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류를 사랑하지만 내 옆의 인간은 견딜 수 없다

by 무학의통찰

1. 60억 킬로미터의 평화와 60센티미터의 진저리

나의 좌우명은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다. 보이저 1호가 60억 킬로미터 밖에서 찍어 보낸 그 작고 외로운 빛줄기를 보고 있으면, 인류라는 종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애틋함이 차오른다. 그 거리에선 비루한 욕심도, 무례한 침범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생명'이라는 거대한 기적만이 보인다.


하지만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돌아온 현실에서, 누군가 60센티미터 안으로 훅 들어와 끈적한 오지랖을 부릴 때 나는 본능적으로 진저리를 친다. 우주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과 인간을 견디지 못하는 나의 육체. 이 지독한 정신적 괴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나 또한 "인류는 사랑하지만 개별적인 인간은 견딜 수 없는" 고약한 병에 걸린 것일까.


2. 물리학적 연대와 생물학적 오염

내가 사랑하는 우주의 연대는 '진공' 상태다. 별과 별 사이는 수만 광년이 떨어져 있지만, 중력이라는 명확한 법칙 아래 완벽한 질서를 유지한다. 서로 닿지 않기에 충돌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기에 도도하다. 이것은 일종의 '물리학적 연대'다. 수영장에서 나누는 스몰토크나 당근마켓의 거래가 편안한 이유도 이와 같다. 적당한 거리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에너지를 주고받고 튕겨 나가는 당구공 같은 관계. 내 내부의 진공을 깨뜨리지 않는 예측 가능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반면, 깊은 인간관계는 '생물학적 연대'다. 습도가 높고 끈적거린다. 연대라는 이름으로 내 진공 속에 산소를 주입하고 습기를 들여온다. 거기서부터 기대라는 곰팡이가 피고 갈등이라는 박테리아가 번식한다. 나는 깔끔한 물리학의 세계에서 살고 싶은데, 세상은 자꾸 나를 눅눅한 생물학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찌개에 먹던 숟가락을 얹는 식습관이나 무례하게 내 고독의 시간을 치료 대상으로 보는 시선들. 이 모든 것은 내 실험실을 오염시키는 치명적인 불순물일 뿐이다.


3. '9대 1'의 역전: 인색함이라는 이름의 정제

어릴 적 나의 관용은 아직 나라는 사람의 결이 마르지 않아 말랑말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친절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고, 남에게 맞추지 않는 것을 쿨하지 못한 것이라 여겼던 미숙함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단단하게 굳은 완성된 행성이다.


이제 나는 아홉 가지가 좋아도 한 가지가 나의 결과 맞지 않으면 주저 없이 멈춰 선다. 예전엔 10%의 희망을 보고 관계에 뛰어들었다면, 이제는 10%의 균열을 보고 내 평화를 지키기로 한다. 누군가는 이를 고립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이를 '순도의 보존'이라 부른다. 내 영혼은 이제 너무 촘촘한 HEPA 필터가 되어버려, 예전엔 통과시키던 하찮은 먼지조차 걸러내느라 굉음을 낸다. 나는 이제 그 변수들을 견뎌낼 만큼 마음이 가난하지 않다.


4. 뻔뻔함의 품격: 진상과 철학자 사이

사람들은 나이 들면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라 하지만, 나는 기꺼이 뻔뻔한 고립을 택한다. 이제 더 이상 당신들에게 나를 증명하거나 설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위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응석이 아니라 실존적 자유다.


다만, 이 뻔뻔함이 진상짓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 자기 객관화라는 브레이크를 밟는다. 진상은 자신의 습기를 남에게 묻히려 침범하지만, 나는 나의 건조함을 지키기 위해 물러날 뿐이다. 나의 고립은 타인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라는 종을 더 거시적으로 사랑하기 위해 확보한 60억 킬로미터의 안전거리다. 나는 차가울지언정 무례한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5. 각자의 궤도를 도는 행성들에게

진정한 연대는 서로를 껴안아 온도를 섞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딪히지 않는 완벽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창백한 푸른 점을 보며 인류의 안녕을 기도한다. 단, 내 거실 문은 굳게 잠근 채로.


나의 사랑은 망원경으로 바라볼 때 가장 뜨거우며, 나의 연대는 인사에서 멈출 때 가장 완벽하다. 각자의 궤도를 지키며 서로의 중력만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차갑고도 우아한 성단(Stellar Cluster)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비좁은 지구에서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 선택한 가장 고독하고도 완벽한 방법이다.


#인간혐오

# 진상짓

#독거

#자발적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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