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늘 우리에게 '단면의 진실'을 판다. 비타민 C를 하루에 수천 밀리그램씩 들이부으면 만병이 통치될 것이라는 메가도스 예찬론자들의 목소리는 달콤하다. 그들은 노벨상 수상자의 권위를 방패 삼아 "안 하면 바보"라는 식의 프레임을 짠다. 한편, 거대 플랫폼 기업 쿠팡은 3,3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치명적 결함 앞에서도 '로켓배송 중단'이나 '미운털 박힌 기업 탄압' 같은 자극적인 여론전을 꺼내 든다. 이 둘은 영역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유리한 파편만을 보여주어 대중이 전체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약장수식' 기만술이라는 점이다.
이런 현상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중이 '이성적인 의심'보다는 '보여주는 대로 믿는 편안함'을 선택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메가도스 예찬론자들은 흡수율의 한계나 장기가 치러야 할 대사 비용은 말하지 않는다. 쿠팡 역시 정부 조사단과 대립하며 증거 인멸 정황이 드러나는 와중에도 '5만 원 쿠폰'과 '편리함'이라는 감성적 외피만 덧씌운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의 명제를 빌려와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가?" 만약 어떤 주장이 정말로 이성적이라면, 그것은 현실에서 보편적인 법칙과 투명한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 메가도스가 정말 기적이라면 왜 의학계의 보편적 상식이 되지 못했겠는가. 쿠팡의 여론전이 정말 정당하다면 왜 대중은 '탈팡'으로 응답하며 그들의 얄팍한 수를 비웃겠는가. 이성적이지 않은 주장은 아무리 화려하게 포장되어도 진정한 의미의 '현실'이 될 수 없으며, 결국 허구의 서사로 남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기만적인 정보들이 쏟아질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이다. 상대가 던진 자극적인 프레임에 무분별하게 동조하거나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체중이 실리지 않은 '붕붕펀치'와 같다.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소리는 요란할지언정, 기만의 실체를 단 한 번도 타격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를 수신한 뒤 거쳐야 할 '냉각기'다. 감정이 앞선 채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물러나 차갑게 식은 이성으로 저들의 논리적 허점을 읽어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보여주는 대로 믿는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교차검증된 근거와 실증적 팩트라는 묵직한 체중을 실어 카운터를 날릴 수 있는 주체적인 관찰자가 된다.
이제 재래식 언론이 정보를 독점하고 선별해 주던 시대는 끝났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 갇힌 전갈은 자신이 어두운 덤불 속에 숨어있다고 믿을지 몰라도, 유리병 밖의 관찰자들은 그 독침이 누구를 향하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누군가 건네는 화려한 서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일. 그것은 붕붕펀치를 멈추고 가드를 바짝 올려 상대의 관자놀이를 노리는 것과 같다. 재래식 언론이 방기한 그들의 소명은 이제 시민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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