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일하는 김에 놀러 다니기
일정 요약
7월 31일
잘츠부르크 (Salzburg)
교통: Monatsticket Region Salzburg+Nord
숙소: St. Virgil
일정: 리허설 / 갤러리
8월 1일
잘츠부르크 (Salzburg)
교통: Monatsticket Region Salzburg+Nord
숙소: St. Virgil
일정: 리허설 / 로레토 교회 / 시립 갤러리
8월 2일
잘츠부르크 (Salzburg)
숙소: St. Virgil
일정: 감기로 침대에서 골골거리기
8월 3일
잘츠부르크 (Salzburg)
교통: Monatsticket Region Salzburg+Nord
숙소: St. Virgil
일정: 잘츠부르크 대성당 + 마리아 플라인 (Maria Plain) + 가이스베르크 산 (Gaisberg)
또 오전 10시부터 리허설이다. 끝나고 나니 오후 1시다.
저녁 리허설은 오후 6시에나 시작이다.
이 애매한 4시간 동안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빨간 건물이 눈에 띄는 Künstlerhaus로 갔다
정확히 뭐 하는 공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술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나누어 주고 가운데 큰 홀에는 전시를 하는 거 같다.
전시는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무료니까 괜찮았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Thaddaeus Ropac으로 향했다.
모차르테움 바로 옆에 있는 갤러리인데, 서울, 런던, 파리 (2개), 잘츠부르크에도 있다.
미라벨정원이랑 붙어있어서 미라벨정원 뷰 포인트 중 하나다.
당연히 모차르테움 Solitär 홀 테라스도 아주 좋은 뷰 포인트다.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Thaddaeus Ropac Salzburg Halle가 새로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는 Erwin Wurm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무턱대고 버스 타고 갔다.
2024년 비엔나 Albertina Modern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가분수 대가리(?)에 가냘픈 다리 두 짝이 시그니처다.
그문덴 (Gmunden - 도자기로 유명한 잘츠캄머굿 도시)과 협업해서 만든 도자기 작품들도 있었다.
그리고 안쪽 방에는 Georg Baselitz의 2025년 신작들이 몇 점 있었다.
2025년 5월 파리 Pinault Collection에서 Baselitz 전시에서 보았던 전시와는 캔버스 사이즈만 비슷하고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무료 주제에 퀄리티가 상당하다.
Felsenreitschule로 가는 길에 있는 Kollegienkirche 왼편에는 모차르트의 누나가 죽을 때까지 살던 집이 있다.
지금은 명패만 남아있는데, 잘츠부르크를 돌아다니다 모차르트가 붙어있는 명패를 발견 못한 사람은 숨은 그림 찾기를 못하는 사람이 틀림없다. 옛날 아저씨들이 보다 버리고 간 신문 구석에 있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던 내 실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
Felsenreitschule 맞은편에는 Anselm Kiefer의 작품인 A.E.I.O.U. 가 있다.
A.E.I.O.U.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훈 같은 거다.
이 사람 작품은 잘 이해는 안 간다. 그래도 유명한 사람이니까 보는 거다.
언젠가는 이해가 되거나, 아니면 어디 가서 봤다고 아는 척 자랑은 할 수 있겠지.
아는 척도 보고 들은 게 있어야 하는 거니까.
페스티벌 첫날에 무대 난입해서 프리 팔레스타인을 외치던 멍청이들 덕분에 보안이 한층 강화되었다. 이제는 무조건 카드를 제시해야 들어갈 수 있다. 목걸이로 걸면 목이 쓸려서 피부가 까지고, 따로 들고 다니자니 카드가 자꾸 가출한다.
공연장 입구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사진을 찍는다.
또 무슨 유명인이 문화생활 하는 척하러 왔겠지.
이 나라는 유명인들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어떤 공연을 보러 왔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슨 차를 타고 왔는지, 그런 걸 찍고 기사로 만든다. 인터뷰도 하고.
꼭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같다.
막상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한테는 티켓도 안 주면서, 정작 관심도 없는 정치인들이나 부르는.
17세기 구시대적인 귀족문화는 21세기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리허설이나 빨리 끝내주지. 시간 딱 맞춰서 끝내주네.
호텔에서 식빵에 누텔라를 발라 먹고, 오랜만에 공부를 해본다.
Pierre Boulez의 Anthèmes 2의 분석 논문을 세 달 전에 구했는데, 정작 Anthèmes 2 연주 때는 시간 없다고 안 보고, Anthèmes 1 연주를 준비하면서 이제야 본다.
논문을 읽고 나니깐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해는 가는데 재미는 없다.
그래도 이제는 재미없는 곡을 이해하면서 할 수 있다.
리허설은 이제 매너리즘에 빠졌다.
메이드 인 프랑스 지휘자들이 왜 시간을 꽉꽉 채우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리허설 사이 공백이 3시간.
말이 3시간이지, 시내까지 갔다 오면 30분, 다시 들어가려면 1시간 전 출발이라서, 실제로는 1시간 남짓이다.
뭐 하지 하다가, 로레토 성당 (Loretokirche)에 들어가 봤다.
