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征韓)'이라는 거대한 가스라이팅
정한론(征韓論). 이 짧은 단어 속에는 기이한 모순이 박혀 있다. 당시의 엄연한 국호였던 ‘조선’을 두고 굳이 고대의 ‘한(韓)’을 소환한 그들의 고집은 단순한 명칭의 선택을 넘어선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이 말해주지 않는 행간을 읽다 보면, 그들의 정교한 침략 논리 이면에 도사린 콤플렉스와 뒤틀린 욕망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해진다. 물론, 역사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읽어내려는 어느 비전공자의 상상의 영역이긴 하지만 말이다.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도래인의 핵심은 백제, 고구려, 가야인들이다. 한반도 역사의 승자였던 신라인들과 달리, 이들은 나라를 잃고 바다를 건넌 패배한 유민들이었다. 7세기, 백제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왜(倭)는 무려 2만 7천 명의 구원군과 수백 척의 함대를 보낸다. 당시 왜의 국력을 고려하면 사실상 국가의 명운을 건 도박이었다.
이 무모한 혈투는 단순히 동맹국을 돕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미 백제와 왜는 혈연과 문명을 공유한 거대한 운명공동체였으며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닌 국가 시스템 자체를 설계해 준 부모였다. 자신들의 ‘문화적 본가(本家)’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존재 자체의 공포이자, 뿌리를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백강(白江)에서의 참혹한 패배였다. 이 패배를 기점으로 바다를 건넌 망명객들에게 한반도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조상의 땅인 동시에, 내 조상의 숨통을 끊어놓은 ‘원수들의 땅’으로 각인되었다.
메이지 시대 일본 지배층이 조선을 대했던 적개심은 바로 이 1,200년 묵은 트라우마에서 시작된다. 그들에게 조선은 자신들의 찬란한 기원이었던 백제와 가야를 짓밟고 일어선 승자(신라)들의 후예였다. 정한론은 단순한 영토 확장의 야욕을 넘어선다. 조상의 고토를 회복한다는 명분 뒤에는, 수천 년 전 패배의 기록을 뒤집고 마침내 승자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거대한 역사적 복수극이 도사리고 있었다.
일본 지배층에게 한반도의 고대사는 반드시 계승하고 싶은 정통성의 왕관인 동시에, 자신들이 분가에 불과함을 폭로하는 치부였다. 그들은 백제와 가야의 찬란한 문명을 일본의 것으로 온전히 소유하고 싶어 했지만, 그 땅에는 여전히 그 문명의 적통(嫡統) 임을 증명하는 진짜 후예들이 살고 있었다.
원본이 존재하는 한 복사본은 영원히 가짜일 뿐이다. 일본 지배층이 조선인을 단순히 수탈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토록 가혹하게 숨통을 조였던 이유는, 조선인의 존재 자체가 자신들이 세운 천황 신화를 부정하는 살아있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너희를 지워야 비로소 우리가 진짜 주인이 된다”는 이 정통성 탈취의 논리가 정한론의 깊은 속내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원수의 땅과 한 뿌리라는 형용모순을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이라는 기괴한 프레임으로 정당화했다. 일본은 고대의 찬란한 혈통을 보존한 정통 주류로 자처했고, 조선은 사대주의에 찌들어 타락해 버린 열등한 방계로 규정되었다. 한반도의 과거는 정통인 일본의 것으로 회수하되, 현재의 조선인은 구원받아야 할 미개한 형제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이는 평등한 형제애의 선언이 아니라, 철저한 위계질서 아래 상대를 흡수하려는 역사적 형제 살해였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비극이라 불리는 카인과 아벨의 서사와 맞닿아 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그가 모르는 타자여서가 아니었다. 똑같은 피를 나눴으나 신이 동생의 제물만 인정했다는 사실, 즉 ‘정통성’에 대한 질투와 공포가 살의의 본질이었다. 일본 지배층에게 한반도는 자신들에게 문명의 설계도를 건네준 ‘부모’이자 ‘형’이었다. 하지만 그 원본이 존재하는 한 자신들은 영원히 2등 복사본이라는 열등감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형제를 죽이고, 나아가 자신들의 시스템적 뿌리를 부정하는 존속 살해를 감행하며 그 피칠갑된 역사를 ‘수복’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지배층의 내면에는 이 비밀스러운 자각보다 더 깊은 ‘자기혐오적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자신들이 패배하여 쫓겨온 망명객의 후예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자부심인 동시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낙인이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핏줄 속에 흐르는 '반도의 흔적'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그 흔적을 더 격렬하게 부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천황을 무결한 신의 자손으로 격상시키며, 자신들의 진짜 기원을 지워버리는 정체성 세탁을 감행한다. 한반도를 침략하고 짓밟는 행위는 원수에 대한 복수인 동시에, 자신들이 도래인이었다는 모든 흔적을 짓밟아버리는 퇴마 의식이었다. 과거의 뿌리를 잘라내야만 비로소 독자적인 신의 제국을 완성할 수 있다는 자기혐오적 폭력이 정한론의 본질이었던 셈이다.
일본이 자행한 대규모 문화재 약탈은 단순한 물욕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짜 주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정교한 증거 인멸이었다. 강도가 명문가의 집문서를 훔쳐 주인 행세를 하려 한다면, 집안에 남은 진짜 주인의 족보와 영정사진부터 치워버려야 하는 법이다. 한반도 땅에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 한, 그것은 언제든 “진짜 주인은 저기 쫓겨난 조선인이다”라고 말해줄 결정적 목격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물을 가져가 이름표를 갈아치웠으며, 거대 고분을 봉인해 버렸다. 고분을 파헤쳤을 때 천황의 조상이 아닌 반도의 왕족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 자신들이 공들여 훔친 족보가 가짜임이 들통나기 때문이다. 그들이 쌓은 역사의 댐은 진실을 가두기 위한 감옥인 동시에, 가짜 주인이 떨고 있는 불안의 요새였다.
결국 정한(征韓)은 한반도를 정벌하기 위한 칼날이 아니라, 제 등에 드리워진 ‘망명객’이라는 그림자를 잘라내려 했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침략으로 본토를 짓밟으면 오랜 콤플렉스가 씻겨 나갈 줄 알았으나, 역설적이게도 그 거친 발길질은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세상에 증명하는 요란한 소음이 되었을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신의 자손이라 선언하며 원본을 지워버렸지만, 그 순간부터 대본 없는 무대 위에서 영원히 불안을 견뎌야 하는 형벌을 자초했다. 훔친 족보를 품에 안고 가면을 쓴 채, 제 조상의 무덤 위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이 기괴한 연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과연 그 가면뒤의 얼굴은 누구와 닮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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