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k-장녀의 고민
아빠는 2년 전에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2월에 인지지원등급을 받았다. 아빠의 단기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감정의 기복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엄마의 스트레스와 지병이 심해져 힘들어하고 있다. 치매를 진단받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많은 부분을 감내해야 하는 몫은 역시나 장녀인 나였다. 치매 병을 의심하고, 검사를 받으려고 설득하는 과정, 자치구 치매안심센터에 신청하고, 병원을 모시고 가는 일련의 일들 말이다.
3년 전 여름 부모님과 양평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비 오는 밤이었고, 부모님의 차가 먼저 가고 있었고 우리는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1시간 내내 아빠차의 헤드라이트가 꺼졌다 켜졌다 하는 것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와이퍼 작동법이 생각이 안 나셨다고 했다. 운전을 수십 년 해 온 아빠가 와이퍼 작동법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때부터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퍼즐이 끼워 맞추어졌다.
워낙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이었던 아빠는 언제부터인가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엄마가 울면서 전화하는 날이 많아졌다. 우리 집에 들르시면 고쳐줄 거 없는지 늘 점검해 주시곤 하셨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내가 뭔가를 봐달라고 했더니 그냥 말도 없이 가버리셨다. 또 어느 날은 심각하게 전화하셔서 은행에 가서 같이 출금을 해 달라고 했다. 그때는 치매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냥 아빠가 예전과 달라지셨네.. 이 정도였다. 와이퍼 작동 사건으로 아빠의 치매를 직감했다. 일단 너무 막막했다. 고집 센 아빠에게 당신이 치매에 걸렸으니 병원에 가자고 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 가족이 아닌 제삼자에게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자치구 치매안심센터에 연락했다.
자치구 치매안심센터에 전화해 아빠의 상황을 알려드리고, 검사를 의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 직접 가정 방문을 해서 간단한 치매 검사를 해 줄 수 있지만 그마저도 많이 밀려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몇 개월을 기다린 후 치매안심센터 담당간호사가 집으로 오셔서 검사를 진행해 주셨다. 검사 결과 인지 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고, 진단은 병원에서 뇌 ct를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아빠의 뇌 CT를 찍기까지 1년이 걸렸다. 설득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에게 당신이 치매에 걸렸으니 뇌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고집 센 아빠에겐 납득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 네 엄마가 나보다 심각해! 나는 치매 환자가 아니야!"라며 극구 부인하셨다. 이게 가장 큰 실수였다. 아빠에게 치매를 인정하고 검사를 받아보라고 한 것 말이다. 아직도 후회되는 일 중에 하나다. 사회복지사이고,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는 딸이 아빠의 치매 진단을 받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지혜롭게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몰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치매 진단을 받고, 약을 드시고 계시다. 치매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달 정도의 약을 받아오시는데 이 약을 매일 꾸준히 챙겨 드리는 몫도 가족이 해야 할 일이다. 그 일은 엄마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지만 엄마도 아빠를 치매 환자라고 인정하지 못하고 그저 성격이 이상해진 아빠를 원망하고 미워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상황이었다.
인지지원등급을 받으면 월 12회 정도 주간단기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센터에 전화 상담을 하고 방문 예약을 했지만 취소하길 몇 번째이다. 다닐 시간 없다고 거부하시는 아빠를 설득하고 있다.
친정과 가깝게 살지도 않고 게다가 이제는 일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는 일, 투약 관리, 엄마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일들이 벌써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치매 1등급을 받고 요양원에 아버지를 보낸 지인이 말했다. 요양원에 보내기까지 몇 년이 지옥 같았다고... 아직 우린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벌써 지치기 시작한다.