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애리조나의 황량한 사막 위로 작열하는 태양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 일본인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가슴 근육에는 날카로운 나무 꼬챙이가 꿰뚫려 있었고, 그것은 가죽 끈에 묶여 높은기둥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내는 며칠을 굶은 채 오직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자신의 살점이 찢겨 나가 기둥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끝없이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나바호족의 가장 가혹한 입문 의식인 '선 댄스(Sun Dance)'였다.
이 지독한 고통을 침묵으로 견뎌낸 이방인에게 나바호의 추장은 비로소 형제의 이름을 허락했다. ‘옐로 이글(Yellow Eagle).’ 동쪽에서 온 황인종이지만 독수리의 영혼을 가졌다는 뜻의 이 이름은 훗날 도쿄 하라주쿠의 전설이 된 고로 타카하시의 신화가 매끄러운 비즈니스가 아닌, 자신의 육체를 찢어낸 고행의 흉터 위에서 시작되었음을 증명하는 낙인이 되었다.
전후 복구 시기의 도쿄, 미군 부대 근처에서 구두를 닦던 소년 고로는 그들이 남긴 가죽 벨트와 투박한 부츠의 질감에서 어떤 자유의 원형을 보았다. 독학으로 가죽 공예를 익혀 이미 하라주쿠에 이름을 알린 청년이었지만, 그는 늘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느꼈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 원본을 정교하게 흉내 낸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자격지심은 그를 무작정 애리조나의 텐트로 이끌었다.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이방인을 향한 인디언들의 냉대는 서늘했다. 그러나 고로는 입 대신 손으로 그들과 대화했다. 텐트 주변을 맴돌며 가죽을 만지고 허드렛일을 자처하던 그의 정직한 노동에 원주민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의 은 깃털에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닌 ‘목숨을 걸고 얻어낸 증명서’의 가치가 담기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기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Parergon) 자체를 자신의 영혼 속으로 편입시켰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고로의 제자들이 여전히 은판을 망치로 두드려 깃털을 하나하나 깎아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고로 타카하시가 세상을 떠난 지금, 매장의 제품들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마스터 몰드(Master Mold)’를 통해 생산되는 주물 방식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복제라고 폄하할지 모르지만, 고로스의 팬들에게 이 팩트는 오히려 신앙을 공고히 하는 장치가 된다.
이 깃털들은 단순한 공산품이 아니라, 거장의 손때와 영혼이 고스란히 각인된 성유물(聖遺物)이기 때문이다. 거장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틀은 여전히 그의 DNA를 복제해 내며, 대중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거장의 영혼에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구매한다. 이는 기술적인 정교함을 넘어선, 한 남자의 인생이 물건의 형식을 빌려 영생하는 기묘한 방식이다.
우리는 왜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도 고통받기를 자처하는가. 길들여지기까지 뒤꿈치를 피로 물들이는 레드윙 부츠를 신고, 손에 끈적한 기름이 묻어나는 바버 재킷을 입으며, 고로스 목걸이 하나를 얻기 위해 하라주쿠의 뙤약볕 아래서 수백 미터의 줄을 서는 행위는 현대 문명이 그토록 제거하려 애썼던 불편함을 역설적으로 추앙하는 꼴이다.
이것은 일종의 현대적 성인식이다. 효율성과 편리함이 최고 미덕인 시대에 불편을 자처하는 행위는, "나는 이 물건이 가진 헤리티지를 소유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를 스스로 입증하는 과정이다. 고로가 사막에서 살점을 찢으며 이름을 얻었듯, 우리 역시 자신의 시간과 인내를 연소하며 그 신화의 파편을 내 것으로 만든다. 이 불편함이라는 필터는 가벼운 유행(Trend)을 걸러내고, 오직 물건과 깊은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된 자들만을 선별하여 그들만의 폐쇄적인 연대감을 형성한다.
어떤 브랜드를 깊이 사랑하게 된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 가치와 불편함을 타인에게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사도(使徒)의 운명에 처한다. 타인의 눈에 그저 시커멓게 산화된 은조각 혹은 낡은 쇳덩어리에 불과한 물건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전도사가 되어 고로의 인생과 나바호의 정신을 설파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설명의 수고로움이 커질수록, 우리의 취향과 신념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단단한 종교가 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미감에서 멀어질수록, 대중의 합리성에서 벗어날수록, 내가 지키고 있는 이 가치는 더욱 고결해진다. 결국 우리가 고로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깃털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것을 목에 걺으로써 "나는 당신들과 다른 가치를 믿는 사람이다"라는 자아의 선언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은 공기와 닿으면 시커멓게 변한다. 보통의 귀금속이라면 관리 소홀이라 불릴 이 황화 현상은 고로스의 세계에서 비로소 작품의 완성으로 칭송받는다. 주인의 체온과 땀, 그리고 그가 보낸 세월에 반응해 검게 익어가는 깃털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삶을 기록하며 깊어지는 것이다.
편리함이 곧 정의가 된 시대에, 고로 타카하시가 남긴 이 불편한 낭만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취향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고통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는가. 당신의 목에 걸린 그 검은 깃털은, 당신이 단순히 물건을 소비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신화 속을 걸어가는 사도임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스
#나바호족
#헤리티지
#불편함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