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음대생의 31일간의 여행기 (4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일하는 김에 놀러 다니기

by 돈 없는 음대생

일정 요약


8월 4일

잘츠부르크 (Salzburg)

교통: Monatsticket Region Salzburg+Nord

숙소: St. Virgil

일정: 리허설 / 갤러리


8월 5일

잘츠부르크 (Salzburg) + 할라인 (Hallein)

교통: Monatsticket Region Salzburg+Nord (+Region Tennengau)

숙소: St. Virgil

일정: 할라인 / 최종 리허설



10일 차 (8월 4일)


잘츠부르크 갤러리 탐방


오늘 리허설은 오후 2시부터라서 조식도 포기하고 늦잠을 자고 쉬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엔 반나절이 아까워서, 12시쯤 일찍 밖으로 나왔다.


리허설이 있는 날에는 다른 도시로 나가기가 부담된다. 혹시라도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하면 큰일이니까 (실제로 버스, 기차는 맨날 늦는다).

그래서 오늘도 잘츠부르크 시내 위주로 다니기로 했다.


그동안 잘츠부르크를 왔다 갔다 하면서 큼지막한 것들은 이미 돌아봤기 때문에

이번엔 자잘한 곳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진짜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 근처에 있는 크리스티안 도플러 (Christian Doppler)의 생가를 지나갔다. 살면서 한 번쯤은 주워 들었던 도플러 효과의 그 도플러다.


진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Getreidegasse를 지나간다. Getreidegasse가 시작되는 곳에 바로크 작곡가 하인리히 이그나츠 비버 (Heinrich Ignaz Biber)가 살다 죽은 집이 있다.

20250804_114516.jpg
20250804_114606.jpg Christian Doppler의 생가
20250804_115735.jpg
20250804_115752.jpg Heinrich Ignaz Biber가 살던 집

시립갤러리는 총 5개 지점이 있는데 우선은 비버의 집 건너편에 있는 시청 지점으로 갔다. 하필이면 내가 잘츠부르크에 오기 전에 전시가 끝나 있었다. 새로운 전시를 준비 중이라 이번에는 아마 못 볼 것 같다.


전날 대성당을 나오며 레지던트광장에서 본 초대형 설치미술 작품이 생각나서, 오늘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김에 모차르트광장에 들러 모차르트 동상에 인사를 했다 (잘츠부르크에 오면 늘 하는 일종의 연례행사 중 하나다). 그리고는 시립갤러리 모차르트광장 지을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시립'갤러리 주제에 입구부터 찾기 어려웠다. 안내판도 없다. 결국 주소에 쓰여있는 관청 건물 안으로 들어서 그냥 위로 올라갔는데, 복도에서 갑자기 전시가 시작됐다. 워낙 작아서 다 둘러보는 데 채 5분도 안 걸렸다.

20250804_120708.jpg 모차르트광장의 모차르트 동상 - 이 옆에서 바흐를 연주하는 녀석들이 거슬린다
20250804_121434.jpg Stadtgalerie Mozartplatz에서 열린 Florian Koneczny의 사진 전시

크리스마스, 게오르그 트라클


모차르트광장과 레지던트광장 사이에는 크리스마스 박물관이 있다.

잘츠부르크 주에는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규모는 정말 개미 코딱지 수준이지만, 자기들 나름의 박물관을 만들고 장사를 한다.


크리스마스 박물관은 예전에, 2019년에 이미 다녀왔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려던 찰나, 건물에 붙어 있던 명패가 눈에 띄었다. 오스트리아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 (Georg Trakl)이 살았던 집이라는 표지였다.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름은 익숙했다.

잘츠부르크 출신으로는 나름 유명한 인물이다.

근처에는 트라클 생가도 있다.


그 옆 건물에는 나치 시절, 이곳에서 금지 서적을 불태웠다는 내용의 명패가 붙어있다. 일종의 기억이자 경고의 흔적이다.

그 옆 건물은 성 미카엘 교회 (St. Michael)다. 비를 피하려고 들어갔는데 마침 미사가 진행 중이었고,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끝나 버렸다. 덕분에 교회를 빠르게 둘러볼 수 있었다.

