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백이 내 마당에 던져진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by 무학의통찰

공범을 쇼핑하는 당근마켓


하루의 소란을 겨우 털어내고 침대에 누운 밤, 엄지손가락으로 무심하게 밀어 올리는 당근마켓 ‘동네생활’ 게시판은 용기를 가장한 누군가의 지질함과 책임 없는 무지성의 응원, 그리고 못 볼 것을 본 듯 날을 세운 비난러들로 뒤섞인 일대 아수라장이다. 이 난장판의 원인제공자는 한 청년의 글이었다. “헬스장 그녀에게 고백해도 될까요?”라는 고민의 형식을 빌린 투정이었다.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천장만 보며 덤벨을 밀어 올렸다는 문장마다 자기 연민의 냄새가 눅눅하게 묻어난다. 어쩌면 그는 지금 길을 묻는 게 아니라, 조만간 저질러버릴 소동에 ‘용기’라는 면죄부를 끊어줄 공범을 쇼핑하고 있는 듯 보였다.


게시판은 이미 판돈 없는 노름꾼들로 가득하다. “지르세요”, “인생 뭐 있나요”라며 가볍게 박수를 치는 손가락들. 하지만 그들은 타인의 일상이라는 판데기에 돈 한 푼 걸지 않고 베팅하는 노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런 리스크도 지지 않는 자들이 던지는 응원은 애초에 무게감 이라곤 1도 없는 하나마나한 소리일 뿐이다. 청년의 고백이 실패한 뒤 겪을 곤욕이나 일상의 상실 따위는 그들의 안중엔 없다.


하체 데이처럼 찾아오는 루틴


하지만 진짜 피해자는 고백을 앞두고 밤잠을 설친다는 저 청년이 아니라, 아무 예고 없이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고백공격’을 당해야 할 상대방이다. 이름도 모르고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는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좋아한다'는 말이 과연 진심일 수 있을까. 게다가 이것이 수시로 끓어오르고 식는 금사빠의 변덕이라면 상황은 순식간에 민망한 코미디가 된다. 지난번엔 편의점에서, 그전엔 카페알바생에게 느꼈을지 모르는 그 죽을 것 같은 짝사랑이 실은 일주일에 몇 번씩 찾아오는 하체 데이 루틴처럼 반복되는 감각의 관성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이켜본 적은 있을까. 내 몸이 잠깐 가렵다고 남의 멀쩡한 일상을 함부로 긁어대는 건 용기가 아니라 제어되지 않는 감정의 배설인 셈이다. 진심은 내 뜨거움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이 상대의 세계에 어떤 생채기를 낼지 계산하고 그 앞에서 멈춰 서는 신중함에서 시작된다.


감정의 무단투기와 젊음이라는 핑계


이런 신중함이 헬스장이라는 공간을 만나면 그 무게는 더 엄중해진다. 길에서 우연히 번호를 묻고 돌아서면 그만인 상황과, 매일 같은 시간을 공유해야 하는 이곳에서의 고백은 수습해야 할 번거로움부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헬스장은 그저 근육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하루의 균형을 겨우 잡아내는 유일한 영토일지 모른다. 왜 그 평온한 일상이 생면부지 남자의 안달 난 감정 때문에 침범당해야 하는가. 준비되지 않은 상대에게 던지는 고백은 낭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쓰레기를 남의 마당에 던져놓고 대신 치워달라는 이기적인 떠넘기기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젊음의 특권, 젊어서 한때라는 말로 이 무례함을 포장하려 들지만, 그건 듣기 좋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성장이라지만, 왜 그 배움의 비용을 아무 죄 없는 타인이 ‘일상의 침해’라는 형태로 대신 지불해야 하는가. 무모하게 들이받고 차이는 경험이 반복되면 그건 성장이 아니라 타인의 거절을 가볍게 여기는 정서적 굳은살만 만들 뿐이다. 그것은 성숙이 아니라 그저 민폐의 역치를 높이는 과정에 가깝다.


무례함의 관성과 배려의 근육


예의는 나이와 상관없는 기본값이며, 배려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끔 잊곤 한다. 젊을 때 남의 평화를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늙는다고 갑자기 점잖은 어른이 될 리 만무하다. 무례함에도 관성이 있는 법이다. 제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해 남의 마당에 오물을 던지던 버릇은 세월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노련함이 더해져 더 고약해진다.


고백공격의 횟수가 마치 훈장인 양 치켜세워지는 세상은 정작 필요할 때 작동해야 할 브레이크를 마비시킨다. 이것은 난폭 운전자가 자신을 베테랑 레이서라고 착각하며 떠벌리는 무용담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타인의 일상을 헤집고 다닌 빈도를 ‘열정’의 흔적으로 세탁하고, 상대가 예의상 삼켜낸 침묵과 완곡한 거절을 나무꾼으로 빙의해 씨알도 안 먹힐 도끼질을 해댄다.


결국 진정한 성장은 돌진의 횟수를 늘리는 무용담이 아니라, 내 욕망이 타인의 평화를 침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 직시하고 그 앞에서 멈춰 서는 ‘부끄러움’을 아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헬스장에서 번민하는 청년이 여기서 고백을 멈춘다면 혹은 시간을 두고 알아가는 성숙한 태도와 여유를 갖는다면 그건 비겁함이 아니라 타인의 공간을 지켜준 근사한 성장의 한 장면일 것이다. 자기가 이기지 못한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스스로 삭여내어 자기만의 흉터로 간직하는 것. 그것이 백 번의 고백 공격보다 훨씬 더 단단한 인간을 만드는 길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 남겨진 질문


청년은 결국 듣고 싶은 말들을 따라 움직일 것이고, 구경꾼들은 또 다른 얘깃거리를 찾아 떠날 것이다. 하고픈 말 수십 가지를 겨우 삼키고 나는 그저 액정을 끈다. 방 안은 다시 어두워졌지만 손가락 끝에 남은 찝찝함은 가시지 않는다. 내일이면 다시 시작될 각자의 일상 속에, 누군가의 소중한 평화는 과연 무사히 살아남아 있을까.


#고백공격

#착각

#민폐

#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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