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집의 각설이패가 된 '사이버렉카'들에게

by 무학의통찰

2026년 그래미 어워즈 직후,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BTS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쇼츠 영상으로 이끌었다. "BTS가 문을 열었는데, 정작 트로피는 그 문으로 들어간 후배들이 들고 있다"는 서사가 비장하게 흐른다. 언뜻 BTS를 위하는 것 같지만, 내 눈엔 그저 조회수를 위해 레전드의 이름을 팔아 결핍을 동력 삼는 렉카의 어그로일 뿐이었다. 잔칫날 나타나 꽹과리를 치며 공짜밥을 요구하는 각설이패의 소음을 보는 듯한 불쾌감. 거기엔 선구자에 대한 예우 대신 비루한 징징거림만 있었다.


​축구의 계보가 보여주는 직관적인 힘

​축구만큼 K의 저력이 직관적으로 계승되는 바닥도 드물다. 차범근이 황무지를 개척했고, 박지성이 가능성을 증명했으며, 손흥민이 비로소 만개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느 축구 팬도 손흥민의 득점왕을 보며 "왜 차범근에게 발롱도르를 주지 않았느냐"라고 억울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범근이 닦은 길 덕분에 한국 선수가 유럽에서 뛰는 것이 이상할 게 없는 일이 되었고, 그 토양 위에서 후배들이 결실을 맺는 것은 매우 건강한 흐름이다. 선구자의 업적은 후배의 트로피를 빼앗아 제 목에 걸 때가 아니라, 그 트로피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토대가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대접'이라는 단어의 비루함

​"왜 대접 안 해줘!"라고 외치는 순간, 그간의 성취는 숭고한 역사에서 저열한 거래로 전락한다. 세상은 원래 불공정하고, 그래미 같은 공고한 카르텔이 지배하는 영역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카르텔은 비난할 대상임과 동시에 극복해야 할 환경일 뿐이다. 벽에 금을 내놓고 후배들이 그 벽을 허무는 것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선구자가 카르텔을 정복하는 가장 우아한 방식이다.


​대접을 요구하며 구걸하는 자와, 존재만으로 길을 정의하는 자의 차이는 명확하다. 전자는 보상을 갈구하지만, 후자는 이미 권위를 입고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역사가 그 자리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박제되지 않는 리빙 레전드

​무엇보다 이 홀대론이 놓치고 있는 사실은 BTS가 곧 완전체 컴백을 앞둔 리빙 레전드라는 점이다. 그들은 여전히 현역이며, 앞으로 어떤 역사를 더 써 내려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렉카들은 벌써부터 그들을 보상이나 받아야 할 뒷방 늙은이로 취급하려 든다.


​억울함이라는 프레임은 그들을 과거의 유물로 가두는 일종의 폭력이다. 그들은 위로받아야 할 피해자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디펜딩 챔피언이다. 마침표를 찍으려 안달 난 세상의 성급함을 비웃듯, 그들은 다시 증명할 것이다. 선구자는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문을 연 자의 여유

​성취는 개인의 것이지만 그 성취가 가능했던 토양은 시대와 선구자의 공유 자산이다. 문을 연 사람은 문밖에서 트로피를 든 후배를 보며 흐뭇해할 자격이 있다.


​역사는 결국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잔칫집에서 지분을 따지는 목소리는 조회수와 함께 휘발되겠지만, 선구자가 닦아놓은 고속도로는 그 위를 달리는 후배들의 바퀴 자국을 통해 영원히 기록된다. 굳이 대접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길 그 자체가 이미 그들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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