20250804_122033.jpg 크리스마스 박물관
20250804_123547.jpg
20250804_123218.jpg
20250804_123141.jpg 성 미카엘 교회

잘츠부르크 카페


이제 진짜 레지던트광장으로 가서 Jaume Plensa의 작품을 보고, Konditorei Fürst와 Manner를 구경했다. 오랜만에 마너에 들어가 보니 오렌지, 라즈베리, 복숭아 맛이 새로 나와 있었다 (알고 보니 매년 여름 한정판). 특별히 끌리지는 않아 그냥 나왔고, 퓌르스트에서는 모차르트쿠겔의 가격만 확인하고 나왔다.


건너편 카페 토마셀리의 초록색과 흰색 줄무늬를 보면 민희진이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2024년에 이곳을 왔을 때 민희진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퓌르스트와 토마셀리는 올 때마다 들르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간장물 혹은 설탕물 한 잔에 10유로는 납득이 안된다. 퓌르스트에서는 선물용 모차르트쿠겔을 사러 가야 하니, 떠나기 전날 다시 들리기로 하고 나왔다.

20250803_113738.jpg Jaume Plensa의 설치미술 작품
20250804_124427.jpg Fürst의 모차르트쿠겔
20250804_124045.jpg Manner의 여름 한정판 제품
20250806_155947.jpg Cafe Tomaselli의 트레이드마크: 초록색, 흰색 줄무늬

콜레기엔 교회 (Kollegienkirche)


2023년 페스티벌 때는 이곳에서 연주했었는데, 제단이 무대로 완전히 가려져서 아무것도 못 봤었다.

이번에는 문이 열려 있어 구경 가능했는데, 그 큰 교회에 의자가 하나도 없는 게 인상적이었다.


음향이 좋은 교회라 페스티벌 오프닝 주에 소규모 연주들을 자주 한다.

이번 오페라의 리허설 전날에도 Klangforum이 이곳에서 연주를 했다.


콜레기엔 교회 뒤편에 Felsenreitschule가 있다.

20250804_125607.jpg
20250804_125056.jpg
20250804_124854.jpg
Kollegienkirche

사운드 체크와 리허설


오후 2시에 사운드 체크가 있었다. 우리가 리허설을 하지 않는 날에는 다른 팀들이 무대를 사용하기 때문에, 음향 장비의 위치가 바뀐다. 그래서 매번 위와 아래, 서로의 밸런스를 다시 맞출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별히 리허설 느낌은 나지 않는다.


이어진 4시 리허설은 언론 배포용이었다. 우리는 4층에 있어서 보이지도 않는데, 무대 쪽은 사진도 찍고 짧은 영상도 찍는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서 오늘 리허설은 평소보다 더 길다.

똑같은 걸 반복하는데도 매번 밸런스가 다르다는 게 신기하다. 그래서 사운드 체크가 필수인가 보다.


8시에 리허설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왔다. 감기 기운 때문인지 입맛이 없어서, 저녁은 또 식빵으로 때우고 잠들었다.



11일 차 (8월 5일)


할라인 (Hallein)


오늘은 최종 리허설 날이다.

공개 리허설이라 실제 연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쭉 하고 끝난다.

그래서 시작 시간이 또 애매하게 오후 2시.

오전을 버리자니 아깝고, 끝나고 나면 오후 5시라 뭘 하기에는 애매하다.

고민하다가, 잘츠부르크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할라인으로 갔다.


할라인은 소금광산, 켈트 박물관, 그리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켈트 박물관은 영국이나 스코틀랜드도 아닌데, 뭐가 있어봤자 돌멩이 몇 개만 있겠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입장료만 비싸고 안에 볼 건 없는 치사빤스 오스트리아 박물관들. 내가 한두 번 속지 또 속냐).


소금광산은 할슈타트에서도 안 갔는데, 동굴에 들어가 걷기만 하는 걸 투어랍시고 보여주는 거라 굳이 갈 이유가 없었다. 소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소금 = NaCl, 이거만 알면 충분하다.


남은 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박물관. 이름부터가 사기의 향기가 짙게 난다. 결국 시내를 대충 걸어 다니기면서 구경하기로 했다.


할라인은 또 하필 Region Tennengau에 속한다.

160번이나 170번 버스를 타면 기차보다 10분 정도 더 걸린다. 게다가 버스는 탈 때마다 기사들이 티켓 가지고 시비를 건다. 그래서 그냥 기차를 탔다.

