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으로 쓰는 대중, 사유의 멘토로 쓰는 엘리트
세상은 온통 인공지능(AI)의 유능함에 대해 떠들썩하다. 누군가는 이를 업무 효율의 혁명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갈 위협이라 말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곁에 다가온 AI의 민낯은 조금 다르다. 대다수 사람에게 AI는 그저 고도화된 '네이버 지식인'이나 '편리한 자판기'에 머물러 있다.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는 고학력 사회인 한국에서도 AI를 '사유의 멘토'로 부려 자신의 사고를 확장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왜 우리는 이 강력한 도구를 앞에 두고도 여전히 전통적 인지 방식이라는 구석기시대의 동굴 속에 머물고 있는가.
흔히들 '질문하는 과정의 피로함'을 그 이유로 꼽는다. 생각의 근육을 쓰는 대신 결괏값만 쇼핑하려는 태도가 대중의 본능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바로 '환경'과 '지식의 불평등'이다. 생산성이 최우선인 사회에서 AI와 느긋하게 철학적 문답을 나누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또한, 소액으로 누구나 AI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은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의 외피'를 씌울 뿐이다. 기반 교육의 차이,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들만의 AI'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식의 비대칭성을 더욱 고착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식이 신분과 권력의 자격이었다면, 이제 지식은 부의 소유와 같은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지능 자본을 선점한 이들이 복리로 지식을 불려 나가는 동안, 전통적 인지 방식에 머무는 이들은 '꼰대식 사고'라는 오명을 쓴 채 인지적 낙오자로 전락한다. 이는 마치 인류사에서 부의 분배만큼이나 처절하게 좌절되었던 지식 분배의 비극적 반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류가 꾸준히 우상향 하고 있다고 믿는다. 150년 전, 인종과 성별의 장벽이 절대적이었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평등의 대화가 오늘날 실현되었듯, 인류는 시행착오를 통해 진화해 왔다. 참정권과 시민권을 얻기 위해 치렀던 과거의 피 튀기는 희생에 비하면, 지식 혁명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는 인류가 축적한 학습 능력으로 충분히 감내하고 수정해 나갈 수 있는 수준일지도 모른다.
결국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가장 빠른 정답을 얻는 자가 아니라, 가장 깊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자가 될 것이다. 인류의 우상향은 거대한 시스템이 아니라, 새로운 도구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끊임없이 길들이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 개인들의 사유가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류의 우상향은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싣는 것이 아니라, 그 물결 속에서 끝까지 자기 사유의 키를 놓지 않는 개인들의 손끝에서 완성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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