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달빛, 즌데를 딛는 기원

by 무학의통찰

달하 노피곰 도다샤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즌 대랄 드대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밤의 정적 속에서 낡은 노래 한 구절을 웅얼거린다. ‘정읍사(井邑詞)’. 이 노래를 읽을 때면 내 시선은 언제나 싸리대문 앞의 한 여인에게 머문다. 청명한 가을밤, 휘영청 높이 뜬 보름달이 고갯길의 검은 그림자를 억지로 밀어내고 있는 밤이다. 아궁이에서는 나무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올라오고, 초가지붕 굴뚝으로는 저녁밥 짓는 연기가 가늘게 새어 나간다. 방금 지은 따뜻한 밥 냄새가 온 집안을 휘감고 있지만, 문 앞에 선 아내의 손마디는 시리도록 차갑다.


그녀는 두 손을 모은 채 시장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고갯길을 응시한다. 처음 겪는 불안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고개를 넘어야 하는 남편과, 그를 기다리며 매일 밤 피를 말리는 아내. 평범한 부부에게 ‘위험 없는 삶’이란 애초에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을 것이다. 아내는 달님에게 자신이 가진 가장 가치 있는 것, 즉 자신의 ‘생명’을 깎아 남편의 무사귀환과 맞바꾸는 애절한 거래를 제안한다. 달님에게 높이 돋아 멀리 비춰달라 비는 그 간절함은, 사실 내 수명을 가져가서라도 그의 앞길을 밝혀달라는 처연한 혈서일지 모른다.


그 애달픈 모습 뒤로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꿈>의 한 장면이 겹쳐진다. 황신혜의 하얀 얼굴 위로 눈썹이 빠지는 장면을 시작으로 가장 눈부셨던 아름다움이 ‘문둥병’이라는 비극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던 그 불길한 전조는, 내게 ‘즌 대(진 곳)’가 무엇인지 각인시킨 최초의 공포였다. 『정읍사』 속의 ‘즌 데’는 단순히 질척이는 진흙탕이나 웅덩이가 아니다. 그것은 질병으로 형상화된 거부할 수 없는 죽음 그 자체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 노래가 이토록 가슴을 후벼 파는 이유는 그 잔인한 필연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이미 고갯길 어느 모퉁이에서 숨이 멎었거나 차갑게 식어가고 있고, 아내는 그 사실도 모른 채 갓 지은 밥 냄새 속에서 하염없이 달님에게 매달리고 있는 상황. 이 비극적 어긋남이야말로 정서의 완성이다. 남편이 무사히 돌아와 같은 밥상머리에 마주 앉는 해피엔딩이었다면, 1400년을 버텨온 그 가사의 절실함은 한순간에 희석되었을 것이다.


이제 싸리대문 앞의 그녀는 내가 되고, 그녀의 시선 끝에 걸린 적막은 내 영혼의 풍경이 된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식어가는 밥그릇을 뒤로한 채 이미 죽어버린 남편을 위해 제 생명을 깎아내는 여인의 뒷모습. 이 지독한 비극의 풍경이 왜 이토록 낯익은 것일까. 1400년을 건너온 노래 한 자락이 내 안의 가장 시린 감각을 건드리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어쩌면 이 절절한 기도는 타인의 역사가 아니라 내 생의 어느 마디에 깊게 새겨진 익숙한 통증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선이 흐릿해지고 싸리대문의 잔상이 멀어지는 찰나, 나는 그저 그 오래된 전생의 공명 속에 나를 던져둔다.

작가의 이전글지적 성실성이라는 최소한의 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