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해 먹었으면 이제 퇴장해 주세요 근본주의씨!!

by 무학의통찰

높은 민도와 국가적 정체의 역설

최근 유튜브에서 접한 이라크 바그다드의 '알 무타나비' 서점 거리는 기이하고도 강렬한 풍경을 선사한다. 밤이 깊어 상인들이 떠난 자리에도 책들은 가판대 위에서 홀로 달빛을 받으며 노숙한다. "도둑은 책을 읽지 않고, 독자는 책을 훔치지 않는다"는 격언이 공기처럼 당연하게 흐르는 고결한 민도(民度). 하지만 이 경이로운 풍경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 하나를 던진다. 이토록 품격 있는 개인들이 모인 땅이, 왜 국가라는 틀 안에서는 처참한 정체와 후퇴를 반복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억눌린 본능이 빚어낸 보이지 않는 무게, 응력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국경을 맞댄 이란의 거리에서 터져 나오는 만성적인 저항 속에 있다. 수천 년의 찬란한 문명을 일궈낸 이들의 후손이 거리로 나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십 년간 종교라는 거대한 틀이 개개인의 자유의지와 문명적 본능을 짓눌러온 결과다.

현시점 이란의 저항은 단순히 히잡이라는 복장 규정을 거부하는 행위를 넘어, 개인의 존엄과 생존권을 억압하는 체제 정당성 전체에 대한 거대한 거부권행사로 진화했다. 인간의 본능이 낡은 교리의 벽에 부딪혀 뒤틀릴 때 발생하는 이 에너지는 사회적 '응력(Stress)'이 되어 그 구조를 안에서부터 짓이긴다. 억지로 누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의 틈새마다 스며들어 체제의 근간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만성적인 압력이 된 것이다. 기득권이 쌓아 올린 억압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그 반작용으로 터져 나올 폭발의 강도는 더욱 처절할 수밖에 없다.


공중부양은 없다, 진보를 위한 기나긴 밀당

역사는 진보와 퇴행을 반복하며 전진한다. 기득권이 스스로 권력을 포기할 가능성이 전무한 상황에서 사회의 부드러운 연착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권력은 진공을 허용하지 않기에, 종교의 지배가 끝난 자리에 찾아올 혼란 또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 공백을 메우려는 새로운 세력조차 결국 억압의 환경에서 자라왔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에, 그들이 바라는 정상적인 시스템은 결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합리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은 공중부양하듯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요행이 아니다. 그것은 수 세대에 걸친 지루한 밀당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바닥에서부터 진흙탕을 굴러야 얻을 수 있는 지상 과제다. 일단 시스템이 제대로 된 궤도에 오르기만 하면 아주 작은 추력만으로도 스스로 굴러가는 자가발전을 시작하겠지만, 그전까지의 소란스러운 갈등은 역사가 발전하기 위해 그들이 치러야 할 정당한 마찰열이다.


스마트폰이 찢어버린 동굴의 가림막

과거의 지배자들은 정보의 칸막이를 통해 대중의 눈을 가리고 그들만의 세상을 강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중 모두가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부탄의 행복지수가 스마트폰 보급 이후 급락했다는 뉴스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부탄인의 삶이 비정상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외부 세계라는 확실한 참조점을 갖게 된 결과다.


이제 그들은 무엇이 발전이고 무엇이 퇴행인지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학습한다. 정보의 유입은 종교가 쳐놓은 안개를 걷어내고, 발전의 동기부여와 방향성에 대한 확실한 교육 모델이 되었다. 동굴 밖의 태양을 봐버린 눈은 다시는 예전의 어둠을 숙명이라 믿으며 만족할 수 없다. 정보의 속도는 이미 억압의 속도를 추월했다.


이제는 비켜줘야 할 시간

결국 그 사회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개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그 본능적 에너지를 가두고 있는 견고한 억압의 구조다. 신의 권위 뒤에 숨어 시대를 역행하며 꿀물을 빨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들은 이제 신의 명령이 아닌, 구성원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세속 지향적 가치와 평등한 법안이 작동하는 '신사적인 계약'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낡은 기득권이 추하게 버티고 선 그 1분 1초가, 그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밀당의 시간을 더 뒤로 늦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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