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합, 블루홀, 그리고 Pale Blue Dot

by 무학의통찰

1. 전주곡: 벨즈(El Bells)의 수직 터널

블루홀로 향하는 길은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입수 지점인 '엘 벨즈'는 길고 좁은 파이프처럼 수직으로 깎아지른 수중 절벽에서 시작된다. 다합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동시에 가장 깊고 위험한 그곳은 다이버들에게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다. 좁은 틈 사이로 몸을 던지자마자, 경치를 감상할 겨를도 없이 귀를 찢는 듯한 압력이 덮쳐온다. 일자로 뻗은 터널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며 쉴 새 없이 이퀄라이징을 시도해야 하는 그 과정은, 광활한 우주로 나가기 위해 대기권의 압력을 견뎌내는 우주선의 이륙과도 같았다.


2. 시각적 소음이 사라진 자리

다이빙은 본래 버디와 함께하는 단체 활동이다. 특히 블루홀 같은 명소는 앞뒤로 늘어선 다이버들의 핀(오리발) 소동과 가이드들의 쉴 새 없는 수신호,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포들로 늘 북적거린다. 하지만 내가 그 심연에서 진정한 고립감을 느낀 것은 순전한 우연 덕분이었다. 순간적으로 무리와 뒤쳐져 서브 가이드와 단둘이 남게 된 찰나, 나를 어지럽히던 모든 시각적 소음이 마법처럼 증발했다. 타인의 존재가 지워진 자리에 비로소 심해의 고요함과 끝을 알 수 없는 풍경이 밀려들어 왔다. 규칙적인 내 숨소리와 레귤레이터를 빠져나가는 공기 방울의 소리만이 귓가에 울릴 때, 나는 비로소 우주 한복판에 홀로 떠 있음을 자각했다.


3. 본 적 없는 은하의 색

그곳에서 마주한 파란색은 내가 평생 알고 있던 색이 아니었다. 채도 높은 밝은 파랑이 아니라, 마치 필터를 여러 겹 씌운 듯 뿌옇고 몽환적이며, 그 끝은 가차 없는 검은색으로 가라앉는 비현실적인 파랑이었다. 붉은 기가 완전히 사라진 그 푸르스름한 세상 너머 칠흑의 어둠은 미지의 공포 그 자체였다. 거대한 백상아리가 입을 벌리고 다가오거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의 눈이 나를 빤히 바라봐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은 공간. 압도적인 규모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을 왜곡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두려움인 동시에, 지구라는 행성이 숨겨둔 우주의 민낯을 마주한 자만이 느끼는 서늘한 전율이었다.


4. 발밑이 사라진 3차원의 세계

물속은 땅 위와 차원이 다른 세상이다. 지상에서의 광활함은 항상 발밑의 단단한 대지를 전제로 하지만, 블루홀 안에는 나를 받쳐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머리 위만 끝이 없는 땅 위와 달리, 이곳은 바닥과 앞뒤, 옆면이 모두 무한으로 열린 공간 역전의 세상이다. 중성 부력을 맞추기 위해 호흡을 고르며 허공에 멈춰있을 때, 레귤레이터를 통해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적인 숨소리와 얼굴을 감싸고 올라가는 공기 방울의 감촉은 묘한 공감각적 쾌감을 선사했다. 그 기계적인 소음 속에서 끝없는 심연을 바라보노라면 이규제큐터에서 은하의 깊은 곳을 바라보는 다스베이더가 된 기분이었다. 그것은 블루홀이 주는 우주적 공간감과 묘한 일치감을 주는 강렬한 감각이었다.


5. 창백한 푸른 점의 목격자

그 이후로 여러 곳에서 다이빙을 해봤지만, 블루홀에서 느꼈던 그 강렬한 기분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내 숨소리와 공기 방울 소리에만 의지해 떠 있던 시간. 그 넓은 공간 안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몸으로 직접 느끼는 일은, 처음의 압도적인 공포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기묘한 해방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내 숨소리 하나가 그토록 선명하게 들리던 순간. 나는 그 깊은 바다 한복판에서, ‘창백한 푸른 점’을 활자가 아니라 온몸으로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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