기차는 Freilassing에서 출발해서 오는 기차라서 잘츠부르크가 사실상 출발지점이다.

기차도 짧아서, 맨 앞에서 타서 맨 뒤까지 걸어가면서 검표원이 있는지를 눈으로 한 번 스캔하고, 없길래 그냥 타고 갔다.


할라인 기차역에서 강 쪽으로 걸어가니 여기도 Salzach 강이 흐른다 (당연한 얘기).

강변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광고가 도배되어 있었다.

잠깐 강을 구경하고 (뭐 맨날 똑같은 물인데) 시내 쪽으로 갔더니 교회가 하나 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오르간에 ‘Gruber Orgel’이라고 적혀 있었다.

설명문이 길어서 대충 읽고 나왔다.

20250805_105758.jpg Hallein에 흐르는 Salzach
20250805_095923.jpg
20250805_100036.jpg
20250805_100805.jpg
Hallein의 St. Antonius 교회
20250805_100030.jpg
20250805_100654.jpg Gruber Orgel
20250805_100501.jpg 양 옆으로 문이 달려있는 교회 의자 - 의자마다 후원자 가문/이름이 의자에 박혀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박물관 (Stille Nacht Museum Hallein)


교회 맞은편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박물관이 있었고, 그 앞에 무덤 하나가 있었다. 주인은 Franz Xaver Gruber. 이 사람이 맞은편 교회 오르가니스트이자 오르간 제작자였다. 그리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작곡한 사람이었다.


박물관이 얼마나 값어치를 하는지 염탐하러 들어갔다.

오랜만에 이런 곳도 돈 내고 보러 오는 호구가 왔는데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매표소 아줌마가 엄청 열정적이었다.

성인 티켓을 끊어주길래 학생 티켓을 달라고 했다 (오스트리아는 학생할인은 만 26세까지). 일부러 파리 학생증과 유효기간 지난 비엔나 학생증, 이렇게 두 개를 챙겨갔다. 전자는 언어장벽으로 확인이 어렵게 하기 위해서, 후자는 자국 학생증만 인정해 줄 경우를 대비해서 챙겨갔다.

아줌마가 어디서 왔냐 묻길래, 비엔나 음대생이고 페스티벌 참가 차 왔다가 알게 돼서 왔다, 곧 리허설이라 시간이 없는데 흥미로운 박물관 같다고 약을 팔았더니 감동했는지 확인도 안 하고 학생 티켓으로 다시 끊어줬다.


안에는 요제프 몬 (Joseph Mohn)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작곡하고 연주할 때 썼던 기타, Gruber의 생활용품, 저작권 서류 정도가 있다.

벽에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관련 마을이 이 주변에만 스무 개가 넘는다고 붙어 있었다.

별것도 아닌걸 이런 식으로 쪼개서 사람들 주머니의 돈을 갈취하는구나 싶었다.

3.50유로면 큰 손해는 아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6.50유로는 사기다.


시간 남아서 시내 반대편을 구경하다가 기차를 탔다.

탔더니 검표원이 있었다. 그냥 못 본 척 반대편 끝으로 갔다.

기차가 짧아서 검표 방식도 단순했다.

네 정거장쯤 지났을 때 검표원이 왔는데, 가지고 있는 티켓의 유효 구간에 들어와서 당당하게 보여주고 타고 왔다.

20250805_101045.jpg
20250805_101110.jpg
Franz Xaver Gruber의 묘
20250805_101604.jpg 여러 군데에 있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흔적들
20250805_102136.jpg 작사가 Mohr의 기타 - Gruber의 손자의 친구들이 손자의 생일선물로 사다 준 기타를 손자가 Hallein 박물관에 기증했다.
20250805_102327.jpg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두 번째 자필악보
20250805_102751.jpg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자신의 곡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저작권 서류

최종 리허설


호텔에 돌아와서 최종 리허설 갈 준비를 했다.

공개 리허설이라 연주복을 입으란다.

