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 성 / 박물관 / 시내
일자: 20220924
장소: 체코 브르노 (Czech Brno)
교통: Regiojet
일정: 미술관, 성, 야나첵 박물관
응용 미술 박물관과 몇몇 박물관이 주립 박물관에 속해 무료였다.
응용 미술 박물관은 응용 미술답게 디자인이나 소품들이 많았다.
특히 유리 공예 작품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었다.
박물관 맞은편 언덕에는 성이 있었다.
역시 성은 늘 언덕 위에 있다.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올라가서 본 풍경이 모든 걸 보상했다.
성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성벽을 따라 도시를 내려다보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그냥 입장이 가능한 내부의 어느 방에는 브르노 출신 유명인의 이름이 붙은 행성들에 대한 설명이 글로 되어있었다.
아돌프 로스, 그레고르 멘델, 마하, 야나첵 등이 있었다.
다시 밑으로 내려와서 다음 미술관으로 향했다.
Moravská galerie v Brně - Pražákův palác 미술관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거의 대부분이 특별전 위주로, 소규모 전시가 자주 바뀌는 구조였다.
근대 작품이 주를 이루었고, 언어를 몰라도 감상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체코의 근대 회화는 예상보다 세계적 흐름과 닮아 있었다.
세잔의 느낌도 나고, 때로는 독일의 야수파나 큐비즘의 흔적도 보였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으면, 어김없이 같은 작가의 이름이 반복됐다.
프라하에서 이미 여러 번 봤던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미술관에서 나와, 이번 브르노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야나체크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브르노 필하모니가 있어 사진을 한 장 남겨주었다.
작곡가 레오시 야나첵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신포니에타', '글라골리틱 미사', '예누파' 그리고 당연히 '바이올린 소나타' 정도였다.
사실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닫혀 있으면 그냥 바깥만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운 좋게 문이 열려 있었다.
입장료도 저렴해서 바로 표를 샀다.
주인장 아줌마가 어디서 왔냐 왜 왔냐 말을 건다.
귀찮고 빨리 보러 들어갈 생각에 대충대충 대답을 하는데, 아줌마가 독일어를 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브르노 개인 가이드 자격도 있단다.
이야기를 나누며 들은, 체코에서 야나첵이 차지하는 위치와 음악적 의미는
이번 여행의 진짜 수확이었다.
박물관에는 야나첵이 쓰던 방, 쓰던 악기, 연구하던 자료들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야나첵이 설립한 오르간 학교가 있었다.
야나첵이 오르간 학교로 설립을 했고, 브르노 음악원이 되었다가 현재는 야나첵 공연 예술 아카데미가 되었다.
근처에는 뭔가 있어 보이는 교회도 하나 있었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이제 마지막 볼거리들이 몰려있는 도시의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체코어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야나첵의 음악이 체코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흔히 체코 작곡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건 드보르작이다.
체코 민족주의 음악가라고 배워왔으니까.
하지만 드보르작은 민속 선율을 가져다 쓰긴 했어도, 언어와 리듬 그 자체를 크게 연구하고 적용하진 않았다.
반면 스메타나는 30대에 체코어를 배우고 언어를 음악 속에 녹여내려 노력했지만, 그 운율을 완전히 구현하지는 못했다.
야나첵은 체코어의 억양, 강세, 리듬을 음악에 그대로 적용하려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체코 사람은 진정한 체코 음악은 야나첵의 음악이라고 얘기한다.
물론 지역적 감정이 섞인 평가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모라비아에서 그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모라비아는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이 짙은 곳이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2개 국어를 썼다고 한다.
비엔나에는 서역(Westbahnhof), 중앙역(Hauptbahnhof), 등 여러 역이 있는데,
지금의 중앙역은 원래 남역(Südbahnhof)이었다.
1990년대, 브르노 시민들이 새 역 이름을 정할 때 투표를 했는데, 1등으로 뽑힌 이름이 비엔나 북역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도시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 아래에 있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자연스럽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