구글 지도에서는 오후 3–4시에 연다고 했던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건 고해성사 시간이었다.
문맹도 아닌데 왜 안 읽었지.
성당에 들어갔더니 성무일도 중이었다.
사람들이 다 모여서 중얼중얼.
대충 기다렸다가 구경하려고 했는데, 안 끝난다.
15분 버티다 그냥 나왔다.
대신 미라벨정원 옆에 있는 시립 갤러리 (Stadtgalerie Museumspavillon)를 들렀다.
크게 대단한 건 없어서 휙 보고 나왔다.
호텔은 인터넷이 문제였다.
페스티벌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유튜브만 되고, 나머지 스트리밍은 전부 차단. 여기가 중국이냐 뭐냐.
결국 첫날 갈 뻔했던 애증의 호스텔, A&O Hostel로 향했다.
거긴 와이파이가 무료니까.
소파에 앉아 와이파이나 쓰고, 간식도 좀 먹고, 쉬다가 다시 리허설하러 복귀했다.
약간 하기 싫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헤롱헤롱 한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또 비가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하필 늦게 끝나서 버스 시간도 안 맞는데, 거기다 내려서 15분 걸어야 하는 버스를 타야 했다.
이것이 물 위를 걷는 느낌인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면서도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모순적인 사람으로서, 이제 휴지는 그만 써야겠다.
오늘의 저녁도 역시 식빵과 누텔라.
식빵도 한 봉지 사면 4일 치 나온다.
볼프강 호수에서 아낀 버스 티켓 값으로 바나나 두 개, 하리보 한 봉지도 사줬다.
나름 호화 만찬.
4일 차 몬트제에 갔을 때부터 몸이 심상치 않았다.
파리에서 올 때 기차에 구겨져서 11시간이나 타고 온 데다,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에스컬레이터가 멈추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온몸에 힘을 주다 삐끗했다. 무료 크로와상을 못 먹기도 했고.
캐리어 바퀴는 안 굴러가서 질질 끌고 다니고, 평소에도 누워 뒹굴기 전공인 종합병원 체질인데 비까지 맞으며 싸돌아다녔다.
처음엔 여행 후유증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감기의 전조였다.
몬트제 싸돌아다니고, 산 타고, 볼프강 호수까지 들쑤시고 다녔다.
결국 6일 차 조식 때 목이 아파서 목소리가 잘 안 나오기 시작했고, 리허설 때는 헤롱헤롱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중간에 DM으로 뛰어가서 목캔디까지 사 왔지만, 7일 차 저녁 리허설 때는 아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 와중에 토요일이니까 놀러 가야지 했던 정신 나간 나는 돈 없는 그지 음대생이자 날씨요정이자 종합병원이다.
결국 한여름에 담요까지 꺼내 덜덜 떨며 잠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져서 베르히테스가덴에 가겠다는 꿈을 꾸면서.
하지만 일어나 보니 가능할 리가.
아파서 방에서 뒹굴거리다 겨우 오후 1시쯤 장 보러 나갔다.
파스타만 먹어서 생긴 영양 불균형을 핑계로 무려 소세지와 요거트를 사 왔다.
테무 냄비는 소세지도 구울 수 있다. 발코니에 나가 창문 닫고 구워 먹었다.
불가능은 없다.
장 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그나마 다행이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출발 전날 밤 3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게다가 5분 간격으로 계속 깼다.
그러다 4시 반,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방 불을 전부 켜고 타이레놀을 찾아서 대충 짐 가방 속에 쑤셔 넣고 다시 잠들었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움직여진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호텔 조식을 입에 물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의 입장료는 3유로.
치사한 놈들.
하지만 오늘은 일요일.
찾아보니 10시의 Hochamt와 11시 반의 Heilige Messe가 있다.
잘츠부르크 답게 Hochamt때 곡들이 Michael Haydn 같은 지역 출신 곡들이다.
돈 없는 그지 음대생은 당연히 Hochamt를 노린다.
버스 시간 때문에 어쩌다 보니 20분 일찍 도착해서 내부를 둘러보고 착석.
DomQuartier Salzburg 박물관을 들어가면, 중간에 오르간 층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들이 얼마나 배때지를 불리고 나쁜 짓을 많이 했으면 도망가려고 여러 건물 들을 다 연결시켜 놨을까).
그 통로에서 내려다보는 대성당 뷰가 제법 멋있지만, 평소에는 불이 꺼져 있다.
하지만 미사 때는 최상의 컨디션의 대성당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통로는 막힌다.
오늘은 Joseph Haydn의 Theresienmesse.
Einzug 대신 Kyrie로 바로 시작한다.
뭔가 음향이 이상하다.
소프라노와 알토는 노래를 못 부르고, 테너와 베이스는 소리가 뭉개져서 들린다.
곡이 길어서 미사도 길다.
오르간은 3단인데, 소리가 너무 단조로웠다.
Auszug 때 잠깐 치긴 했지만, 짧은 곡을 고르다 보니 초기 고전주의 곡 특유의 밋밋함만 남았다.
미사가 끝나니 11시 35분.
곧바로 11시 30분의 Heilige Messe가 이어졌다.
