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성실성이라는 최소한의 예의

액정 너머의 괴벨스들

by 무학의통찰

토요일밤 광화문은 달궈진 쇠붙이처럼 뜨거웠다. 하지만 작은 액정 너머의 세상은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냉기로 가득하다. 공연이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SNS에는 기이한 적대감이 일사불란하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다. 일개 가수의 공연 때문에 평생 한 번뿐인 예식을 망쳤다며 통곡하는 어느 신혼부부의 사연부터, 하루 매출을 통째로 날릴 것 같다는 편의점 사장의 절규까지. 약 200여 건의 기사가 '시민의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축제가 끝나고 소음이 잦아든 지금, 그 많던 '유령 피해자'들의 후속 보도를 본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실제 현장의 팩트는 난리법석이던 기사와는 딴판이었다. 하객이 0명이라느니 잔치를 망쳤다느니 하는 자극적인 뉴스들이 무색하게, 당일 광화문 인근 예식장들을 대상으로 확인된 실제 분쟁이나 피해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장사를 망쳤다는 편의점 사장이나, 예상 인원이 부풀려진 탓에 물건이 처치 곤란이라며 김밥 일곱 줄을 공짜로 나눠주었다는 훈훈(?)한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실상은 기사들 중 기자가 직접 발로 뛰어 인터뷰를 따낸 것은 전혀 없었다. 그저 커뮤니티에 떠도는 '카더라' 통신을 그대로 복사해 붙인 지적 나태함의 결과물이었을 뿐이다. 그토록 많은 기사가 쏟아졌음에도, 정작 피해를 입었다는 실체적 주인공이 후속 취재를 통해 증명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초에 지하철이 정상 운행되는 서울 한복판에서 하객이 0명이라는 물리적 불가능을 기사화하는 그 정성이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정작 경찰이 기동대 버스 12대를 동원해 예식장 앞까지 하객들을 실어 나르고, 청첩장만 있으면 통제 구역의 빗장을 열어주었던 '공권력의 서비스'는 그들의 문장에서 교묘하게 삭제되어 있었다. "길을 막아 잔치를 망쳤다"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국가가 제공한 세심한 행정 지원은 의도적으로 지워진 셈이다.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악질적이다.


입을 맞춘 듯 쏟아지는 이 소동극을 보고 있자니, 시선은 자연히 그 배후로 향한다. 대체 저들은 누구이며, 이 조잡한 난장판을 통해 무엇을 챙기려 하는가. 좁은 타임라인을 가득 채운 비난의 숲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각자의 '쪼들린 욕망'이 공공의 이익과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누군가에게 BTS는 가수가 아니라 정권의 가슴에 꽂힌 화려한 훈장으로 인식되는지, 어떻게든 오물을 묻혀 자신의 정치적 선명성을 증명하려 든다. 여기에 내 아이돌이 감히 오르지 못한 무대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을 공공에 민폐를 끼치는 지들밖에 모르는 아이돌이라는 빌런의 이미지를 덧씌워 깎아내려 혈안이 된 라이벌 팬덤들과, 이 아수라장을 '분노 코인'으로 환전하며 키득거리는 조회수 하이에나들이 한데 엉켜 난장을 판다. 그들에게 진실의 무게는 한낱 데이터 조각보다 가볍고, 타인의 피땀 섞인 성취는 본인과 본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보다 사소한 가치로 치부된다.


더욱 기막힌 점은 그들이 세금을 쏟아부었다며 맹비난하는 이번 공연이 실은 '무료 공연'이라는 지점이다. 돈 한 푼 받지 않는 공연에 더 이상의 어떤 퀄리티가 필요한지, 사람을 얼마나 더 불러 모아야 하는지 그들은 이 악물고 모른 척한다. 게다가 평소 실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외치며 '능력주의'를 신봉하던 이들이, 세계적인 성과를 거둔 아티스트가 천문학적인 수익을 포기하고 시민과 호흡하겠다는 결단 앞에서는 돌연 날 선 잣대를 휘두른다. 이 결정적 사실을 알고도 하는 비난이면 '몰염치'이고, 분위기에 부화뇌동해 기본적 사실확인마저 생략했다면 '심각한 지적 게으름'이다. 이러한 몰이해는 신곡 'FYA'의 가사 논란에서 정점을 찍는다. 1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된 예술적 상징을 당일의 참사와 억지로 엮어 단어 검열을 시도하는 그 옹졸함을 보라. 예술의 맥락을 읽어낼 논리적 케파(Capacity)가 부족한 이들이 괴벨스에 빙의되어 선동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분노보다는 차라리 애잔함이 밀려오고 그 지적 수준을 의심하게 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만큼 일회용 종이컵처럼 가볍게 소비되면서도, 동시에 공자 수준의 도덕적 책임을 강요받는 존재도 없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시선은 대중에게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짓밟아도 된다'는 기묘한 특권의식을 심어주곤 한다. 팩트 확인이라는 최소한의 지적 성의조차 생략한 채, 오직 상대를 시궁창으로 밀어 넣기 위해 사실과 다른 말들을 내뱉는 이 무책임한 소동이야말로 저만치 앞서 나간 K문화에 한참 못 미치는 부끄러운 민도일지 모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히며 파열음을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소리가 누군가를 난도질하는 비명이 아닌 건강한 담론이 되려면, 최소한의 '지적 성실성'이라는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겠나.


BTS가 이룬 업적이 대단하니까, 혹은 그들은 무결점의 인간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옹호를 하자는 게 아니다. 비판하고 싶다면 최소한 앞뒤가 맞는 사실에 기반한 논거를 가져오라는 말이다. 상대 진영이라는 이유로, 혹은 내 가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지성' 댓글을 복사해 붙이고 최소한의 팩트체크도 등한시하는 행위는 토론이 아니라 공해일 뿐이다. 그래서 비단 이번 BTS의 광화문 공연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문장을 던지기 전, 우리는 스스로의 양심에 세 가지 질문을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


옳은 말인가?

지금 필요한 말인가?

친절한 말인가?


하찮은 이득을 위해 누군가의 노력을 조롱의 제단에 올리기보다, 내 주장의 무게를 먼저 살피는 어른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밤이다. 광화문의 조명은 꺼졌지만, 우리가 뱉어낸 문장들은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며 누군가의 마음을 할퀸다. 무심코 내뱉은 말들로 인해 우리 곁을 떠나간 많은 스타들을 기억한다면 무지성 비난이 아닌 합리적이고, 현시점에 꼭 필요하며, 친절한 말의 무게를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문장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BTS #광화문공연 #K문화 #악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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