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집 문을 열고 나올 때만 해도 공기는 달콤했다. 갓 구워낸 피자 상자에서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 그리고 이어질 즐거운 식사에 대한 기대감. 나는 들뜬 마음으로 가게 앞에 세워둔 스쿠터에 올랐다. 도로로 나가기 위해 조심스레 스쿠터를 후진시키던 그 순간, 예기치 못한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주차된 차량 사이,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틈새에서 보행자가 불쑥 튀어나왔고 뒤를 향하던 내 스쿠터와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 보행자는 발등이 밟혔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찰나의 사고였지만 법의 잣대는 가혹했다. 경찰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단칼에 정리했다.
“인도에서 후진하다 보행자를 쳤으니, 과실 100% 가해자입니다. 이건 12대 중과실, 보도 침범 사고예요. 빼도 박도 못 합니다.”
경찰서 조사실의 정체된 공기 속에서 들려온 그 선고는 무미건조했다. 보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형사 처벌의 영역. '유죄'라는 낙인이 이마에 새겨지는 기분이었다. 시스템이 나를 범죄자로 규정하는 순간 나는 왜소해졌고, 우울한 체념이 공복의 소주처럼 온몸에 퍼졌다. ‘전문가인 그들이 나보다 법을 더 잘 알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그렇게 나를 자포자기로 밀어 넣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심란했다. 형사 사건이라는 법의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당장 눈앞에 닥칠 일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벌금은 얼마나 나올까? 12대 중과실이라는데 형사 합의금은 또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혹시라도 벌점이 쌓여 면허라도 정지되면 그 번거로운 뒷감당은 또 어떡하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최악의 시나리오들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홈런 맞은 투수처럼 이대로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12대 중과실이라는 유죄의 프레임 안에서 내 피해를 단 1%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밤을 꼬박 새우며 검색의 바다에 그물을 던졌다. 내 일이 아니었다면 절대 투자하지 않았을 시간과 인내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사고 지번을 치고, 도로명을 검색하고, 관련 판례의 숲을 이 잡듯 뒤졌다. '자전거', '인도 사고', '후진' 등 가용한 모든 키워드를 조합하며 정보의 파편을 긁어모으던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 하나가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순전한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건 지독한 집요함이 만들어낸 필연이기도 했다. 사고 현장의 주소를 도로명으로 검색하고 그 길이 갖는 법적 지위를 끈질기게 파고든 끝에, 나는 내가 서 있던 그 붉은 우레탄 길이 단순한 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국민신문고 답변 속에 숨겨진 문장, “겸용도로는 보도 침범 사고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발견한 순간 머릿속이 번쩍였다. 전문가라 자처하던 경찰들이 보지 못한, 아니 보려 하지 않았던 진실의 조각이 마침내 내 손에 쥐어졌다.
다음 날, 나는 확신에 찬 근거를 들고 다시 경찰서를 찾았다. 내가 밤새워 찾아낸 이 '본질'이 모든 상황을 단번에 되돌릴 거라 믿었다. 하지만 권위의 벽은 생각보다 더 오만했다.
경찰청 국민신문고 답변을 캡처해 보여주자, 담당자는 글자가 작아 안 보인다는 둥 읽기 어렵다는 둥 하며 그 수고로움을 다시 나에게 전가했다.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꾹꾹 눌러 참으며 담당자가 보시기 편한(?) 다른 루트를 한참 동안 찾아 헤맸다. 기어이 더 선명한 자료를 찾아 들이밀었으나, 이번엔 “이건 일개 상담원의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상급기관의 답변을 단칼에 깎아내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팀장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여태껏 경찰 업무 하며 인도사고가 중과실이 아닌 걸 본 적이 없다"는 그의 말은, 법보다 자신의 낡은 경험을 숭상하는 집단의 완고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들의 완고한 태도 앞에 내 항변은 자꾸만 길을 잃었다. 명백한 진실을 앞에 두고도, 그들은 그저 법알못의 생떼나 골치 아픈 민원인 취급하며 나를 시급히 처리해야 할 '비효율적인 소음'으로 분류하는 듯했다. 그 건조하고 평온한 사무실의 풍경 속에서, 한 개인의 절박함은 서류철 하나만큼의 무게도 갖지 못한 채 허공을 겉돌고 있었다.
자신들의 논리가 궁색해졌음을 이미 눈치챘으면서도 고작 조직의 자존심과 관성을 지키기 위해 개인을 짓밟으려는 그 태도에 마침내 나는 뚜껑이 날아갔다. 그래, 이미 질 게 뻔한 싸움을 자존심 때문에 수정할 생각도 없이 밀어붙이겠다 이거지?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을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과 계속하는 건 고역이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한참 동안 심호흡으로 화를 삭여야 했다. 곧바로 해당 경찰서 청문감사실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분노와 오기를 꾹꾹 눌러 담아 국민신문고 2차 민원을 작성했다. ‘어디 나중에 뭐라고 사과하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오기였다.
결과는 나의 집요함이 예견했던 그대로였다. 경찰청의 공식 답변은 단호했다. “겸용도로 사고는 보도 침범이 아님.” 경찰청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질 수는 없었기에 하급 기관으로 즉각적인 내부 지시가 내려갔다. 내가 경찰서를 다시 찾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기세등등하던 목소리는 “그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비겁한 중얼거림으로 바뀌었고, 12대 중과실 적용은 철회되었다.
사건이 마무리된 후 도착한 문자는 구질구질함의 결정체였다.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는 말은 단 한 문장도 없었다. 자기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더니, 문장의 끝에 이렇게 적었다.
“각설하고, 유감입니다.”
유감. 마음에 남는 섭섭함이 있다는 이 편리한 단어 뒤로 그들은 비겁하게 숨어버렸다. 틀렸음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고개는 숙이기 싫다는 조직의 마지막 자존심이 '각설하고'라는 무책임한 말 뒤에 녹아 있었다. 그것은 진심이 삭제된 ‘통석의 염’이자, 사과의 탈을 쓴 비겁한 말장난에 불과했다.
이 사건을 통과하며 나는 뼈저린 진리 하나를 얻었다. 경찰이 가진 법률 지식은 광활한 바다처럼 넓을지는 몰라도, 정작 내가 빠진 웅덩이의 깊이를 측정할 만큼 정교하지는 못했다. 수천 건의 업무 중 하나로 내 인생을 대하는 이들에게 내 권리를 온전히 맡기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도박인지, 나는 휑한 조사실에서 배웠다.
결국 내 삶의 궤적을 가장 절박하게 추적하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나의 절박한 생존이 누군가에겐 퇴근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서둘러 쳐내야 할 ‘행정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순간, 시스템의 관성은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규격화된 결론 속에 갈아 넣어버리는 무표정한 파쇄기가 된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정보의 바다를 자맥질하며 본질을 파고들어야 한다. 시스템은 결코 개인을 선별적으로 구원하지 않지만, 스스로 전문가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당사자의 집요함은 결국 진실의 문을 열어젖힌다.
그들의 비겁한 유감 너머에 있는 진짜 사과를 끌어낼 힘은 오직 나의 인내와 투쟁에서만 나온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의 피자 냄새와 선명한 붉은 우레탄 길 위에서 다시금 되새긴다. 내 사건의 전문가는 오직 나뿐 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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