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줄사람의 의도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잔치

by 무학의통찰

며칠 전 어느 배우의 대학원 조기 졸업 기사를 클릭했다가 아연실색했다. 그곳은 축하의 장이라기보다, 마치 지령이라도 받은 듯 몰려나온 이들의 기괴한 ‘집단적 성토장’에 가까웠다. 이혼 과정의 진흙탕 싸움 속에서 남성들의 비방에 잔뜩 위축되어 있던 이들이, ‘카이스트’라는 근사한 명분을 쥐자마자 그간의 울분을 보복하듯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에게 성취의 본질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뒤틀린 사상을 정당화해 줄 화려한 전리품이 필요했을 뿐이다.


#누군가의 노력을 혐오의 광고판으로 쓰는 법


팬으로서 누군가를 응원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이들이 한 인물을 자신들의 분노를 전파하는 ‘광고판’으로 가로채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정작 당사자는 과거 "나는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이라며 편 가르기에 선을 그었고, 페미니즘을 "왜곡된 혐오의 상징으로 쓰지 마라"라고 일갈했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이 극단주의자들은 그녀의 성취를 빌미로 “똑똑한 여자를 감당 못한 남자의 무능”이라느니, “여자에게 결혼은 재앙”이라느니 하며 자신들의 교리를 들이민다. 한 개인의 치열한 노력이 담긴 성취가, 누군가의 비뚤어진 사상을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알리바이이자 소모품으로 전락한 꼴이다.


#조작된 영웅을 위해 보통의 삶을 지워버리는 기만


여기서 이들의 서사는 치명적인 모순에 부딪힌다. 그들은 그녀를 ‘세상의 핍박을 홀로 뚫고 나온 여전사’로 묘사하고 싶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현실은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다. 온전히 학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자본과 시간의 여유라는 배경은 싹둑 잘라낸 채, 오로지 ‘독고다이 성취’로만 세탁하려 드는 기만 말이다.


이런 식의 서사 조작은 진짜 생업의 파도에 부딪히며 쪽잠을 자야 하는 평범한 청춘들에 대한 모독이다. 성취를 이룬 배우의 환경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뻔히 알면서도 ‘피해자의 투쟁’인 양 포장해 대중을 속이려 드는 그들의 태도가 비겁한 것이다. 개인의 성취를 자신들의 혐오 도구로 납치하려는 시도는 결국 이런 무리한 서사 세탁에서 밑천을 드러낸다.


#우리를 바보 취급하는 거냐는 대중의 냉소


하지만 요즘 대중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연예계에서 반복된 이런 ‘상징 탈취’ 패턴을 이미 학습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취가 특정 사상의 광고판으로 쓰이기 시작하면, 대중은 실시간으로 과거의 발언과 행동을 ‘파묘(破墓)’해내는 정교한 검증 프로토콜을 가동한다.


잘못된 코인에 탑승했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연예인들이 증명하듯, 특정 세력의 서사에 올라타거나 그들의 광고판이 되는 것을 방조했을 때 따르는 비난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이 냉혹한 검증을 거치고 나면 비난의 진짜 과녁이 성취를 가로챈 극단주의자들인지, 아니면 그 서사를 이용한 연예인 본인인지가 자연스레 밝혀지게 된다. 침묵 뒤에 숨어 대중을 바보 취급하는 기만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결국 이 기괴한 소동 끝에 남는 건 화려한 수치 뒤에 숨은 ‘조작된 영웅주의’에 대한 환멸이다. 한 인간에 대한 최종 평가는 특정 집단이 덧칠한 프레임이 아니라, 이 혹독한 검증의 끝에서 마주하게 될 그 사람의 진실함에서 완성된다. 상식을 가진 대중은 더 이상 특정 부류가 조작한 전리품에 속지 않을 만큼 충분히 영리해졌기 때문이다.


#극단주의

#상징탈취

#연예인

#카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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