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틀과 선택적 기준
시대 구분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혼란과 후대 비평가의 자의적 명명은, 음악사 서술의 근본 목적이 예술적 진실을 담기보다는 학문적, 행정적 편의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목적론적 오류는 두 가지 요인으로 더욱 심화된다. 첫째는 세계사적 맥락을 필요할 때만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지적 이중잣대이고, 둘째는 유럽, 특히 독일 중심의 경직된 학문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관행이다. 이 두 요인은 음악의 유기적 흐름을 인위적 ‘고정된 틀’ 안에 가두는 구조적 제약의 핵심 원인이 된다.
음악사는 종종 시대 명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문학, 미술, 철학 등 다른 예술사에서 사용되는 개념, 즉 사조(운동)의 이름을 차용한다. 대표적인 예가 ‘낭만주의’다. 19세기 낭만주의는 단순히 음악 양식이 아니라,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 개인의 주관과 감정의 해방, 자연 숭배, 그리고 천재성에 대한 집착 등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사조였다. 음악사는 이 사조의 이름을 빌려 시대를 명명함으로써 겉보기에는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조를 가져오면서 그 배경이 되는 세계사적 사건과 사회적 변혁은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선택적 차용이 이루어진다. 낭만주의를 촉발한 중요한 배경으로는 프랑스 혁명(1789년), 나폴레옹 전쟁(1803~1815년), 그리고 유럽 질서를 재편한 빈 회의(1815년) 같은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이 시기는 정치적 전복과 민족주의의 태동, 부르주아 계층의 부상 등 음악의 생산, 소비, 미학적 지향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실제적인 '시대적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음악사 시대 구분은 이 중요한 세계사적 분기점들을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경계로 채택하는 것을 꺼린다. 대신 통용되는 경계는 베토벤의 사망 연도인 1827년 근처나, 슈베르트와 쇼팽 등의 초기 낭만주의 작곡가 활동이 활발해진 1830년대 초반이다. 1815년 빈 회의가 유럽의 정치 지형을 완전히 바꿨음에도, 음악사적 경계에서는 베토벤 개인의 생애라는 지극히 자의적 사건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즉, 거시적 사회 변혁보다는 위대한 작곡가 개인의 생애가 시대 구분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음악사가 얼마나 개인 중심적, 영웅주의적 관점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음악사는 낭만주의라는 사조의 이념적 이름을 빌려 시대 명칭에 깊이를 부여하면서도, 그 이념이 현실에서 형성된 사회적 경계는 배제한 채, 작곡가의 활동 시기나 양식 변화 같은 내부 편의에 따라 경계를 설정한다. 필요할 때는 거대한 사조를 빌려오고, 불편할 때는 작곡가 개인의 사건을 기준으로 삼는 이러한 이중잣대는, 시대 구분이 후대 비평가의 관점에 따라 사실상 임의로 설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음악사가 체계화되면서 음악 연구는 철학적, 역사적 관점을 강하게 반영하게 되었다. 당시 음악학(Musikwissenschaft)은 독일 관념론과 역사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칸트와 헤겔의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음악을 연속적이고 필연적인 발전 과정으로 해석하는 틀을 만들었다. 이 틀 속에서 음악사는 바흐에서 시작하여 베토벤과 바그너를 거쳐 쇤베르크에 이르는 진보적이고 필연적인 발전 과정이라는 획일적 서사를 강조하며, 시대와 지역, 작곡가의 다양성을 단일한 연대적 틀 속에 맞추어 서술되었다.
한국 음악사 연구는 초기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그리고 해방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로 유학한 일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식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음악사 연구와 교육을 주도했다. 이들은 독일 중심 음악학의 목적론적, 진보적 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음악사의 시대 구분을 고정된 연대적 틀에 맞추는 경향을 강화하였다.
1970년대 이후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다양한 언어권과 학문 전통에서 공부한 세대가 등장하면서, 독일 중심 음악학 외에도 분석학적, 비교음악학적, 민족음악학적 접근이 일부 도입되었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학습한 언어권마다 ‘현대’ 음악에 대한 용어와 개념이 달라 혼용되면서, 시대 구분의 일관성은 더욱 흐트러졌다. 예를 들어, 영어권에서는 Modern, Contemporary, Postmodern을, 프랑스어권에서는 Moderne, Contemporaine, XXe siècle를, 독일어권에서는 Neue Musik, Zeitgenössische Musik을 사용했다. 이러한 용어 차이는 단순히 이름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음악을 어떻게 평가하고 분류할지에 대한 학문적 기준 자체가 언어권과 전통에 따라 달랐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언어권과 학문 전통에서 유입된 연구자들이 혼재하면서, 한국 음악사 연구의 시대 구분은 점점 더 혼재적이고 불일관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고, 독일 중심 틀의 경직성과 맞물려 시대 구분의 혼란을 심화시켰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럽 내 음악사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고전주의 시대 구분에서는 독일 중심적 관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고전주의’는 흔히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라는 빈 악파를 중심으로 정의되며, 독일 외 지역의 음악적 실험과 다양한 장르는 주류 서사에서 부차적으로 취급되거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예컨대 독일의 만하임 악파나, 파리, 런던의 이탈리아 오페라, 프랑스 혁명기의 사회적 음악 활동 등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이러한 서사는 고전주의를 소나타와 교향곡 중심의 독일식 미학으로만 이해하게 하며, 동시대 다른 지역의 다양한 음악적 흐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독일 중심 관점은 바로크와 고전주의 과도기 양식에서도 나타난다. 18세기 중반 독일에서는 바흐의 복잡한 대위법에 반발하며 갈랑 양식(Style Galant)과 감정과다 양식(Empfindsamer Stil)이 등장했지만, 학계는 이를 ‘고전주의로의 이행기’라는 과도기적, 부차적 역할로만 규정했다. 양식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기보다는, 고전주의 탄생을 위한 징검다리로 축소한 것이다. 결국 시대 구분은 음악적 다양성과 창작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정해진 틀에 따라 내용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기능했다.
결과적으로, 음악사 시대 구분은 표면상 세계사적 사조를 반영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독일 중심의 엄격하고 획일적인 목적론적 틀에 갇혀 있다. 유기적 변화와 독자적 양식 세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고정된 연대적 틀에 맞추면서, 음악사는 역사적 맥락과 창작의 다양성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제한적이고 구조화된 서술 방식으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