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자연산’이라는 이름 앞에 맹목적인 믿음을 보낸다. 바다에서 제멋대로 자란 생선이 양식보다 싱싱하고 맛있을 거라는 직관적인 믿음.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 엄청난 가격 차이는 실질적인 품질보다 ‘희소성’이라는 환상과 ‘자연주의’라는 심리적 프리미엄에 지불하는 비용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자연산은 기생충의 위험이 높고, 유통 과정이 정교하지 않으면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지기도 한다. 진짜 실속 있는 소비자라면 철저히 관리된 양식과 조리사의 숙련된 솜씨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이득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연’의 맛에 감동하는 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 감동의 정체는 ‘자연산’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제철의 기운과 산지의 바람, 그리고 인간의 손길이 가장 완벽하게 맞물렸을 때 탄생한다.
통영의 어느 이름 모를 백반집에서 만난 생선구이가 그랬다. 서울에서 흔히 먹던 냉동 고등어나 갈치와는 차원이 달랐다. 바닷바람에 꾸덕하게 마른 잡어들은 비릿한 냄새나 물컹한 식감 대신, 고소한 기름맛과 담백한 살맛만을 입안에 남겼다. 도시 전체가 상향 평준화된 솜씨와 풍부한 식자재를 공유하고 있기에, 굳이 유명한 집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마주할 수 있는 ‘기본값’의 승리였다.
여수 또한 마찬가지다. 치아가 약하면 먹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지만 끝내주는 감칠맛을 가진 돌게장, 해산물의 시너지가 폭발하는 해물 삼합, 여름 한정의 별미인 하모, 그리고 콩국수에 설탕을 넣어 먹는 그곳만의 독특함까지. 여수는 풍경에 취해 갔다가 음식에 반해 돌아오게 만드는 도시다.
그중에서도 내 미식의 정점은 서대회 무침이었다. 친가가 여수라 어릴 때부터 제사상에 오른 서대 찜을 보고 자랐지만, 그때는 그게 무슨 맛인지 몰랐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여수에서 서대회 무침을 한 입 먹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새콤달콤하게 무쳐진 찰진 서대 살이 혀에 닿는 찰나, 나는 순식간에 어린 시절 명절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그 공간으로 이동했다.
내 영혼에 각인되어 있던 유년의 기억이 ‘맛’이라는 열쇠를 통해 잠금 해제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미각의 만족을 넘어선 시간 여행이었다. 결국 최고의 맛은 비싼 가격표나 ‘자연산’이라는 수식어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 데나 들어가도 실패하지 않는 도시의 신뢰감 속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따뜻한 기억 한 조각을 발견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맛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서대회 한 점처럼 기억의 한 장면에 닿는 순간을 원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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