안 보이는데 굳이 싶었는데, 페스티벌 측이 신박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4층에서 연주가 끝나면 성악가들이 무대에서 인사하는 동안, 우리는 악기를 들고 계단을 내려와 무대에 올라가 인사를 해야 했다. 귀찮았지만 공식 사진이 남는 기회라 최대한 잘 보이는 자리에 섰다. 근데 다들 앞으로 두세 줄로 서버려서 결국 공식 사진엔 난 보이지도 않았다 (연습이나 다들 좀 열심히 하지).



또 갤러리


끝나고 나오다가 며칠 전 우연히 본 기사에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기간 중 가볼 만한 갤러리'로 추천한 갤러리 하나가 근처에 있길래 들렀다. 유럽 놈들 기사답게 이름도 위치도 제대로 안 나와 있었는데, 다행히 찾았다.

작은 규모인데도 사진 촬영 금지에 전시 수준은 엉망이었고, 작가 이름에 오타까지 있었다.

그래도 Joseph Beuys의 Intuition (빈 나무 상자에 연필로 Intuition - 직관, 직감 이라고만 적어놓고 판매)이나 Erwin Wurm 작품은 (이름은 모르지만 Mutter 시리즈 중 하나 같다) 마음에 들었다.



Temu 냄비의 위력


'아프면 잘 먹어야지'라는 핑계로, 할라인 왕복 티켓값을 삼겹살에 투자했다.

Temu 냄비의 한계 시험도 할 겸.

근데 문제는 소금.

조식 때 좀 가져왔어야 했는데 없어서 결국 Spar에 갔다.

인터넷에 39센트짜리 소금을 Spar에서 판다고 해서 갔는데, Spar가 그냥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라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60센트짜리 500g짜리를 샀다. 딱 한 번 쓸건대...

Salzburg Aigen 지역, 특히 가이스베르크 뷰를 보면서 다녀왔다.

Temu 냄비는 못하는 게 없다.

밥도 짓고, 파스타도 끓이고, 소세지도 굽고, 삼겹살도 굽는다.

20250805_174351.jpg 호텔 근처에서 보는 Gaisberg 뷰
20250805_175226.jpg 이게 마트냐 가정집이냐...
20250805_191229.jpg 만능 테무 냄비로 구운 삼겹살

여행 꿀팁


1. 학생할인


일단 학생증은 뭐가 됐던 챙기자.

현재 유효하든 안 하든 국제학생증이든 자국학생증이든.

우선은 티켓 하나 달라고 한다.

가격 알려주면 그제야 학생 티켓을 달라고 한다.

별말 없이 학생 티켓을 주면 땡큐, 학생증 달라고 하면 보여주고,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다.

문제 생기면 나이제한 있는지 몰랐어요 쏘리 하면 된다.

필요한 건 철판과 미소와 쏘리.


2. 잘츠부르크 카페


나는 커피 안 마시면 쓰러져 죽는다 하는 거 아닌 이상 굳이 유명한 카페 갈 필요는 없다.

분위기를 내고 싶으면 뭐 말리지는 않는데, 주문해도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서비스도 안 좋을 확률이 높다.

커피 맛을 중요하면 유명한 곳보다는 주변에 작은 로컬 카페를 추천.

에너자이저가 필요하면 식당에서 밥 먹고 한잔 하거나, 마트에서 간장물 같이 생긴 거 아무거나 사면된다.


3. 모차르트쿠겔 진품


모차르트쿠겔의 오리지널은 Cafe Konditorei Fürst 제품뿐.

현재 개당 2.10유로.

들어가는 내용물은 비슷한데 비율이 좀 다른 잘츠부르크 가게들이 있는데,

Cafe Habakuk, Konditorei Schatz, Confiserie Holzermayr의 모차르트쿠겔 까지는 잘츠부르크 시에서도 밀어주고 있다.

비싸니까 아껴먹자. 그러나 유통기한이 길지는 않으니 숨겨놓고 먹다 유통기한이 지나버리는 안타까운 일은 일어나지 않게 주의하자.

그 외의 슈퍼에서 파는 거나 유사품들은 지나가는 멍멍이 먹이로도 주지 말자.

신기하게도 잘츠부르크 출신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이 오면 꼭 Fürst에서 모차르트쿠겔을 사서 하나씩 나눠준다. 그러면서 굳이 여기서 모차르트쿠겔에 큰돈을 쓰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전 04화돈 없는 음대생의 31일간의 여행기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