 온다.

버스 타러 가는 5분 동안 이미 신발 안에서 물이 찰랑거린다.

6시간 동안 리허설하고 호텔로 돌아와서 신발에는 휴지를 말아 넣고 드라이기로 말린다. 다음날이 되어도 완전히 마르지 않는다. 햇볕도 없으니 자연건조는 불가능하다.

훈련소에서 비 오는 날 행군 때 전투화에 물이 찬 이후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기분이 아주 별로다.


하필 가져온 우산은 초미니. 새로운 우산을 사자니 사치다. DM에서 5유로짜리 일반 우산을 사도, 바람 몇 번 세게 불면 뒤집히고 망가진다. 장우산은 10유로나 하고…

그래서 며칠 동안 길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가끔 버려진 멀쩡한 우산이 없는지 찾아다녔다.



디자이너 아웃렛


오전에 시간이 있어서 잘츠부르크 공항 근처 디자이너 아웃렛에 들렀다.

마침 여름 세일 기간이어서 기대했지만, 규모도 작고 품목도 별로였다.

세일을 해도 가격은 여전히 비싸고, 브랜드는 역시 사치다.

결국 시내에서 천 쪼가리나 사야겠다며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20250728_114731.jpg McArthurGlen Designer Outlet Salzburg

Felsenreitschule


오늘부터 (구) 암벽승마학교 Felsenreitschule에서 리허설이 시작된다.

이번에 하는 곡은 Peter Eötvös세 자매

안톤 체호프 작품을 바탕으로, 일어난 사건을 세 자매 각각의 시선에서 재구성한 오페라다.

일본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등장인물은 모두 남자, 즉 세 자매는 카운터테너들이 부른다.

각 등장인물을 형상화한 악기들이 있는 솔리스트 앙상블은 무대 밑 피트에서 연주하고, 왼쪽, 오른쪽 오케스트라로 나뉘어 스테레오 사운드 구현하는 오케스트라는 무대 밖에서 연주한다.

지휘자도 2명, 카메라, 모니터, 마이크, 스피커로 소통한다.

리허설의 목적은 밸런스와 딜레이 문제를 맞히는 것이다.


Felsenreitschule는 원래 암벽 승마장이었기 때문에 무대 밖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를 조명 위로 올리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4층, 무대는 0층, 피트는 지하 1층.

무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전혀 보이지 않고 모든 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들린다.


Felsenreitschule 꼭대기에는 야외테라스가 있다.

기자들을 위한 야외테라스 이긴 한데, 열려있으면 들어가는 거지 뭐.


리허설이 끝난 후 역시나 호텔에서 파스타를 해 먹고 잤다.

20250728_203657.jpg Felsenreitschule 옥상 야외테라스에서 바라본 프란치스카너교회, 잘츠부르크 대성당, 성 페터 성당, 호엔 잘츠부르크 성
20250728_173843.jpg Felsenreitschule 야외테라스에서 바라본 프란치스카너교회와 잘츠부르크 대성당

여행 꿀팁


1. Deutsche Bahn 지연 보상 / 환불


티켓을 Deutsche Bahn에서 한 번에 구매했다면, 기차가 60분 이상 지연될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도착 지연 시간별 보상 기준:

60~119분 지연 → 티켓값의 25%

120분 이상 지연 → 티켓값의 50%

어플을 통해 스크린샷이나 기록을 남겨두고 신청하면 여행 경비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단, 보상금액 4유로 미만 (티켓값 16유로 미만)인 경우는 환불이 안 된다. 싸게 산 거로 만족하자.


2. DB 기차 좌석 예약


Bahnbonus 관련 좌석이 보이면 일단 앉고, 누가 나오라고 하면 비켜주자.

Bahnbonus 등급이 Gold나 Silver인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지만 대부분 모른다,


3. 잘츠부르크 대중교통 티켓


주 단위 티켓: 22유로, 월요일 0시~일요일 23:59 사용 가능, 무조건 시작일은 월요일

하루 2회 이상 이용 → 하루권이 유리

주 3일 이상 이용 → 주 단위 티켓이 유리

2주 이상 이용 → 한 달 티켓이 유리 (68유로, Region 선택 가능) (myRegio Monatskarte)

Region 두 개 묶어서 선택 가능 → 91유로, 개별 Region 두 개 사는 것보다 저렴

예: 볼프강 호수 가려면 Region Salzburg + Region Nord 필요 → 91유로짜리 한 장이 더 경제적


4. 오스트리아 마트 선택


Lidl → 가까우면 우선적 선택

Spar → 이거밖에 없을 때

Eurospar → 나름 괜찮음

Interspar → 구경할 만함, 가격은 비싼 편

Billa/Billa Plus → 개인적으로 제일 추천. Plus는 고급제품 많음

Hofer → 내가 찾는 물건 잘 없음, 매장 관리 엉망. 찾는 물건이 있을 때는 유용


5. 숙소 도시세 / 관광세 (City Tax)


도시세는 도시마다 금액과 기준이 다름

온라인 사이트로 예약한 경우:

미리 결제 → 도시세는 현금으로 체크인 시 결제

현지 결제 → 도시세 포함해서 현장에서 카드/현금 결제

불가피하게 못 가게 되면, 미리 결제한 경우 체크인을 안 하면 도시세는 안내도 된다


6. Temu 환불


Temu 정책은 국가별로 다름

프랑스 → 20유로 이상 무료배송

대략 10유로 이하 상품은 물건 돌려보내지 않아도 환불 혹은 부분환불

프랑스 < 독일 < 오스트리아 순으로 가격이 비싸짐

잘츠부르크에서 주문 시, 독일 Temu → Freilassing 픽업 스테이션을 이용하자.

Freilassing은 독일 도시지만, Salzburg 시내 교통관할에 포함되어 잘츠부르크 티켓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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