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같은 복지의 역설

왜 가난한 자들은 부자의 곳간을 걱정하는가

by 무학의통찰

숨을 쉴 때마다 산소의 가격을 계산하는 사람은 없다. 너무 흔하고 당연해서, 그것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 우리 사회의 복지는 이제 대중에게 ‘공기’가 되었다. 최근 언론이 연일 쏟아내는 ‘상속세 공포 마케팅’은 이 공기 속에서 배부르게 사유를 멈춘 대중의 뇌를 공략한다. 질식해 죽지 않을 만큼의 산소를 공급받으면서, 정작 그 산소통을 뺏으려는 자들의 논리에 박수를 치는 이해불가의 풍경. 배가 덜 고파서 생기는 이 비극적인 여유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설계된 공포와 유니콘을 찾는 사람들

​최근 언론이 앞다투어 옮겨 나르는 ‘부자들의 한국 탈출’ 뉴스는 고도로 계산된 연출이다. 영국 사설 업체의 마케팅용 통계를 근거로 ‘자산가 유출 세계 4위’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을 달았지만, 정작 국회 검증이 시작되자 대한상공회의소는 통계 검증이 부족했음을 시인했다.


​현실적으로 상속세가 없으면서 한국 수준의 치안, 인프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싱가포르의 세금이 낮다지만 차 한 대 등록하는 데 1억이 들고 숨 쉬는 것 빼고 다 돈인 나라다. 부자들이 한국을 떠나지 않는 것은 여기가 그들에게 가장 ‘가성비 좋은 서비스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론이 이런 ‘유니콘’ 같은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중의 마음속에 ‘나라 망한다’는 공포 버튼을 눌러, 자신들의 실질적인 상속세 부담을 낮추려는 노골적인 이익 설계다.


정신적 유한계급: 비루한 현실을 잊게 하는 가장 값싼 탈출구

​진짜 비극은 이 설계에 가장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이 정작 상속세와는 아무 상관없는 가난한 보수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반지하 단칸방에 살며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계를 잇는 노인들이 수천억 자산가의 상속세를 걱정하며 밤잠을 설친다.


​베블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정신적 유한계급’이다. 부자의 권한을 옹호하는 행위는 그들에게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자존감 마약이다. 기득권의 논리에 동조하는 순간, 그들은 비루한 수혜자가 아니라 국가 경영을 걱정하는 애국자가 된다. 현실의 가난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더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기득권이 던져준 가짜 신분증을 차고 거리에서 대리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다.


투명해진 복지, 그리고 사유의 질식

​이런 인지부조화가 가능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복지가 너무나 잘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지하철 무임승차, 기초연금은 이제 그들에게 정책적 선택이 아니라 공기나 수돗물 같은 자연현상이다. 공짜 공기를 마시며 공기에 이용료를 애기려는 이들에게 박수를 치는 꼴이다.


​복지 혜택을 숨 쉬듯 누리면서도 그것이 누군가의 세금과 투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러니 “복지를 줄이고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내 산소통을 걷어가겠다는 위협으로 들리지 않고, ‘나태한 놈들 정신 차리게 하는 정의’로 들리는 것이다. 배가 덜 고픈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사유하기보다 설계자가 던져주는 불량식품을 씹으며 정신적 허기를 채운다.


지독한 연극의 막은 언제 내리는가

역시나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부자들이 대규모로 탈출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 체제가 그들에게 유리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런데도 가난한 이들이 부자의 곳간을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마시는 공기가 어디서 오는지 사유할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질식은 서서히 찾아온다. 공기가 유료로 전환되어 산소통 가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그날까지, 그들은 아마도 산소통 가격을 올리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상속세를 걱정하며 정작 자신의 삶은 단 한 푼도 상속해주지 못하는 이 지독한 연극은 언제쯤 막을 내릴까. 아니, 애초에 막을 내릴 생각은 있는 것일까.


#가난한보수

#부자감세

#계급배반

작가의 이전글책임질 필요 없는 쾌락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