본의 아니게 Einzug까지 듣고 나왔는데, 그냥 너무 대충 치더라.
잘릴 일이 없으니 연습을 안 해요 다들.
아무튼 잘츠부르크 대성당 오르가니스트에게는 실망.
잘츠부르크 대성당 제단 근처 네 모퉁이에 조그만 오르간이 4개가 있다.
용도도 모르겠고 언제 쓰는지도 모르겠다.
큰 오르간이랑 따로 연결도 안 되어 있는 거 같던데 장식은 아니겠지.
나와서 뭐 할지 하다가 즉흥적으로 마리아 플라인으로 갔다.
2024년에 파리 친구들이랑 비엔나에서 연주를 했을 때, 파리에서는 연주를 못하고 대신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했었다.
그때 잘츠부르크 출신 친구가 갈 곳 없으면 마리아 플라인이나 가보라고 했었다.
구글지도를 보니 내려서 25분을 걸으라던데 일단 가봤다.
나름 가톨릭 성지 같은 곳이어서 가는 길마다 작은 성화판이 세워져 있었다.
끝까지 올라가서 성당을 구경하고 다시 내려왔는데, 또 버스를 딱 눈앞에서 놓쳤다.
종점인데도 일찍 출발했다.
결국 다음 차를 탔는데, 이번엔 문이 고장 나서 출발 불가.
어찌저찌 출발을 했는데 중앙역에서 내리래서 또 내렸다.
감기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몸도 아픈데 난리다 아주.
목요일 리허설 때 옆자리 친구한테 쉬는 날 뭐 했냐고 물어봤더니, 그라츠 친구들끼리 모여서 가이스베르크 하이킹을 했단다.
다시는 하이킹 안 할 거란다.
호텔에서 아침마다 창문으로 또는 나오자마자 보이는 그 산.
걸어 올라갈 힘은 없다.
151번 버스가 미라벨정원에서 출발해서 산 정상까지 태워준단다.
미라벨정원 정류장은 도대체 몇 개고 왜 매번 타는 곳이 다 다르냐.
정류장 구분을 (A), (B), (C)... 이런 식으로 하던데 (Y)는 좀 심하잖아.
정상 둘러보기 코스는 15분, 둘레길은 1시간 반이다.
정상을 보고 내려와서 둘레길을 걷고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 딱 완벽한 코스다.
가는 내내 하늘이 맑았다.
그러나 내린 지 20초 만에 먹구름과 비바람 등장.
역시 나는 날씨요정.
패러글라이딩 준비하던 사람들도 전부 접고 철수한다.
비 피할 곳 하나 없는 정상에서 감기 걸린 몸으로 1시간 반은 무리라서, 어쩔 수 없이 15분 코스만 돌았다.
버스는 30분 뒤에 내려가는데 기사가 버스 문 닫고 사라졌다.
할 수 없이 또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갑자기 해가 나오고 패러글라이딩도 재개.
일곱 바퀴 돌면 산이 무너지려나.
두 바퀴 돌고 나니 28분.
바로 버스 타고 내려왔다.
A&O Hostel에 또 들어가서 두 시간 정도 쉬고, 호텔로 돌아갔다.
이제는 직원이랑 눈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34유로 지불하고 방은 안 쓰고, 와이파이나 빌려 쓰고, 간식 먹고, 쓰레기 버리고 가는 이상한 녀석이라는 걸 직원들은 알까? 그것도 한 달이나.
밖은 비가 오고, 기온은 12도다.
하루동안 발코니에 소세지를 햇빛만 피해서 던져놨다.
냄비에 밥 짓고, 남은 소세지도 구워서 밥 먹고, 쉬다 잠들었다.
일정에 여유가 있으면, 돈 내고 입장하는 교회나 성당은 일요일에 방문하자.
성무일도를 하는 곳은 그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면 들어갈 수는 있지만, 제단 앞까지 휘젓고 돌아 나니 기는 힘들다.
정보가 있는 큰 성당들은 평일 혹은 주말 예배/미사 시간에 맞추어 들어가자. 미사 드리러 간다는데 입장료 뜯는 양아치는 없다.
단지 일요일이 미사 횟수도 많고 사이즈가 클 뿐.
미사 시작 20분 전, 혹은 주기도문 즈음을 노려서 들어가서, 끝나고 둘러보자.
Hochamt는 보통 합창단이 있고 Heilige Messe는 합창단은 없다. 그 외 자잘한 미사에는 오르간도 없다.
합창단 구경하고 싶으면 Hochamt를, 오르간 구경하고 싶으면 Heilige Messe를 추천한다.
아니면 무료 오르간 연주회를 노려보자. 대신 중간에 들어가고 나가고 눈치는 많이 보인다.
돈 내고 들어가는 연주회는 대부분 돈이 아까운 경우가 많다.
151번 버스 시간표를 인터넷에서 뒤지다 보면 하이킹 코스가 같이 나와있는 PDF 파일을 구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특성상 하이킹 코스는 구글지도에 거의 안 나온다. 인터넷에도 잘 안 나온다.
현장에서 종이 지도나 안내 자료를 봐야 시간, 루트, 난이도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